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시민단체, 수가·처벌강화 아닌 응급실 내 경찰 상주·매뉴얼 마련 등 환경적 요인 개선 주장
[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응급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폭력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현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향후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자리에서는 응급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폭행 가해자의 처벌과 응급실 출입제한 등 법·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의견이 모아졌다.
대한응급의학회·병원응급간호사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응급의료현장 폭력추방을 위한 긴급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김호중 교수는 "응급실 의료진 중에 뺨을 안 맞아본 의료진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며 "그동안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국내 판결은 벌금형 100만원, 200만원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응급의료 업무방해시 가중처벌에 대한 조항이 마련돼 있지만 사실상 가중처벌되는 경우는 없다"며 "우리는 처벌을 원하는 게 아니다. 이를 사전에 방지할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이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응급실 폭력의 원인으로 ▲응급의료에 대한 이해의 불충분 ▲음주자 ▲자유로운 응급실 입출입 ▲폭력발생시 의료진이나 병원의 비적극적인 대처 ▲응급실 폭력신고시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 ▲전문 경비인력에 대한 불합리한 태도 ▲응급실 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미온적 태도 등을 꼽았다.
그는 "미국 병원에는 위험요인이 있는 환자를 분리할 수 있는 격리침상이 마련돼 있었다"며 "우리나라도 음주단속 기준을 설정해 수치에 따라 결박치료, 격리치료, 진료거부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홍성엽 교수와 대한응급의학회 류현욱 법제이사도 응급의료현장의 폭력 예방을 위한 최종 방안으로 폭력에 대한 형벌 강화를 주장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지난 1995년 기준으로 미국 응급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42건, 폭행사건 1463건, 성폭력 67건, 강도 167건 등이었다. 미국 뉴욕주는 2015년 12월 응급의료서비스(Emergency Medical Services, EMS) 근무자에게 해를 가할 경우 최대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벌금형을 없앴다. 호주는 병원직원 1인당 12개월간의 언어폭력·위협·폭행 등 폭력경험 통계에서 의료진 40명이 총 50회의 언어폭력을 겪었다. 다음으로는 위협 18회, 폭행 7회 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아일랜드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응급실 과밀화, 대기시간, 중증도분류 관련, 환자의 태도, 직원의 태도 등이 폭력과 폭행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조사됐다.
홍 교수는 "1차적으로 환자나 의료진에 대한 교육을 통해 예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며 "미리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종적으로 응급의료 중 폭력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고 폭력·음주에 대한 사회적 대응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며 "음주감경 등 사법제도에 대한 정비와 폭력사범, 위해환자에 대한 이송과 처치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의학회 류 법제이사도 "응급의료현장의 폭행은 폭행 피해자뿐만 아니라 응급의료 공백을 야기해 응급환자에게 역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며 "폭력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응급실의 출입제한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류 이사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이후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응급실 출입제한 규정이 마련되면서 응급실에 환자와 의료종사자 외에는 출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다만, 시행규칙에서 응급의료기관장이 환자 보호자 1명의 응급실 출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아·장애인·주취자 또는 정실질환자의 진료 보조를 위해 필요한 경우나 이밖에 진료보조를 위해 응급의료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2명까지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법규를 강화해서 응급의료 종사자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끼칠 위험이 있는 사람, 주취자·폭력행위자 등 다른 환자의 진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응급실 출입을 금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며 "마약류 진통성에 중독된 사람에게도 폭행, 협박 엄청 자주 당한다. 간호사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이런 환자들은 응급실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 이사는 "응급실 폭력사건에 대한 법 집행도 대부분 벌금형이나 사소한 처벌에 그치고 있다. 구급대원 폭력실태를 보면 주취자들의 폭력이 92%에 달한다"며 "심신장애에 대한 처벌 감량 조항에 응급의료현장에서 발생한 폭력을 예외로 하는 등 주취 상태라 하더라도 심신장애에 판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내용으로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주취자 관리료 신설도 제안했다. 안전한 응급실을 조성하기 위해 병원에서 폭력대응 및 대비 지침을 수립, 운영하고, 이에 따른 시설, 장비, 인력과 업무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 이사는 "응급실에서 주취자 행패로 의료진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주취자의 폭력과 의료행위 방지, 의료인 보호 등을 위해 주취자 관리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주취자 관리료에 대한 수가는 정신과적 응급처치 4만2699원과 비슷한 수준인 4만4809원의 수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발제자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문화, 환경적인 요인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병원응급간호회 정은희 회장은 "2015년 이후 응급실 폭력 근절을 위해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 폭력지침도 강화하고 프로토콜 갖추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응급의료현장 최일선에 나가 있는 간호사들은 성폭력 등에 노출돼 있다"고 꼬집었다.
정 회장은 "응급실 간호사들은 병원 입구에서부터 환자 중증도를 레벨1부터 레벨5까지 분류하면서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며 "환자들의 요구와 의료진들의 합리적, 효율적 진료를 위한 의사결정이 상치되는 상황의 한 가운데에 응급간호사들이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진료안내를 무시하고 즉각적인 본인의 진료를 요구하는 환자들로부터 비일비재하게 욕설과 협박을 받고 있다"며 "국민들이 급해서 응급실을 찾고 있지만 응급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했다.
