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1.22 14:54최종 업데이트 21.11.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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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환경에서 의료윤리, 나 또는 가족이 환자가 됐을 때를 기준으로 판단하라"

환경 변해도 환자 중심·생명 기반한 의료윤리는 그대로… AI가 의사 영역 대체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

사진 왼쪽 위부터 의협 학술대회 세션4(의사윤리와 의사면허 자율규제) 좌장을 맡은 한국의료윤리학회 임채만 회장과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박소연 한국의료윤리학회 총무이사, 권복규 한국의료윤리학회 교육이사,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 사진=온라인 학술대회 갈무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 32세 남자 환자가 한 달 전부터 시작된 원인 모를 설사와 체중 감소 등으로 외래에 내원했다. 환자는 과거 특이한 병력이 없었고 3개월 전에 결혼한 신혼 상태였다. 내원 후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한 끝에 환자는 최종적으로 후천성 면역 결핍증 즉, 에이즈(HIV)로 인한 장염을 진단받았다. 약 1년 전 환자가 동남아 출장에서 성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결혼한 이후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었고 부인 이외에 따로 만나는 여성은 없는 상태다. 진단 후 환자가 자신의 병명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줄 것을 주치의에게 부탁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급변하는 사회적 혹은 의료환경에서 의사윤리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 윤리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나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 상황에서 어떤 윤리적 태도가 필요할까. 

대한의사협회가 21일 개최한 '제38차 대한의사협회 온라인 종합학술대회'에선 이 같은 의사윤리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환자 자율성과 존엄성 존중…의사-환자간 라포가 가장 중요

이날 한국의료윤리학회 박소연 총무이사는 에이즈를 진단받은 환자의 사례를 기반으로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하고 환자와 의사간 라포를 강조했다. 즉, 개인적 신념에 있어선 환자의 아내에게 에이즈 전파 위험성을 알리고 검사를 권유할 수 있지만 환자와 의사간 신뢰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업무상 비밀누설 같이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박 총무이사는 "누구나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선서엔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간의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환자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다"며 "이외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의사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존중해야 한다는 구절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은 법률상에도 규정돼 있다. 실제로 형법 제317조에 따르면 업무상 비밀누설과 관련해 의사와 한의사 등 의료인은 직무 처리 중 취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할 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의료법 제19조에서도 정보 누설 금지 항목이 포함돼 있다. 

박 이사는 "법률적인 처벌이 두려워서 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환자의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기본적인 자료 수집 자체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사례의 경우 의사가 단독적으로 배우자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환자를 설득해 배우자에게 설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라포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의료 현장에서 윤리를 지킨다는 것은 결국 역지사지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며 "내가 환자가 됐을 때 혹은 가족이 환자가 됐을 때 의사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내 의사가 어땠으면 좋겠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실제 윤리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시대가 변하면서 윤리적 판단의 중요성도 계속 변하고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엇에 중심을 둬야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우리는 무엇보다 환자와 인간 자체의 존엄성을 최우선 순위에 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AI가 의사 영역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진료수가·책임소재 등 해결과제도 많아

이날 학술대회에선 인공지능(AI) 시대의 윤리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한국의료윤리학회 권복규 교육이사는 AI가 의료의 영역을 대부분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인간의 영역을 능가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그는 향후 AI 진료가 책임 소재, 정확성과 오류 가능성, 수가 산정과 해킹 등 아직 해결돼야 할 쟁점이 많아 실제 진료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엔 시기상조라고 봤다. 

권 교육이사는 "AI가 엄청한 속도와 기억력 등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지적 창의성이나 공감 능력 등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처음 스스로 증식하는 나노 입자들이 만들어 졌을 때 나노가 우주를 먹어치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20년 넘게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권 이사는 "최근 AI 영상 판독 기술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데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AI가 스크리닝 했다고 해도 의사가 다시 최종 판단을 해야 급여를 인정해 줄 것인지와 의사의 일은 어디까지이고 AI가 한 일은 어디까지 인지를 나눠서 수가를 책정하는 것이 매우 힘든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향후 AI가 더 보편화될 경우 해킹이나 빅데이터 프라이버시 등 문제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며 "바이오 센서들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송출하고 데이터 모니터링이 계속 이뤄져야 하는데 프라이버시 보장이 현재 기술 수준에서 가능하겠는가에 문제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AI 교육에 필요한 데이터의 무결성과 표준화의 문제도 지적됐다.  

권 이사는 "데이터 무결성과 표준화의 문제도 있다. AI가 잘 작동하기 위해선 올바른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모든 AI에 적절하고 표준화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며 "병원과 의사마다 사용 데이터 방식이 다르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데이터도 정말 모두 적합한 데이터인지에 대해선 회의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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