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2.27 07:12최종 업데이트 23.02.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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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지원대책, 국민들엔 '희망고문', 의료계엔 '절망 고통'을 선사하는 건 아닐까

의료형사범죄화로 인한 '내외산소' 자연 소멸과 필수적인 재원 지원이 확실치 않은 대책 우려

[칼럼] 안덕선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최근 대학병원 소아과 입원실 폐쇄, 대학병원 근무 중 뇌졸중으로 사망한 간호사의 불행한 사례와 의사 인력 증원 등 여러 사안을 이유로 1월 31일 정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이 발표됐다.

대책 내용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 의료 전반의 문제를 최근 사건을 중심으로 의료 개선책을 담은 것이다. 정작 의료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대책의 내용은 기존의 대책을 모아서 재정투입이 억제된 선에서 만들어낸 기존의 '재탕' 종합대책이라는 의견이다.

필수의료 지원대책안에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사안이 무엇인가는 불분명해 보였다. 공공정책수가 등 다양한 혼란스러운 수가 이름으로 수가 인상을 추진하는 한편 종별가산을 폐지해 좋게는 의료비 효율성 제고로 포장됐으나, 지원대책에서 재원 대책은 분명치 않아 실현 가능성이 낮은 효과성 없는 대책이라는 평이다.

응급의료와 뇌졸중 등 당직 제도개선과 지역 네트워크 개선 등을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도 했고 의료인력 증원과 교육 수련 그리고 비급여도 언급됐다. 의료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도대체 필수 의료가 무엇인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대책 내용이 최근 뉴스거리가 됐던 중증 진료, 분만, 소아 진료가 중심이 됐는데, 다음번 시리즈는 어떤 사건 사고와 연결될지 궁금하다. 

필수 의료대책이 우리나라 의료의 종합적인 대책으로 둔갑한 것은 필수 의료가 정의하기 힘든 모호한 단어로 생명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 다 필수 의료로 확장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적 단어에 대한 논리적인 규명과 철저한 분석이 필수적인데, '필수 의료'라는 애매한 단어를 사용해 실제의 현실 세계에서 경험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연유인지 지난 문재인 정부는 유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알고 보면 공공의료 등 실재가 불분명한 단어를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이번에 발표된 대책의 목표는 언제 어디서든 필수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지만, 정작 필수 의료가 무엇이고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없다. ‘언제 어디서든지 골든타임 내’가 필수 의료대책의 목표로 설정한 것은 지난 문재인 정부의 집 근처에서 분만과 수술을 받게 한다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목표와 아주 비슷한 응급의료를 위한 정치적 선전 구호로 들린다. 

국제적으로 필수 의료라는 용어의 사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의료 파업 기간 중 제공해야 할 최소의 의료로도 사용되고 있기는 하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필수 의료와 가장 가까운 의미는 세계보건기구의 1차 의료 개념으로 보인다. 이것을 위한 보장성 강화가 세계보건기구의 목표이기도 하다. 필수 의료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자면 개인 건강, 가족 건강 그리고 지역 사회 건강 관리인데 잘 정비된 의료전달 체계와 의료 활동에 대한 통합이 전체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도 과연 지역 사회의 범위는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어려운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영토도 적고 국토면적 당 인구 거주 지역의 비율이 매우 집합적이고 고밀도의 나라에서 의료에 관한 인위적 지역 사회의 분할도 매우 어려운 정치적인 과제다. 역사적으로 국민에게 의료기관 선택의 무제한 자유권을 허용한 나라에서 이제 인위적인 지역별 의료소비 통제는 적용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 된 의료전달 체계와 의료 활동 통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정부가 사용하는 필수 의료라는 공적 단어를 뒷받침할 만한 논리적, 법적, 언어적 개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수 의료를 생명을 다루는 모든 중증질환으로 정의한다면 생명을 다루는 희귀 사례도 모두 포함된다.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라는 목표는 필수의료가 아닌 응급의료 대책으로 보이고 목표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징적인 구호에 가깝다.

