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1.23 08:19최종 업데이트 23.01.2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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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바라기' 한재민 전공의 "외과 의사가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게 해달라"

[필수과 전공의 인터뷰] ③ 능력있는 서전들이 메스 놓게 만들어선 안 돼...'할 만하다' 인식 생기면 지원율 반전 가능

원자력병원 외과 한재민 전공의.
메디게이트뉴스 필수과 전공의 릴레이 인터뷰
젊은 의사들의 필수과 기피 추세 속에도 남들과 다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필수과 전공의들이 있다. 그들이 일선에서 느낀 필수과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게이트뉴스는 대한전공의협의회 필수중증의료전공의위원회 소속 전공의들과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그 속사정을 들어본다.
 
① 이혜주 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전공의 “흉부외과 그리워 돌아간다”
② 익명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 “그만두고 싶다가도 아이들 모습에 잊혀져"
③ 한재민 원자력병원 외과 전공의 “외과 의사로서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게 해달라"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자리에서 내려놓은지 어느덧 2년이 넘은 한재민 전공의(원자력병원 외과 레지던트 2년차)의 얼굴은 한결 편해보였다. 피곤한 수련 과정 속에서도 외과 의사로서 커가고 있다는 만족감의 영향인듯 했다.
 
대전협 회장이란 무거운 자리에서 내려온 후 외과 의사로서 수련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는 그는 ‘외과 전문의’들이 자부심을 갖고 메스를 들 수 있도록 사회가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과 전문의가 일자리 부족, 소송 부담 등 여러 이유로 메스를 들지 않는 것은 외과 의사 개인에겐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한 전공의의 바람과는 달리 실제 외과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3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60%대의 지원율을 기록한 것이다. 수련 기간 단축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음에도, 지원율 반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대한외과학회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와, 외과 수술 의료사고에 따른 형사처벌 증가 등의 기조 속에서 수련 기간 단축만으론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돌리긴 역부족이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외과 전공의로서 수련을 받고 있는 젊은 의사의 생각은 어떨까. 메디게이트뉴스는 한재민 전공의를 만나 외과 전공의로서의 삶과 외과의 위기를 초래한 여러 이슈들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의전원 시절부터 '외과' 바라기...가족∙지인들 지지 속 개인적으로도 '만족'

Q. 외과에 지원했던 계기는 뭔가.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거다. 누군가는 명예를 최고로 칠 수도 있고, 또 누군가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내가 의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과가 어디일까 생각했을 때 필수중증의료 분야 중에서도 외과나 흉부외과가가 거기에 부합한다고 봤다. 실제로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 할 때부터 외과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인턴을 할 때도 외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턴을 하던 중에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전공의에 지원한 병원의 외과 의국에서 조금 부담스러워 했다. 인력 여건상 전공의가 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까지 지원을 해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지원하려던 병원은 가지 못하게 됐지만 이후에 그런 부분들을 이해해주는 원자력병원 외과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Q. 외과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가족들이나 주변 지인들은 오히려 내 가치관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해준다. 평소에도 여러 측면에서 이해를 많이 해주는 편이다. 당장 오늘도 부인이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터뷰 시간을 갖고, 수련을 받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힘든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데 동의하니 믿고 응원해주는 거다.
 
Q. 외과 전공의로서 삶은 어땠나.
 
적어도 1년차 때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야겠다고 각오를 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주 80시간 규정이 있는 전공의법이 있어서 적어도 정규시간을 넘어서는 정도의 업무 로딩이 부여되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정규 업무를 주어진 시간 내에 마무리하지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하는 식으로 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그건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일의 마감일이 내일이면 일반 직장인들도 다 책임감을 갖고 늦게까지 일하지 않나. 그런 정도다.

젊은 세대들도 어느 직역에 있든 일정 정도는 그런 부분에 대해 감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그만두겠다는 결정, 더 늦기전에 본인에게 더 가치있는 영역에 집중하고 투자해야겠단 결정이 이전세대보다 빠른 건 맞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굉장히 만족하면서 수련을 받고 있다.
 
Q. 결혼을 하셨고, 아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외과 전공의라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아쉽진 않나.
 
물론 아이들은 항상 보고싶고 되도록 빨리 귀가하려고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양적으론 길지 않더라도 선명한 기억으론 남을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집중에서 아이에게 가치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나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그런 순간 순간들이 있다.

Q. 수련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오히려 수술을 잘 받고 문제없이 나가는 환자들은 기억이 잘 안 나고, 상태가 악화돼 사망한 환자들이 기억에 남는다. 환자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면서 그간 있었던 해당 환자와 관련한 일들이 떠오르고 ‘내가 조금이라도 더 신경썼으면 환자가 나아질 수 있었을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이런 부분들은 챙겨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한재민 전공의는 대전협 회장직 수행 당시 공공의대 신설 필요성을 놓고 서울의대 김윤 교수와 공청회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수술실 CCTV∙소송 문제 등 환자와 '신뢰' 형성 중요...PA는 불가능한 행위 명확히 해야
 
Q. 2023년 9월부터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이 시행에 들어간다. 외과 전공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아는 한에서 수술실 안에서는 책 잡힐 일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수술 후에 다시 리뷰를 하기 위한 용도의 영상들은 발전적 방향으로 쓰일 여지가 있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 사고가 생겼을 때 ‘어떤 부분이 잘못됐을까’, ‘어떤 부분을 다르게 했으면 더 좋았을까’를 리뷰하기 위해 기록하는 건 분명히 필요할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영상들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그게 환자 안전이라는 의료인이 갖춰야할 기본적 윤리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단순히 보호자의 만족을 위해서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처럼 상업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물론 방어진료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Q. 소송 문제도 젊은 의사들이 외과 선택을 꺼리는 이유로 꼽힌다.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 있는건 아니다. 충분히 검증된 치료 방법임에도 병의 경과를 호전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환자, 의사의 신뢰 관계가 적절하게 형성돼 있으면 그런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관계 형성이 미진한 환자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불안하다.