정 회장은 "정부와 유관기관에서 응급실 진료를 받기 위한 대국민 홍보를 시행해주길 바란다"며 "폭언, 폭행 가해 환자에 대해서는 응급실 입실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는 여러 법령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응급실 피해 의료인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시스템과 제도가 필요하다"며 "응급의료현장에 응급실 전담 경력이 있는 간호사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간호사들이 응급실에서 근무하기 싫어한다.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해달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김해영 법제이사는 "의료진 폭행 사건에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수사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한다"며 "성폭행 사건의 경우도 반사불벌죄로 수사착수가 즉각 발동된다"고 말했다.
김 법제이사는 "일반인의 경우 폭행사태 이후 가해자가 합의를 위해 찾아와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폭행 피해 의료진은 병원에 찾아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며 "합의를 안 해주면 악 감정을 갖고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대한병원협회 이성규 정책위원장은 "병원의 경우 공공성과 책임, 의무가 강조된다. 사적 영역이라고 하지만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면에서 공무집행과 같은 수준의 환경을 조성했으면 좋겠다"며 "우리가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불만이 현장에서 느끼는 사안은 신고 받고 경찰이 와도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응급실은 현행범 수준으로 체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시민들의 생각 속에 응급실에서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유인술 교수는 "응급실에서 올해로 30년을 근무하고 있다. 의료기관에서 폭력을 당할 때 의료진은 을 중의 을이다"라며 "절대 가운 입고 환자들하고 맞상대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우리가 기댈 곳은 공권력과 경찰 뿐이다. 경찰을 병원에 배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배치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경찰이나 경비업체 등 현장에서 즉시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환자·시민단체는 수가나 처벌에 대한 제도적인 측면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응급실 만큼은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기승전 수가와 정책 강화만 요구하는 부분은 조금 안타깝다"며 "응급실에 경찰이 상주해야 한다고 본다. 1곳당 3명이 상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제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내부적으로는 응급실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CCTV를 설치하고 병원장이 나서서 이런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필요가 있다"며 "병원장이 형사고소를 제기해 엄정한 수사와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안 대표는 "수가는 의료쪽에 이미 많은 수가가 적용돼 있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올라가지 못 할 것이다"라며 "응급실 내 폭행에 대한 매뉴얼을 만드는 등 문화적인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왜 이렇게 이런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안타까웠다"며 "꼭 처벌 강화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근본적인 문제는 처벌이 아니다. 처벌 수위만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응급실 환경 측면에서 너무 복잡하고 뭐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이 어려워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과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며 "제기된 사안들은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윤 사무총장은 "주취자나 업무방해자를 응급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환자가 폭행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며 "명확한 정의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경비주체자들에 대해 경찰이나 국가에서 교육을 시키고 매뉴얼에 대한 권한을 줄 수 있는 대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런 사건이 났을 때 연락 가능한 경찰전담 부서 등 연락체계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정부측도 이번 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박재찬 응급의료과장은 "응급실은 순간에 따라 생명의 유무가 결정되는 만큼 특히 안전해야 하고 안전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어떻게 응급실을 이용해야 하는지 대국민 홍보를 전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최주원 형사과장은 "경찰들의 미온적 대응이라는 내용속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국가원칙에 따라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중간에 커뮤니케이션상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최 형사과장은 "병원 응급실에 경찰인력을 배치하려면 약 14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 비용을 투입해 응급실에 경찰을 배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민, 의료진 등의 합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응급실에 경찰이 투입된다면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도 병원, 의료인과 일정부분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며 "앞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출동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한 "응급실 신고는 다른 신고보다 우선 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법 테두리 내에서 강력하게 저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과정, 범행, 전과, 재범 등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최 형사과장은 "이같은 경찰의 대응을 위해 CCTV 확보와 목격자 진술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병원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가 끝난 후 응급의학회, 병원응급간호사회, 응급구조사협회는 공동 호소문을 발표했다. 3개 응급의료단체는 "응급의료현장의 안전이 의료진의 안전일 뿐만 아니라 신속한 응급처치를 받아야 하는 국민과 응급환자의 안전이라는 점을 국민여러분께 호소드리고자 한다"며 "응급의료현장의 폭력을 근절하고 응급의학과 의사, 간호사, 응급구조사가 안전한 응급의료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응급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단체들은 안전한 응급의료현장을 만들기 위해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언과 폭행에 대한 관계당국의 엄중한 대처 △정부, 지자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관계 기관이 법·제도적, 행정적, 재정적 지원 요청 △응급의료 서비스 이용 문화 개선에 참여 등을 호소했다.
단체들은 "응급의료인들이 안전한 응급의료현장에서 응급 진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린다"며 "응급의료현장에서 응급의료인의 안전은 곧 국민의 권리이고 응급환자의 생명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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