중산층이 없는 태국은 나라에서 제공하는 공적 의료의 범위를 필수 의료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 단돈 1달러로 신장이식까지 제공해 주는 상향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대신에 30-40인용 공동병실도 감내해야 한다. 신장이식이 필수 의료의 구체적인 한 범위인 셈이다. GDP 대비 18% 이상을 의료비로 사용하는 부자 나라인 미국도 ‘전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라는 구호는 없다. 주치의를 만나기도 힘들고 영토도 넓어 의사가 없는 지역도 많다. 

의료사회주의를 채택한 캐나다는 국민이 중병에 처했을 때 자신의 주머니에서 금전 지출이 없게 하는 것이 명확한 의료의 목표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차 의료, 이차 의료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부차 의료의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잘 설계된 공공의료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 같으나, 현재 캐나다에서 주치의를 못 구하는 가정도 많고 실제 주치의를 만나는데 1주일 이상이 걸리는 망극한 처지다.

한동안 세계 최고의 의료로 자부하던 프랑스도 현재 600만명의 주민은 주치의가 없는 의료사막(medical desert)에서 살고 있다. 프랑스는 의료비로 GDP의 12%를 사용하고 인구 1000명 당 의사가 3.2로 의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규제를 풀고 의사가 없는 비도시지역 정착을 위해 의사에게 일시금 5만 유로의 정착비 지급을 내세웠으나 모두 실패한 정책이 되고 말았다.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시골의 정착비로는 현재의 의료 사막지대의 녹지화는 해결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진이 25유로(약 3만4000원)로 다른 선진 유럽에 비해 낮다. 의사들은 최소한 50유로(약 6만8000원)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진이 13유로 정도인 우리나라가 경험하는 필수 의료의 붕괴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현재 프랑스는 의료현장에서 파업과 집단 병가 휴진 등 다양한 노동쟁의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업무 개시 행정명령도 없고 파업은 파업으로 존중받고 있다. 형사처벌에 대한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직과 이민을 생각하는 의사가 늘어가고만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마크롱 대통령은 세상이 바뀌었다며 간호사와 조수 의사에게 일차진료를 허용하는 정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나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GDP 1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선진 부자나라도 ‘언제 어디서든지 골든타임 내’라는 필수 의료 구호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이제 8%대 의료비 지출도 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보면서 사건·사고 이후에 보여주는 간헐적인 전반적 의료 정책 수립 보다 의료에 관한 더 근본적인 논의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의료는 무엇이고 어떤 설계를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지속적으로 시도해봐야 한다. 의정합의체는 파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정부와 전문직의 임시적 논의기구로 상시적인 기구가 필요하다.

정부와 전문직이 주도적으로 우리나라 규모의 경제에 부합하는 의료비 상한선과 의료에 대한 공공의 투자도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한다. 정부는 인력양성을 포함해 말로만 하는 공공성 강화를 어떻게 실현할지도 구체적인 일정과 대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재정투입불가’라는 단서가 붙으면 정책 구현은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현재의 우리나라 의료는 군사, 진보, 보수, 역대 모든 정권이 관료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수가 통제와 시장경제와 같은 자유경쟁 의료 체제의 결과로 신속 진료와 세부 전문의 진료를 강점으로 갖는 의료로 발전돼 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저수가에서 세계 최고의 신속 의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 현상이 지금의 필수 의료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오랜 기간 전문직에 대한 강압적인 통제와 시대착오적인 ‘의료형사범죄화’의 결과로 내, 외, 산, 소의 기본 임상과의 파업보다 무서운 자연 소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필수적인 재원 지원이 확실하지 않아 보이는 야심찬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과연 ‘전국민에게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라는 희망 고문을 아니면 의료계에 절망의 고통을 선사할지 덤덤히 새 정부의 민생역량을 지켜볼 일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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