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코로나19 이후 민낯이 드러났던 응급의료체계가 인력 부족과 대책 부재, 과도한 사법리스크로 인한 현장 이탈이 가속화 등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에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27일 대한의사협회 지하 대강당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개최해 무너져가는 응급의료의 현실을 알리며, 이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족한 시설·장비·인력, 효과적인 대책 부재…"응급의학 미래 없다"
이날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시설, 장비, 인력 부족과 효과적인 대책 부재로 응급의료가 무너져가고 있다며,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응급의학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음 팬데믹에서도 재난적 응급의료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는 "119 이송 환자의 수용 문제는 코로나 이전부터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작은 병원일수록 119의 사전 환자이송 수용여부 문의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고, 대형병원들은 과밀화 때문에 수용을 허락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경향이 코로나를 계기로 심해졌고 몇 개의 사건들을 통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송거부 금지법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이는 모든 책임을 응급실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법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응급환자의 병원전 이송지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응급실은 응급조치를 위한 장소이지 최종치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곳이 아니다"라며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수술이 불가능한 병원에 내려놓으면 이송시간은 줄겠지만 환자는 사망할 것이다. 아무리 응급처치를 제대로 했어도 환자가 사망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환자를 받아서 진료한 응급의학 전문의가 지게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송거부 금지법이 시행되면 최근 강원도에서 일어난 응급실 대기 중 사망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라며 "정부와 정책당국은 장기적인 인프라 확충과 계획을 통한 해결을 생각하기 보다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응급실 잘못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또 더 강력한 규제와 처벌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습으로 일관해 분노와 좌절감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응급의료를 살릴 골든타임을 이미 지났다며, 위기를 해결할 논의체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응급의학과는 지원율이 80%도 넘지 못하고, 수련하는 전공의의 10%가 그만두고 있다. 또 응급실을 떠나 개업하는 전문의는 10%를 넘었다. 응급의학과의 파국 조짐은 이미 시작됐다. 전의를 상실한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은 "무너져가는 응급의료를 심폐소생 시킬 기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지속적으로 위기를 해결한 논의체를 만들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장기적인 계획을 만들자고 주장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반응이 없다. 이송거부 금지법안의 시행규칙 논의에서는 아예 배제했고, 응급의료 발전계획에는 참여조차 시켜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응급의료체계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해야 할 중앙응급의료센터 독립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관계당국과 유관기관들은 응급의료가 더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논의와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중앙응급의료센터 독립 법안 도입을 촉구했다.
응급의료 특수성 반영하고 과도한 사법리스크 부담 덜어줘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최일국 기획이사는 응급의료의 특수성을 반영한 사법기관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이사는 "응급의학과는 예기치 않은 장소와 시간에 발생한 응급상황을 제한된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기에 응급처치의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아주 짧은 순간에 치명적 결정을 내려야 하기에 그 모든 판단과 행위들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사 상 '최선의 조치를 취할 주의의무'에서 예측, 회피가능의 범위를 넓게 적용해 버리면, 귀가 후 나빠진 모든 환자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결국 응급의학 전문의 누구도 이러한 위험을 피할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는 "형사상 책임에서 '명백한 인과관계'는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의심할 여지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제공하는 의료행위는 응급환자의 치료를 목적으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응급으로 제공되는 행위로, 의도 자체가 환자를 위함이며, 결과 또한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 이사는 2013년 소아횡경막탈장 사망사건, 2014년 전공의 1년차의 대동맥박리 환자 사건, 기도삽관으로 인한 5억 원의 배상판결 등 일련의 과도한 사법 판결을 규탄하며, 이런 과도한 사법리스크가 지속 발생할 경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이사는 "응급의학전문의들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이고, 보람과 자부심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난 10년동안 지속적으로 응급의학과를 하겠다는 사람은 줄고, 전문의들 조차 응급실 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공의들의 수련 포기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법적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라며 "우리는 응급실을 그만두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료계 "소신 치료에도 사법리스크 계속된다면 의료진 모두 떠난다…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
이날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 등 역시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무너져가는 응급의료를 살려야 한다며 힘을 보탰다.
의협 이필수 회장은 "최근 응급의료에 대한 사법부의 과도한 판결에 응급의료는 위기 상황을 맞이했다"며 "응급의료에 대한 과도한 판결은 주의의무를 다 했더가, 예측이 불가능했음에도 응급의료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 응급의료진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과도한 판결이 지속된다면 향후 방어 진료는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의료진이 부담을 덜기 위해 과도한 검사를 진행하면 결국 의료비는 증가하고 모든 피해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현장의 응급의료진의 법적인 안정성을 제공해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우리나라 응급의료를 살릴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응급의료 행위의 위법성은 형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드시 전문적인 관점에서 선의를 우선적으로 경영하고, 보장해야 한다. 앞으로 대한의사협회는 보건의료 전문가 단체로서 무너져가는 응급의료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 국회와 함께 면밀하게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소아의료체계는 동네 소아과부터 대학병원까지 철저하게 무너졌다"며 "그간 응급의학과가 소아응급환자를 돌봐줘 시스템이 그나마 유지됐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순천향대병원에서 소아응급센터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충남지역 환자를 돌보던 병원이었는데, 주변 병원의 소아응급체계가 무너지면서 환자가 전 지역에서 오기 시작했다.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환자가 연락 없이 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1년 넘게 응급의료진이 감당해줬다. 하지만 이제는 문을 닫을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유지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지원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그러다보니 난이도가 올라갔고, 사고 발생 위험은 높아졌다. 사고나면 감옥에 가거나 배상 위험이 닥치겠구나 하는 이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국민이 받게될 것이다. 이에 정부와 사법부는 응급의료현장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은 "요즘 세대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살리는 데 사명감을 가지고 전공의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의료소송 사건이 많아지다보니 '계속 이 일을 해도 되나?'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은 중환자들이 많이 오는 만큼 사망 사고나 결과가 나빠지는 사례가 많다. 그런 것들을 피하려면 결국 경증 환자를 보는 방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며 "전공의는 의사긴 하지만 수련을 받는 과정의 의사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황, 전공의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에 그는 "의사가 의료 소송과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더불어 전공의를 보호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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