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4.04 06:51최종 업데이트 23.04.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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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만을 위한 간호사특혜법, 정의롭지 못한 간호법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현대 의료는 고령화와 함께 복잡한 개인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치료와 돌봄을 조직하고 조정하는 기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보건의료인과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의 수평, 수직적 결합이 요구되고 있다. 복잡한 개인적 요구를 위한 대표적 사례인 통합 돌봄은 일반의, 전문의,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약사, 사회복지사, 주택 및 자원봉사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팀이 필요하다.

현대 의료는 어느 한 직역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만큼 의료의 팀 접근 방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종 간 의학교육(Inter-Professional Education)이나 직종 간 의료( Inter-Professional Practice)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직종 간의 문화적 및 조직적 차이의 장벽을 극복하고 연결해 치료나 돌봄이 지속적이며 원활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고, 이미 상당한 성과를 이룬 나라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직종 간의 이해와 장벽을 극복한다는 것이 직종 간 영역침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활한 협업을 위한 명확한 직능 구분이 필요해 직역마다 고유의 직무범위 (Scope of Practice)를 규정하고 있다. 통합이나 협업에서도 책임소재와 리더십의 형태도 분명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잘못하면 직종 간 협업이 아닌 갈등 의료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보건의료인규제법, 26개 보건의료직 법 보유 

현대적인 팀 접근 방식이나 직종 간 협업을 위한 보건의료직의 직능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국제적으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보건의료인규제법(Regulated Health Professions Act 1991)이 주목을 받고 있다. 캐나다의 다른 주들도 온타리오주와 유사한 법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의사나 변호사는 통상 자유업으로 인식되나, 고도의 역량이 필요한 전문직으로서 사회의 보호와 안전을 확보하고자 무한정의 자유가 아닌 실상 까다로운 법의 간섭을 받는 규제 전문직(Regulated Profession)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대표적인 전문직을 위한 법인 캐나다의 보건의료인규제법(RHPA)은 모법으로 산하에 의사를 포함해 26개 보건 의료직에 대해 각각의 별도로 해당 직역의 법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잘 정비된 제도에서 직종 간 직역 다툼은 찾아보기 힘들다. RHPA는 26개 보건의료직 각 직역에 대한 법으로 공통적으로 직역의 등록(면허)를 위한 면허기구, 면허 종류, 면허등록 요건, 허용된 활동(Authorized Controlled Acts)제시와 직무 범위(Scope of Practice)를 설정한다. 자격 미달자가 임의로 직역 명을 사용해 전문직을 사칭하지 못하도록 하는 직역 명칭 보호와 직역에 대한 정의도 담고 있다. 

간호사에 대한 예를 보면 건강증진과 예방에 대한 평가, 돌봄 제공 및 치료, 완화 및 재활에서 최적의 기능달성과 유지를 위한 지지와 예방 활동 등이 직무 범위이고, 의료에 관한 구체적인 행위의 사례는 채혈, 주사, 흡입에 의한 물질투여 등 통제된 간호활동(Controlled Act)으로 표현된다. 또한 간호 활동에 대한 질적 보장과 간호사의 역량 유지와 평가, 비전문가적 활동에 대한 자율규제를 담고 있다.

보건의료 전문직을 위한 직역별 법률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통제하는 관료주의와는 달리 직역법의 거버넌스(治理)가 전문직 단체인 면허기구가 근본이다. 전문직 규제법은 전문직의 특성인 자율규제를 염두에 두고 전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보건의료직에 심각한 차별만을 안겨준 간호법  

