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처리특례법 보다 '입증책임 전환'이 먼저?…국회입법조사처 "의사 정보 독점, 환자가 의사 과실 입증 못해"
특례법 제정하려면 보험·공제가입 등 면책 전제 조건 의무화하고 입증책임 전환·피해조사 공정성부터 보장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기 위해선 의료사고 발생 시 과실 입증책임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또한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도 국가가 의료인 대신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9일 의료사고처리특례법과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관련 입법 검토 보고서에서 "특례법을 제정하려면 보험 또는 공제 가입 등 면책 전제 조건 의무화, 입증책임 전환, 피해조사의 공정성 보장, 형사처벌 면책 적용 범위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처는 "입증책임 전환은 ‘증명할 수 없는 자에게 증명 책임을 지우는 불공정’을 시정해 환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수단"이라며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사고 발생 시 과실 입증책임을 원칙적으로 환자(원고)에게 부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법 제750조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원고)가 가해자(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입증책임은 주장자에게 있다’는 민사소송법상의 일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며, 진료 과정에 관한 정보와 기록 등은 의료인 측이 독점하고 있어서 환자가 의료인의 과실이나 의료행위와 악결과 간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아울러 "최근 판례와 학설에서 입증책임의 귀속 주체를 위험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당사자로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나아가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ㆍ과실을 증명하기 어려운 환경, 제조물책임 등의 분야에서는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입법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가 추진을 밝힌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도 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해당 사업은 전문의(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병원급의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심장과, 소아신경외과) 보험료의 75%(1인당 150만 원 상당), 필수의료 8개 과목 전공의(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신경과 소속 레지던트) 보험료의 50%(1인당 25만 원 상당)를 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사처는 "과실 배상책임 이행을 위해 국가가 의료인 대신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보험료 지원 사업은 자기책임 원칙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며 "정부의 ‘필수의료’ 개념이 다소 자의적이라 지원 대상 전문과목 간에 형평성 논란도 초래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문과목 간의 형평성 제고 등을 명분으로 지원 대상이 향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의 경우, 지원 대상 전문과목을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예정하고도 64% 증액 편성됐다"며 "또한 정부가 일부 분야를 선별 지원함으로써, 보편적인 책임보험 의무화에 대한 의료계 전체의 수용성을 오히려 낮추고 모든 의료인·의료기관의 책임보험 가입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에 역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