기사입력시간 23.01.04 11:43최종 업데이트 23.01.0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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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

지식이 아닌 공감을 전하는 아홉 명의 정신과 의사 이야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수험생이 지망하는 1순위는 의과대학이다. 언제부터 최상위권 학생의 장래 희망이 하나로 의기투합했는지 알 수 없다. 어찌됐건 어렵게 의대를 진학한 예비 의사들이 선호하는 인기 전공 중 하나가 ‘정신건강의학과’이다.

타인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학식이 높은 사람이 더 좋은 치료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만일수도 있다.

신간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는 청년정신건강, 남겨진 자를 위한 애도, 트라우마 극복, 마약중독 재활, 자살예방, 코로나19, 군정신건강, 북한이탈주민, 국가폭력 치유 등 단어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분야 최전방에서 헌신하는 아홉 명의 정신과 의사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섣불리 스스로를 치료자라 칭하지 않는다. 환자를 통해 오히려 자신들이 조금씩 성장해나간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이들은 ‘얼마나 잘 치료했는지’가 아닌 ‘얼마나 함께 견뎌주었는지’에 관한 기록을 세세히 적었다. 진료실과 재난 현장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영웅담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마음을 지키며 의사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책 속에서) 학생들은 뭐든지 잘 해내야 하고, 뛰어나야 하며, 앞서야 한다는 마음에 동시에 많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 지쳐서 나를 찾아온다. 정확히는 남들보다 빠르게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탈진해 온다. 낙오자가 될 것 같아 휴학은커녕 며칠 쉬는 것도 못 하겠다면서 벌벌 떤다.
-실패하고 방황해도 괜찮아 | 청년정신건강, 김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사람을 돕는 유일한 길은 공감이며 공감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나는 열심히 들었다. 부모 또한 열심히 얘기했다. 몇 개월에 걸쳐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도무지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린슬리브스 | 애도, 청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자 다른 트라우마와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그녀는 어렸을 때 겪은 트라우마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겪은 일을 자세히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입 밖으로 내뱉기조차 두려워했지만 오로지 낫고 싶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되다 | 트라우마, 심민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판도라는 제우스가 결혼 선물로 준 그 불길한 상자를 애초에 받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녀에게 더 이상 어떤 선물이 필요했던 걸까.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건네준 사실에 분노했고, 바로 그 프로메테우스의 동생과 결혼한 판도라에게 “절대로 열어봐선 안 돼”라는 경고와 함께 상자를 선물했다.
-판도라의 상자 | 중독, 천영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위기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위기에 빠진 순간 우리는 자신의 주위에서 누가 진심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진심을 가진 한 사람이 옆에 있다면 삶은 다시 시작된다.
-죽고 싶은 사람과 살리고 싶은 의사 | 자살예방, 백종우 김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모든 재난은 끔찍하지만 감염병은 특유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잔인한 얼굴
-감염병은 재난이다 | 코로나19, 이정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꾀병에서 스스로 해방되면서 나는 진료받으러 오는 모든 환자에게 “잘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영어로 병원(hospital)과 환대(hospitality)의 어원은 같다. 군 장병이라고 해서 병원에서 환대를 못 받을 이유는 없다.
-군대를 떠날 수 없었던 의사 | 군정신건강, 백명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탈북민을 만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심리적 외상이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을 배웠고, 우울증을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탈북민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하면서 배운 것들은 다른 트라우마 환자를 상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진료하며 배운 것은 단순한 의학적 지식 이상이다.
-우연한 만남, 조금 다른 이별 | 북한이탈주민, 전진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헌혈과 주먹밥이, 이웃을 위해 선한 희생을 한 수많은 삶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을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당신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서로 친하며 이웃을 위하는가?”
-용서 이야기 | 국가폭력, 정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솔 기자 (sim@medigatenews.com)의료계 주요 이슈 제보/문의는 카톡 solplus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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