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0.17 05:13최종 업데이트 23.10.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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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공의들에게 고합니다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2020년 젊은 의사 단체행동 당시 장면 

[메디게이트뉴스] 먼저 선배 의사로서 전공의 여러분들께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매우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현 사태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서게 됐습니다. 먼저 왜 현재와 같은 필수의료 부족 사태가 벌어졌는지 진단해 보겠습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처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필수의료의 붕괴를 야기한 것은 고질적인 저수가, 사법부의 과도한 판결, 그리고 실손보험 도입으로 인한 비급여 시장의 급격한 성장이라고 봅니다. 

고질적인 저수가는 의사들이 과거로부터 꾸준히 해결해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여기에 대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이 방치해 왔습니다. 수가를 올리기 위해선 건보료 상승이 필연적인데,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면 표가 떠나갈 것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부는 표에 관심이 있을 뿐, 정말로 필수의료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요즘 들어 부쩍 의료소송이 많아지며 걸핏하면 의사를 법정구속하고 수억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다반사가 됐습니다. 

지금 의사들 사이에서는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면 병원이 손해이고, 치료에 실패하면 의사가 감방 간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인 이 상황에서 의사들이 과연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때마침 정부가 도입한 실손보험이 비급여 시장을 급격히 키우며 성장하니 많은 의사들이 그 비급여 시장을 피난처로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의료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데 정부가 들고 나온 처방책은 엉뚱하게도 '의사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공급에 의한 수요 창출로 인해 의료비 폭증 및 건보료 고갈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는 것은 우리 의사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구 대비 의사 수 통계' 단 하나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의사 수가 전혀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외국에 비해 훨씬 양질의 진료를 높은 접근성으로 받을 수 있다는 다른 통계들은 모두 외면한 채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민들을 기만하는 주장들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여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거짓을 지적하고 잘못된 통계를 바로잡아 줘야 할 의사협회는 지금 묵묵부답하고 있고, 거짓된 주장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됐습니다. 

우리는 이미 2000년, 그리고 2020년 투쟁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투쟁의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때도 의쟁투 핵심 운영위원들 사이에서 투쟁의 방법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개원가, 교수를 막론하고 모두 30분 진료를 시행하자는 것부터 준법 투쟁으로 병원을 멈추자는 의견까지 다양했으나, 현실적으로 유효한 방법은 모두 함께 병원 문을 닫는 것 뿐이었습니다.

2023년 지금도 모두가 들고 일어나 함께 투쟁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는 의대 입학정원 확대가 아니더라도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고, 정원 확대가 이뤄진다면 그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것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 의사들이 의대 입학 정원 확대를 저지해 대한민국 의료를 서서히 망할 수 있게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시스템을 완전히 무너뜨려 급속히 망하게 하는 것이 의사들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세울 기회입니다.

지금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단순히 땜질 처방으로 넘어갈 수 있는 리모델링의 시기는 지났다고 판단합니다. 오히려 완전히 무너뜨려야 기초 공사부터 다시 해서 튼튼하게 재건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향의 투쟁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칼자루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줍시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는 소위 필수의료 전공을 하지 말라는 정부의 강력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정부가 하지 말라는 필수의료는 포기하고 비급여 시장에 뛰어들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자는 겁니다.

물론 이로 인해 붕괴하게 될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의사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원 확대를 강행한 무능하고 무지한 정부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우리는 더 이상 필수의료에 매진하지 않는 방법으로 투쟁합시다. 머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저들이 먼저 살려달라고 매달릴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의사다!!”
“의사는 하나다!”

“필승!!”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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