특히 평상시엔 관심이 없던 보호자가 문제가 생기면 찾아와 항의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럴 땐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나 다른 보호자에게 설명했던 내용을 반복해 설명드리는데 그럼에도 부담이 큰 건 사실이다. 소위 3분 진료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환자나 환자 보호자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관계를 형성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Q. 외과 교수들 중에선 젊은 전공의들의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들도 많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세대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 않나. 결국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고 커뮤니케이션 부족의 문제인 것 같다. 인턴이나 저연차 전공의 입장에선 ‘나한테 이런 걸 시켜도 돼나’, ‘내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가’라는  걱정을 하면서 근무한다. 그러다가 정규시간 내에 업무를 끝내지 못하면 나를 이렇게 내버려둬도 되나라는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의료 분야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럴 때 상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는 내 힘으로 끝내고 싶어하지 다른 사람에게 소위 ‘아쉬운 소리’를 잘 못한다는 거다. 그런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보니 오해가 쌓이는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본인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으니 말을 못하고, 교수들이 봤을 때는 전공의들이 잘 물어보지도 않고, 주 80시간이라고 집에 가버리고 하니 배우려는 의지가 없어 보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사실 스탭들 입장에선 일이 진행되게 하는 게 주요한 관심사다.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환자를 어떻게 진료하고 수술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러다 보니 전공의는 가르쳐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단순히 부하 직원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 교수들도 본인이 전공의들을 위해 뭘 해주면 좋을지를 잘 모르는 거다. 결국은 전공의나 교수들이 서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Q. 외과는 인력 문제와 맞물려 진료보조인력(PA) 논의가 가장 활발하다. 실제 지난해 학회에선 PA 양성화 문제가 공개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외과 전공의로서 PA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PA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영역에 대해서 만큼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실제 현장에선  PA가 어디까지 보조를 해주는지는 병원마다, 교수들마다 각양각색이다. 어떤 교수들은 이건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영역까지 PA에게 맡기는 교수들도 있을거고, ‘이건 안 된다. 여기까지만 도와달라’고 하는 교수들도 있을 거다. 물론 애매한 회색지대가 있긴 하지만 PA가 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스탭들의 인식이 아쉬울 때도 있다. ‘어떻게 이런 걸 간호사한테 시킬 수 있지’ 하는 부분까지 지시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거다. 회색 영역에 대해선 당장 건드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명확히 해야 한다.
 
Q. 연장선상에서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선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의대정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전협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 참여한 의대증원 관련 공청회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거기에 온 사람들은 필수의료가 위기이고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강하게 말하더라. 근데 내놓는 대안은 당장의 갈급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의대 증원은 최소 10년 20년 뒤에나 영향이 나타날 부분인데, 그런 점에서 보면 다소간의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느낀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의대증원이란 안이 나온게 아니라, 이미 의대증원이란 답은 정해져있고 거기에 맞춰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과연 의사를 늘린다고 해서 필수의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나.

외과도 '할 만하다'는 인식 퍼질 계기 있어야...외과 전문의가 역량 펼칠 활로 필요
 
Q. 어떻게 하면 젊은 의사들이 외과를 택하게 될까.
 
외과 의사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리스크들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선택을 꺼리게 되는데, 그런 부분이 사실은 걱정하는 것 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계기만 있다면 순식간에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사례가 꽈추형으로 화제를 끌고 있는 비뇨의학과 전문의 홍성우 원장님이다. 그 분이 터지고 나서 비뇨의학과의 지원율이 크게 올랐다. ‘생각보다 할만하다’ ‘생각보다 자리가 있다’라는 인식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외과의사에게 더 이상 사명감만 강요해선 안 된다. 소송 위험에서 벗어나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분쟁특례법 제정과 외과 전문의를 따고 나와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마련 등의 실질적 대책도 필요하다.
 
Q. 후배들에게 외과의사를 추천 해줄 수 있나.
 
결국 개인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게 외과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환자를 성심성의껏 보려고 노력한다. 외과 영역을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겐 어떤 가치관 때문에 선택을 하려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나처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다는 것 자체로 보람을 느끼는 이들에겐 외과만한 과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 환자를 살리는 경우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걸 고민하거나 이것 저것 따지게 된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뭔지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최근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엔 전문의다운 전문의가 필요에 비해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자의로 본인의 전문과목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량은 뛰어난 사람들인데 너무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외과 전문의로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선배 중에 현재 검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실력이 아깝다고 하는데 본인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자리가 없었거나 본인이 계속 외과 일을 하기 힘들어서 내린 선택일텐데 어떻게 하겠나.

사회가 그런 의사들이 자신의 역량을 자부심을 갖고 맘껏 펼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 그런 환경이 되지 않다보니 아이러니 하게도 외과를 선택한 사람들 중에 그냥 외과 전문의 타이틀이 필요해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전문의다운 전문의가 될 수가 없다. 목적 자체가 다르니 말 그대로 식물 전문의가 되는 거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선 과감하게 재평가도 필요하고, 궁극적으론 우리 사회가 전문의로 기능하는 이들을 조금 더 존중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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