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의사 지도로 광범위한 불법 의료행위에 응급시술까지 허용? 전문간호사 개정안 전면 재검토하라"
병원의사협의회 "마취·정신·응급·중환자·호스피스·임상·아동, 반드시 의사 처방 하에서 업무 내용 빠져"
[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현재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으로 인해 파생된 불법 무면허 진료보조인력(Unlicensed Assistant, UA)의 의료행위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불법을 무리하게 합법화하려고 시도하는 정부와 병원계, 간호계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UA 합법화 시도는 부당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번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9일 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보건복지부가 3일부터 9월 13일까지 입법예고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대한 문제점 분석을 통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법률에서 보건복지부령에 위임한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전문간호사 교육기관의 지정 및 평가 등 질 관리 업무를 전문성을 가진 관계기관에 위탁하기 위해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 2020년 12월에 구성된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협의체'(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병원협회, 공익위원 등 참여)를 통해 3차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후 발표됐다.
병의협은 “이번 개정안이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배경에는 지난 6월 한국전문간호사협회가 U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 근절 대안으로 '전문간호사제'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일이 관련 있어 보인다”라며 “당시 한국전문간호사협회는 전문간호사 업무범위에 UA 업무를 추가하면 불법성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제정은 관행적으로 묵인해 온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병의협은 “한국전문간호사협회의 이런 주장은 전문간호사제도를 UA 합법화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비친 것이다"라며 "불법 UA 의료행위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간호계마저도 제대로 된 문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일이다”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최근 복지부는 UA 합법화를 위해 노조 및 시민단체와 만든 협의체에서 UA 관련 공청회 및 시범사업 추진 계획까지 발표했다. 서울대병원은 자체 규정 검토를 통해 UA 양성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라며" 불법 UA 의료행위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정부와 병원계는 그저 최소한의 비용을 투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또한 “간호계는 이 과정에서 불법의 사각에 놓인 민초 간호사들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은 모색하지 않고, UA 합법화나 전문간호사 제도 활용 등 의료인 면허범위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① 13개의 전문간호사 분야별 업무 범위가 상이하고 모호해 전문간호사 제도가 UA 합법화의 도구로 악용될 우려
이번 전문간호사 자격인증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바로 전문간호사 전문 분야를 13개 분야로 확정하고, 각 분야별로 업무 범위를 정한 것이다. 병의협은 “전문간호사는 의료인 중에서 간호사의 한 세부 직역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의료법상 규정된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활동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의료법에 정의된 간호사의 업무
가.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
다.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ㆍ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의 기획과 수행,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보건활동
라. 제80조에 따른 간호조무사가 수행하는 가목부터 다목까지의 업무보조에 대한 지도
병의협은 “의료법에서 정의된 간호사 업무 규정 중에서 가장 핵심 내용은 바로 '나'목에 나와있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이다. 그런데 의료법의 하위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전문간호사 자격인증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의 내용에는 이를 벗어나거나 해석에 따라 판단이 모호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의협은 “특히 13개 전문간호사 분야의 기본 업무를 정의한 부분에서 보건, 정신, 산업, 노인 분야에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시행하는 처치, 주사 등 그 밖에 진료에 필요한 업무'라고 명시돼 있지만, 다른 9개 분야에서는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 시행하는'이라는 문구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가정 전문간호사나 감염관리 전문간호사의 경우는 업무 특성상 의사의 처방 하에 업무를 시행하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어 이러한 문구가 빠져 있는 것이 이해된다. 하지만 나머지 마취, 정신, 응급, 중환자, 호스피스, 임상, 아동 전문간호사의 경우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 하에서 업무가 이뤄져야 함에도 이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지도'라는 그 성격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행위만 있으면 전문간호사가 해당 분야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도 무방하다고 해석될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했다.
가령 법적으로 의사의 '지도'만 있으면 대리시행이 가능하다고 돼있는 복부 초음파의 경우를 보면 실질적으로 의사의 지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광범위한 대리시행이 이뤄지고 있다. 심장 초음파의 경우는 의사의 지도가 있어도 대리시행이 불법인 상황에서도 UA 불법 대리시행이 논란이 돼왔다.