일반적으로 법이 필요한 이유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를 위한 강제적인 규범을 세우기 위함으로 다른 사회규범과 비교해 강제성과 보편성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즉 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그 이행이 강제되는 규범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법의 목적은 사회구성원이 규정된 내용을 반드시 지키도록 함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간호법 제정이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법 제정의 목적에 부합하게 사회의 보호와 안전을 위하고 간호 규범의 구축이 따라야 한다. 간호 전문직무의 수(기)준을 위반한 경우 징계를 강제하는 보건의료전문직(Regulated Health Profession)의 법안다운 특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 본회 통과를 기다리는 간호법은 간호사의 권리 보호와 처우개선, 근무환경 개선 보호 그리고 복리후생에 대한 선언적 내용과 지원책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간호사 지원을 위한 ‘간호인력지원특례법’ 정도로 명명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간호조무사는 현재의 간호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아마도 ‘간호사특혜법’으로 법안 명칭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간호법안 내용에는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간호와 간병의 통합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도 담고 있어 법안 내용의 동질성 유지도 문제로 보인다. 현재의 간호사 근무 여건이 나쁘다는 것은 이견이 없다. 아마도 간호조무사는 더 할 것으로 판단된다. 간호 인력의 근무 여건이 나쁘다면 정부가 나서서 행정력으로 지원을 하면 되는 것인데 이제까지 법적 근거가 없어서 간호 분야 지원을 못 한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역으로 대학의 반값 등록금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잘만 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특정 계층으로 분류될 수 없는 보편적 전문직을 위한 지원을 법률로 규정한다는 법이 과연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보건의료직 내에 차별을 위한 제도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법으로 간호인력 지원센터를 만들면 다른 보건의료직에 대한 배려나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궁금하다.  

민주당이 법안을 만들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이해당사자나 집단의 의견 청취는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하다. 20여개의 다른 보건의료인 직종에 대한 의견조회는 직역 간의 특성을 규명하는 작업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절차다. 특정 직역의 법안이 타 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과 대비와 대안도 반드시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흔한 용어인 형평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간호사 직역이 타 보건의료 직역과 비교해 유독 나쁜 환경의 직역이어 별도의 지원법이 필요한지는 더욱 궁금하다. 절차적인 합리성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이 13개 보건의료직이 반대 성명을 내고 고비용을 들여가며 홍보전을 할 리도 없다. 간호법은 민주화를 선도한다는 거대 야당이 정치가 주도하는 사회 갈등 조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정치적 미숙함과 전문직 이해부족 이외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간호법, 간호사의 독립적 활동에 대한 우려 

애초에 간호법 초안에는 간호사의 독립적 활동을 담고 있었다. 향후 간호사의 독립 개업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는 것인데 의료로 형사처벌을 받는 의사와는 달리 면허강탈법에 정작 간호사는 빠져 있기도 하다. 일부 국가에서 조수 의사(Physician Assistant)나 전문간호사(Nurse Practitioner)에게 독립적 활동을 부여하는 것은 확실한 교육적 뒷받침과 사회적 수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산사는 의료인 임에도 과거에 비해 현저히 활동 위축이 온 것은 전문의 진료 위주의 의료특성에 기인한다.

이런 배경에도 현재의 간호법이 통과되는 경우 법 개정을 통해 독립적인 활동을 모색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즉 영어 표현으로 ‘slippery slope’ 현상을 걱정하는 것인데 여러 직역이 독립성을 요구할 것이다. 

20여개의 보건의료직에 좌절감과 차별받는 느낌을 주는 현재의 간호법은 사회정의 구현과는 거리가 있는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요소가 많다. 간호법을 제정하려면 먼저 20여개 보건의료직의 직역별 동일 수준의 법률안을 만들고 직역 간 협의도 이뤄져야 한다. 관료주의적이고 막연하며 애매한 현재의 의료법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법이 됐다는 인상이다. 더 이상 직역간의 갈등을 막고자 한다면 직역별 법안 제정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로 장기간의 시간을 요하는 포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아울러 법안 내에는 관료주의의 탈피와 전문주의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권 이래 민주당이 보여주는 간호사 편애 사조는 과연 사람이 우선이라는 자신들의 정책과 부합하는 것인지 법률 입안자에게 묻고 싶다. 어느 직역이나 독립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영역 보존을 위해 힘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간호라는 영역은 보건의료의 한 부분이고 의료는 직종간 협업과 팀 접근이 필요한 세상이 됐다. 보건의료의 직역에 관한 법안은 20여개의 다양한 보건의료직에 대한 존중과 상호 협력과 합의를 바탕으로 동시성과 동등성이 지켜져야 한다.  

현재의 간호사 일개 직역에 대한 특혜적인 법안 상정은 정의를 추구하는 법 정신과 분명히 배치돼 폐기해야 할 법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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