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관련해 의료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의료자원 낭비와 일차의료기관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의료계도 전체적인 방향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에 이견을 제기하진 않고 있다. 다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세부 내용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는 2016년 1월 출범했으나 보건복지부는 그보다 더 이전부터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8월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의 경향과 과제‘ 연구보고서를 보면 복지부는 1980년대 말부터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시도했다.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의료기관과 전문인력으로부터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와 이용자의 흐름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각 단계별 의료기관간 기능이 분화되지 않고 양적인 공급 확대에 주력해왔다. 이에 따른 중복과 비효율, 의료공급자(의사)의 유인 수요와 불필요한 의료이용 증가 등의 문제점을 노출했고 근본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나아가 복지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에서 그치지 않고 의료의 질에 따라 의료수가를 가감(加減) 지급하는 ‘가치기반 지불제도(Value-Based Purchasing)’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보고서를 토대로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관련한 복지부의 숨은 의도를 살펴봤다.
과잉 중복 투자 개선 요구
의료전달체계 개선 요구는 과잉투자와 비효율적 중복이 심한 데서 출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 비해 의사와 간호사 인력은 적지만 의료이용량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16년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율은 7.7%로 OECD 평균 9.0%에 비해 낮다. 한국은 인구 대비 의사 숫자가 적다.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2.2명인 반면 OECD는 3.3명에 이른다.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수는 5.9명으로 OECD 9.5명의 3분의 2도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 국민의 병원 방문 횟수는 많고 입원일수는 길다.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16.0회로 OECD 평균 7.0회의 2배가 넘는다. 환자 1인당 평균 병원 재원일수는 16.1일로 OECD 평균 8.2일에 비해 2배에 이른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수는 11.5병상으로 OECD 평균 4.7병상에 2배 이상 많다. 급성기의료 병원 병상 역시 인구 1000명당 7.3병상으로 OECD 평균은 3.7개에 비해 2배 정도 차이가 났다.
일차의료기관 비중 20% 이내로 떨어져
의료기관 기능 분화 미흡과 무제한적 경쟁으로 동네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같은 환자를 두고 경쟁하는 생태계가 마련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6년 기준 의료기관 종별 진료비를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10조 9360억, 종합병원 10조 1764억원, 병원 11조 543억원, 의원 12조 5924억원 등이었다.
2015년과 2016년 사이 종별 진료비 점유율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15.7%에서 16.9%로, 종합병원은 15.4%에서 15.8%로 늘었다. 하지만 의원은 20.3%에서 19.5%로 사상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 2015년 대비 2016년의 의료기관 당 진료비 증가율에서도 상급종합병원이 20.1%, 종합병원이 12.8%, 병원급이 5.5%에 달하지만 동네의원은 4%에 그쳤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비 상승률은 2004년~2016년까지 12년간 97.6% 늘었다. 종합병원의 진료비 상승률은 79.0%, 병원 138.7%이었지만 의원은 23.0%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의원의 외래환자수는 1.3% 줄었다. 같은 기간 진료과목별로 외래환자수는 흉부외과 –40.4%, 외과 –10.6%, 피부과 -9.7%, 일반의원 -13.3%, 이비인후과 –6.6%, 비뇨기과 –3.1% 등이었다.
보고서는 “고도의 전문 진료분야 교육을 받은 전문의가 일반적인 진료를 행하는 것이나,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GP)가 복잡한 진료를 행해 적정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양쪽 모두 전문성에서 손실을 가져온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의료전달체계를 통해 상이한 진료수준을 가진 의료기관을 상하관계 또는 경쟁관계가 아닌 분업의 관계로 나눠야 한다”라며 “공급자의 전문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체 보건의료의 목적 달성에 유리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 시행에서 필요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문재인 케어) 시행에도 필요한 것으로 지목된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건강보험 혜택으로 의료비를 보장받는 비율을 말한다.
보장성 강화는 의료서비스 이용의 형평성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정책적 수단이다. OECD 국가들의 보장성이 80%에 이르는 것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낮은 수준(2015년 기준 63.4%)이 지적되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정책으로 꼽혔다.
하지만 보장성 강화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줄어들면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을 고착화시키거나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경증 질환자가 일차의료기관이 아닌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하거나 일정한 치료를 마친 환자들이 퇴원을 하지 않고 지역사회나 일차의료기관으로 복귀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의료기관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달성하려면 중소병원을 회복기 병원, 재활병원 등 아급성 치료 기관으로 특화해야 한다”라며 “이를 통한 회송체계로의 연계를 구상하는 등의 서비스 공급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치기반의 지불제도로 개편 과정
정부는 의료전달체계를 개선을 통해 진료 행위를 양적인 부분으로 평가해서 보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 치료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지불제도(pay for performance)와 가치기반의 성과보상제도(VBP, Valued-based purchasing)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면 지역사회의 의료기관별로 묶고 이들에게 환자 치료 성과에 따라 진료비를 나눠가질 수 있게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행위별 수가제에서 의료비 부담이 무한대로 늘어나는 문제를 보완하는 개념이다.
가치(value)란 일정한 질을 유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비용효과(cost effective)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를 평가하기 위해 임상적인 과정 지표를 포함해 환자의 입장에서 평가한 의료의 질과 환자 만족도 또는 환자 경험, 장기적인 환자의 건강 결과(건강향상) 등을 평가한다.
보고서는 “가치 기반의 지불제도를 도입하려면 인센티브의 규모가 공급자의 행태 변화를 유인할 만큼 충분히 커야 한다”라며 “인센티브의 규모가 적으면 공급자의 성과 향상을 유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고, 인센티브 규모가 크면 공급자의 성과 향상 관심 및 행태 변화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보고서는 “프로그램의 설계단계부터 일선에서 환자에게 의료를 공급하는 의사들의 적극적 참여 유도가 필요하다”라며 “질 지표 선정부터 지불제도와의 연계방식 등에 이르기까지 제도화 과정 전반에 공급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전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가 가감지급 지불구조로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단기적으로 건강보험의 재정 지원을 받다가 이후에는 의료공급자가 갹출한 예산을 통해 ‘감액 예산’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로 가려면 처음에 공급자에 대한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인센티브를 충분한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자발적 참여만으로는 참여 기관과 비참여 기관 간의 질 격차가 생긴다“라며 ”성과가 높은 공급자만 참여하는 문제 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의무참여방 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평가대상은 단기적으로 전자의무기록 등 질 보고체계 기반을 구축해 놓은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수행하고 중장기적으로 의원급까지 그 대상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했다. 단기에는 과거 성과에 대한 자료 부재로 성취도(상대적 수준) 중심의 지불제도를 도입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개선도(절대적 수준)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의료의 질 향상 분담금 도입 등으로 가시화되고 있다”라며 “향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시범사업을 활성화해 한국에 적합한 가치기반 지불제도 모형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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