병의협은 “개정안은 UA 불법 의료행위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라며 “또한 개정안에서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해 기존 의료법에서 정의한 '진료의 보조'보다는 훨씬 폭 넓은 해석이 가능하도록 바꿔 놓은 것도 UA 불법 의료행위의 합법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②응급 전문간호가 응급 시 응급시술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환자안전 측면이나 의료인 면허범위 측면에서 부당
병의협은 이번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의 내용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응급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 규정에 응급시술을 허용하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에 나온 응급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 내용 중 '라'목에는 응급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시술ㆍ처치ㆍ관리, 그 밖의 응급전문간호에 필요한 업무'로 기술해 놓음으로써 응급시술을 전문간호사가 할 수 있는 행위로 기술해 놓았다.
병의협은 “개정안에서 응급 전문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처치, 주사 등 이밖에 이에 준하는 응급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하도록 규정돼 있어 보건, 정신, 산업, 노인 전문간호사와는 다르게 '처방 하에 시행하는'이라는 내용이 빠져있다”라며 “따라서 응급 전문간호사는 의사의 처방이 없어도 지도만 있다면 필요한 어떠한 업무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업무 내용 중에 응급시술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병의협은 “일반적인 응급시술은 기관삽관, 흉관삽관, 중심정맥관 삽입, 복수 및 흉수 천자, 기관절개술, 지혈을 목적으로 한 창상봉합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면서도 매우 침습적인 의료 행위들이 대부분이다”라며 “응급시술을 의사의 '지도'만 있다면 전문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환자안전의 측면이나 의료인 면허범위의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
병의협은 “환자 안전의 측면에서 보면, 물론 지금의 UA처럼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술기적으로 전문간호사가 의사보다 더 뛰어난 경우도 생겨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응급 상황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학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고 폭 넓은 의학 지식이 있어야만 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고 전문간호사 응급시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러면서 “응급시술은 분명 전문간호사가 시행했지만, 의사에게는 '지도' 책임이 있으므로 만약 시술이 잘못 됐을 경우에 시술자인 전문간호사와 의사가 동시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판례 등을 보았을 때 의사의 책임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라며 “환자 입장에서는 기존에는 시술자인 의사와만 법적 다툼을 하면 됐던 상황에서 더 다양한 변수가 발생해 어려움에 처한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현재 이뤄지는 불법 UA 의료행위보다 더욱 광범위한 의료행위가 간호사들에 허용된다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더욱 큰 문제를 만들어낸다”라며 “의료법상 전문간호사도 간호사이므로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의 업무 범위인 '진료의 보조'의 역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개정안의 응급시술 허용 등의 내용은 상위법인 의료법과 충돌해 법의 정당성 논란과 함께 의료인 면허체계의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병의협은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업무범위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의료인간 면허 범위 관련 분쟁이 더욱 심화하고 환자들에게도 의료의 질이 하락할 것으로 우려했다.
③표준화된 전문간호사 교육 과정이 없어 간호대학별로 상이한 교육이 이뤄지고 일부 부실 교육마저 우려
병의협은 “개정안에는 전문간호사 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교수요원 인원과 실습 협약 기관의 조건만 명시가 돼있을 뿐, 구체적인 전문간호사 교육 과정과 관련된 내용은 기술돼 있지 않다”라며 체계적인 교육이 부재한 문제도 짚었다.
병의협은 “13개 분야 전문간호사가 육성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학습 목표와 교육 과정이 필요하고, 실습 교육에는 어떠한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지 등의 내용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내용이 없다”라며 “현재 일부 간호대학들의 부실 교육 논란도 있는 상황에서 아직 표준화된 교육과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전문간호사 제도를 성급하게 시행하면 부실 교육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전문간호사 자격시험을 통해서 최소한의 자격 검증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환자 치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실무 능력을 좌우할 수 있는 교육 내용의 부실은 결국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병의협은 “정부는 전문간호사 제도의 성급한 시행보다는 전문간호사 교육 과정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통해 표준화된 교육 과정을 마련하고, 실제 간호대학과 수련 병원들에서 이러한 교육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 인프라까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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