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4.21 07:25최종 업데이트 23.04.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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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병실 부족, 인력 부족' 사유론 중증환자 수용 거부 불가…"의료기관 책임 과다" 우려

응급의학회 학술대회, '응급실 과밀화' 해결 없는 대책 거센 비판...응급의료 거부시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원 이하 처벌

4월 20일 열린 대한응급의학회 춘계학술대회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의료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수용곤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수용 거부 사유를 통보하도록 한 응급의료 개정법을 놓고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중증응급환자의 수용곤란 기준을 정하고,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의료기관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인근 의료기관이 모두 수용곤란일 경우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정한 의료기관이 해당 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해 의료기관에 지나친 부담을 준다는 이유다.

'정당한 사유' 시설 및 인력 기준 '모호'…경증 판단 시 의료기관 '책임' 소재 우려

20~21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응급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응급환자가 각종 사유로 응급실에 수용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돼 2021년 12월 2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응급의료법'에 대한 열띤 논의가 진행됐다. 

개정된 응급의료법 제 48조의 2(수용능력 확인 등)에서는 의료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도록 법으로 명시하고,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경우 제2조 제7호의 응급의료기관 등에 지체 없이 관련 내용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복지부는 해당 법 개정에 따라 올초 '수용곤란 고지 법령'을 담은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으나 의료계의 반발로 현재 시행이 중단된 상태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김원영 교수는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수용이 중요하나 병상 포화, 인력 부족 등의 사유로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정부가 해당 법을 통해 의료기관의 책임을 강화했다"고 법 개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해당 법 개정 이전에도 의료기관들은 각자의 '정당한' 사유로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당한 사유'의 기준이 없어 일부 환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헤메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 수용 곤란 관리체계 마련 협의체'를 통해 그 기준을 ▲응급실 시설,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이 가용 현황에 비춰 환자 사용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중증도 분류 결과 경증에 해당하는 환자를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이송하는 경우 ▲그 밖에 의료기관 능력으로는 응급환자에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 등을 ‘정당한 사유’로 합의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응급실 시설, 인력, 장비 등 응급의료자원 부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정부의 '수용곤란 고지 기준(안)'에는 △격리병상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격리병상이 없을 경우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수술실이 없는 경우 △사고 등으로 응급실이 기능할 수 없는 경우 등 엄격한 기준을 내세웠다. 

무엇보다 해당 기준에는 중증응급환자의 경우 응급실에 해당 환자를 치료할 빈 병상이 있으나 중환자실과 입원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용곤란을 고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원영 교수는 "해당 법으로 인해 앞으로 응급실은 더 이상 중환자실 부족, 병상 부족을 들어 수용 곤란을 통보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진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응급환자에서 응급환자에게 최종치료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에 전문진료과 의사 부재를 이유로 수용 곤란을 이야기할 수도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북대병원 류현욱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의 수용 곤란 고지가 이렇게 정해진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는 해당 병원에 응급의료 거부 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징역 3년 이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 환자의 경우 전화 등을 통해 119구급대로부터 상태를 듣는데,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증인 줄 알았다가 사망하는 경우 병원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류 교수는 '정당한 사유'의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류 교수는 "병상 포화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병상이 100% 찼을 때인지, 120%, 200%를 포화라고 볼 것인지 병원마다 기준을 통일하지 않으면 갈등과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인력에 대한 부분이 항상 열악하다. 인력은 환자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데, 단위 시간당 내원 환자 수, 단위 시간당 중증환자 내원환자 수, 전문의와 전공의 1인당 적정 진료량 등 환자 안전과 직결된 인력 기준에 대한 합의나 고민 없이 '정당한 기준'을 임의로 판단해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류 교수는 또 "응급실의 적절한 진료는 배후 임상과 의료진 가용 여부에 대한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최근 24시간 수술, 시술 제공 인력 부족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응급실이 중증응급환자라고 무조건 받을 수도 없다. 응급실에서 실시간 진료를 하면서 해당 임상과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수용 곤란 고지 책임의 문제로 배후 임상과와의 갈등도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든 의료기관 수용곤란일 경우, 지정 기관이 '중증응급환자' 의무 수용…'부담' 호소

수용곤란 고지 주체가 '당일 근무 응급의료 책임의사'로 정해진 것도 논란거리다. 만약 중증 응급환자의 수용 여부를 묻는 전화를 전공의가 받았을 경우 해당 전공의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증응급질환 주요 증상에 해당하는 경우 119구급대원은 이송병원을 선정하기 위해 나서는데, 인근 모든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용이 곤란할 경우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응급환자의 상태 및 이송거리 등을 고려해 이송할 응급의료기관을 선정해 응급환자 이송을 통보한 후 이송할 수 있도록 했다.

김원영 교수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를 통한 최종 이송병원 선정 기준은 시도응급의료 위원회에서 인접성, 권역센터 여부, 요일제 등을 고려해 정한다. 수용곤란 고지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은 환자를 수용해 치료를 해야하는 책무를 지게 된다. 이렇게 해당 병원에게 치료를 강제할 때는 의료소송 발생 시 면책 조항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현욱 교수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 전에 환자의 중증도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119구급대의 중증도 분류에 따라 중증응급질환에 해당될 경우 병원에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만큼 이러한 판단을 보완할 의료지도의사의 역할, 권한, 책임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송병원 선정 권한 부여의 전제 조건도 미비하다. 권한을 부여한 기관의 적절성에 대한 응급의료기관의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 납득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교수는 "응급실 환자 과밀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적절한 치료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응급실 과밀화가 응급실 환자 유입 조절 기전 부재 탓인데 정부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의료기관에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 중앙응급의료센터 고은실 실장은 "119구급대가 병원 전 적절한 환자 분류를 통해 경증 환자일 경우 이송할 적절한 환자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실시간 병원 정보를 제공하는 '내 손 안에 응급실' 시스템을 만들었다. 의료기관 응급병상 현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119에 필요한 정보만을 담았다"고 전했다.

그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전원 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중심의 종합상황판으로 개선을 했다. 향후 수용곤란 관련 모니터링 시스템을 시도별로 구축해 시행할 예정이며, 수용거부 사례도 적극 모니터링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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