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과 격리 치료 후에도 쉬지 않고 환자 곁을 지키던 개원의, 故 이원태 원장님을 추모합니다
[특별기고] 홍성수 성남 연세이비인후과의원 원장·전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장
[메디게이트뉴스] 2022년 2월 13일 오후 4시 즈음, 경기 성남시 이비인후과 모임 총무로부터 다급하고 황망한 전화 연락을 받고는 망치로 얻어 맞은 것처럼 머리 속이 하얗게 굳어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문자가 오가고 친분 있는 동료들의 확인 전화가 걸려 왔다. 거의 똑같은 반응,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원태 원장님처럼 늘 건강하고, 그토록 열정적이고 활기찬 분이 어떻게…’
코로나 팬데믹, 현재진행형인 악몽의 시간 동안에도 코로나19 감염 원인으로 사망한 의사 분들이 더러 있었지만, 솔직하게 안타까울 뿐 뼈저리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대관절 그토록 건강하고 그토록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 어떻게, 왜? 인명은 재천이고 앞뒤 순서가 없다더니…
나는 1992년 2월부터 성남시에서 열 두 번째로 이비인후과를 개원해 30년동안 같은 곳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초창기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흘러 들어와 얼마나 막막하고 막연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던 차에 성남시 이비인후과 모임에서 신입이라고 불러 주셨다. 출신 학교는 다 다르고 개원가에서 초면이지만 ‘서로 협조적으로 불미스러운 일 없이 잘 지내자’는 말씀들에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특히 그 자리에서 이목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찐한'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도 엄청나게 큰 분이 바로 이원태 원장님이었다.
이 원장님의 체구는 작은 편이지만 목소리와 억양과 눈빛이 살아 있고 그 당시 이미 격투기 포함 온갖 운동, 그리고 단전 호흡, 좌선, 오래 걷기, 등산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실천하던 분이었다. ‘건강을 잘 유지해야 환자도 잘 보고, 오래 일할 수 있고, 남들에게 폐 안 끼치고 행복하다’는 소신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데 왜? 술, 담배 다 한다고 그렇게 구박받던 나는 아직 멀쩡한데(이 글을 쓰며 평소보다 담배를 더 피우고 있다) 말이다.
이 원장님께 개원 제반 사항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문의하면 귀찮아 하지 않고 자상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답을 주고, 개념들과 절차까지 정리해서 대응 요령까지 알려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식사 대접도 하면서 점점 교류가 늘어났다. 비슷한 시기에 개원한 동년배 셋과 함께 다섯 명의 모임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는데, 이름하여 ‘성남’스럽게 ‘원태파’.
네 살 손위 이원태 원장님을 두목(사실 말만 두목이지, 일을 가만히 놔두고 못 참는 성격을 잘 알기에 실제로는 혼자 아이디어 내고, 혼자 다 기획하고 실행하는 머슴이었지만)으로 모시면서 똘똘 뭉쳐 거의 매달 모임을 갖고, 부부 동반 모임으로 발전하고, 가족처럼 서로 집에 드나들고, 함께 긴 해외 여행도 여러 번 다녔던 끈끈한 우의와 매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는 그런 비슷한 모임이 불가능할 것이고 남은 내 인생 내내 그리울 것이다.
형수 같은 사모님의 얘기를 들어 보면 더 안타깝다. 이 원장님이 처음에 확진 받고 격리와 치료 후 증상이 다소 호전되자 또 참지 못하고 진료와 일상사를 평소처럼 그대로 했던 모양이다. 그때 왜 좀 더 강력하게 며칠 더, 아니 한 달 정도 쉬라고 말리지 못했나. 진료 시간을 단축하거나 빼먹으면 나를 믿고 찾아주는 환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태만인 줄 안다. 이런 충실성이 일선 개원의들의 마음가짐이자 일상이었던 것이다.
보호 장비를 제대로 다 갖춰도 이비인후과 특성상 환자들의 목이랑 코 속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설문 조사에서도 이비인후과 개원의 70% 이상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목과 코를 들여다 본다’고 답했다. 이런 사명감이 의사의 본질이자 일상이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망진(望診) 같은 짓은 엄두도 못 낸다.
둘째라면 서럽게 집념이 강하고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의 이원태 원장님, 그런 원장님이 마지막 며칠은 ‘숨을 쉰다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드니 이제 그만 쉬고 싶다’라고 하더란다. 사모님께 이 말을 들었을 때도, 사나흘이 지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콧날이 시큰하고 눈이 흐릿하고 가슴이 먹먹하고 목소리가 떨리던 대신 자판을 멈춘다. 그 누구도 아닌 사랑하고 믿는 배우자의 눈을 마주 보며 그 포기의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참 덧없는 일이다, 사람이 산다는 일이. 이제 생노병사의 사슬에서 풀려나 평화로운 곳으로 좋게 보내드리자.
사모님과 사랑스럽고 듬직하게 잘 자란 두 따님을 죄다 얼싸안고, ‘이제 엄마는 너네 둘이 잘 보살펴 드려야 해. 아빠 빈 자리를 채워드려.' 슬픔과 사무치는 외로움, 그리움을 이겨내고 늘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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