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0.25 06:58최종 업데이트 23.10.25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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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리기를 강요하는 정부

형사처벌 위험 감수하고 사명감만으로 버티며 필수의료에 헌신하라고 강요하다니…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민사와 형사는 다르다. 민사사건은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양 당사자가 있고 각자 자기가 옳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그 증거를 따져서 판사가 판단한다. 

그러나 형사사건은 다르다. 국민을 대리하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 

열명의 죄인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형사법 절차의 맥락이고, 거기에 따라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 형사법의 기본 원칙이다. 

따라서 형사법에서의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그리고 그 검사를 지원하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라는 공권력이 존재한다. 

경찰은 수사를 하는 곳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는 감정을 하는 곳이다. 국과수 홈페이지에 걸린 ‘감정 헌장’에는 ‘우리 연구원은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수사 감정기관으로서 최고 품질의 감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국과수가 감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희안하게도 의료사고 사건만은 외부에 있는 민간인에게 감정을 의뢰한다. 더구나 그 외부 민간인이 의료인이라고는 해도 감정의 전문가도 아니다. 의료와 감정은 엄연히 다른데 구분이 없다. 경찰, 검찰 심지어 법원까지도 무자격자 외부 민간인에게 감정을 의뢰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형사사건애서 감정을 하는데 국가공권력인 국과수를 동원하지 않고 외부 민간인에게 의존하는 체계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먼저,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같은 곳에서 감정을 의뢰할 때는 대개 사안을 주고 ‘과실부분은 없는지 여부’를 묻는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하는 국가기관인데, 사안을 감정할 국과수라는 국가기관을 두고 외부 의사에게 과실이 없는지 판별해달라고 의뢰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그 외부인이 ‘감정’에 전문가가 아니라 ‘의료행위’에 대한 전문가다. 답변에 담기는 단어 한마디가 어떤 사법적 결과를 불러올지도 예측하지 못하는 민간인에게 과실을 찾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옆에서 치료과정을 지켜본 것도 아니고 사후에 진료기록부만 보고서 범인을 찾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감정에 대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전문성을 가진 국가기관을 놔두고, 더구나 세계를 선도하는 감정기관이라고 자랑하는데 왜 국가감정기관을 외면하고 전문가처럼 보이는 외부 민간인에게 범죄를 확인해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감정이란 것은 시험문제를 채점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데, 마치 시험문제 채점하듯이 감정을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형사처벌을 한다. 

특히 법원이 감정을 의뢰하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판사는 검찰이 법정에 제시한 증거와 변호사가 제시한 반박자료를 근거로 판결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어떤 형식이든 판사가 미리 예단을 갖는다면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판사가 법정에 제시되지 않은 다른 근거를 판사의 재량으로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건 마치 판사가 재판에 관여되지 않은 제3자에게 판결권을 넘기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법은 처벌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법관은 형벌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공정한 심판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판사의 생각(양심)이 누군가 외부의 제삼자 민간인의 의견에 좌우될 수 있다면 그걸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또한 감정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말하자면 익명의 제보자 의견에 판사의 양심이 좌우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단 한 명의 억울한 희생자를 막아낼 장치는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고 보인다. 

법정구속까지 당하는 당사자가 최소한 누구의 의견 때문에 자신이 법정구속까지 당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형사사건의 감정은 감정 전문 국가기관인 국과수가 전담해야 하고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선고돼야 마땅하다. 그것이 형사법 체계에 맞다고 생각한다. 

민사사건은 형사사건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거래에서 소송의 위험이 높아지면 서비스 공급자는 서비스 가격을 높여 방어하는 자기방어권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한국의 건강보험은 수가도 정부가 통제하고 위험이 높다고 판단돼도 환자를 거부할 수가 없도록 설계돼 있다. 

민사소송의 배상은 오로지 개인이 알아서 책임지도록 설계돼 있다. 형식상 개별 행위의 수가에 위험비용을 반영해 놓았다지만 정부관료들도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형편이다. 

더구나 수가에 녹아 들어간 위험비용이란 것은 어떤 행위 전체에 대한 배상책임이 어느 정도 귀책될 것인지를 계산해서 반영하는 것인데, 이것을 개별 수가에 나눠 반영해 놓으면 허울만 위험도를 반영한 것이지 결국 폭탄돌리기나 마찬가지다. 위험도 비용은 모두다 나눠 가졌는데 사고 터진 사람이 모두 독박을 쓴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필수의료에서 모두들 '탈출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언제 내 앞에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고 폭탄이 터지면 수 억원을 배상하는 것이 다반사가 됐는데, 그 위험을 감수하고 사명감만으로 버티며 헌신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개별 수가에 묻어뒀다는 쥐꼬리만한 위험도 비용은 모두 건강보험공단이 가져가고 민사배상은 건보공단이 직접 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확률적인 계산으로도 그게 맞는 논리이다. 

요즘 벌어지는 필수의료사태는 고질적인 저수가, 과도한 사법판결, 그리고 실손보험 때문에 생긴 비급여시장의 성장이 그 원인이다. 

깨진 항아리 속에 아무리 물을 들이부어도 물이 차지 않듯이 고질적인 저수가와 과도한 사법판결부터 해결해야 문제가 바로 잡힌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된 것부터 고쳐야 정상이지, 비필수 시장 채워서 넘쳐나면 그 낙숫물로 필수의료 채우겠다는 걸 정부정책으로 추진하면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

그런 낙수전문의, 낙수의료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도록 하겠다니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겠다. 이제라도 낙수효과 같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는 접고 제대로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놔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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