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조원준 전문위원 "제도 목적이 소송을 최소화하는 데 있음에 방점 찍고 좁은 범위부터 시작해야"
사진: '의료사고 피해자 울분 해소와 형사고소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는 국회 토론회'가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환자와 의사 간 의료사고에 대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중재해줄 수 있는 제도가 미비해 많은 경우 소송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환자와 유족 입장에서 합당한 수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낮으며, 의사들 역시 소송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며, '수사 리스크'에 따른 불안감으로 필수의료에 대한 기피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소송에 의존하는 분쟁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김남희, 김윤 의원이 주최한 '의료사고 피해자 울분 해소와 형사고소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는 국회 토론회'가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김윤 의원은 개회사에서 "의료사고는 환자와 가족에게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남기고, 의료진들도 마찬가지로 깊은 상처를 안게 한다. 환자와 의사가 갈등을 일으키고 법정 분쟁의 당사자가 되고, 지리한 소송을 하게 되면 모두가 더 큰 피해자가 되는 것 같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사고를 둘러싼 허술한 제도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문제를 법정에서가 아니라 의료진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환자의 피해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 합리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조정 제도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면서 "정부도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고, 국회도 정부안을 바탕으로 여러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이날 지정토론에서 "그동안의 사례들을 보면 의료사고 형사소송에서 재판부가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판례를 보기 힘들다. 형사 고소를 해도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어렵게 기소되더라도 대부분 무죄 또는 벌금형에 그친다. 이것이 민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쳐 거액의 변호사 비용까지 부담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와 유가족이 연간 764명의 의사를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형사고소를 해도 기소된 경우는 35건이며, 그 중에서 실형인 금고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3~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대표는 이러한 악순환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환자안전사고 설명의무 ▲환자안전사고 사과·유감·위로 표시 증거능력 배제 ▲의료사고 트라우마센터 설치·운영을 도입하는 것과 ▲의료분쟁조정법 제51조 제1항 의료사고 반의사불벌죄 특례 규정을 개정해 현행 '경상해'에 '중상해'를 추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 대표는 "단순과실이든 중과실이든 상관없이 업무상 과실로 경상해 또는 중상해(사망 제외)가 발생하더라도 의료분쟁 조정 또는 중재 신청을 통해 실제 조정 또는 중재가 성립되면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면서 이를 통해 형사고소 최소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의료계와 수요계, 법조계 등이 참여하는 정부 상설 심의기구인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안 대표는 "의료계에서는 형사고소를 당한 의사가 경찰에 소환돼 범죄인 취급을 당하며 모욕을 당해 고위험 필수의료 진료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개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의료계의 불만을 해소하면서 피해자 입장에서도 현재보다 강화된 의료감정 절차를 거치고 의료계뿐 아니라, 수요계, 법조계가 참여한 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하므로 충분히 사회적 논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수석전문위원은 "기본적으로 의료사고는 고의가 없는 과실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명백한데 가해자성을 두고 해석하기가 힘든 영역이 존재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충분하고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설명이 없고,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줄 만한 다른 반응도 없는 상황에서 정보의 불균형이 명확하기 때문에 본인이 불리하다는 생각이 커 소송으로 가서 해결하고자 할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6년 OECD는 이 문제와 관련해 기본적인 방향을 제기했다. 제일 강조하는 것이 소송에 의존하는 분쟁 체계를 바꾸라는 것이다. 제도를 통해 가능하면 소송으로 가지 않도록 완충 장치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OECD의 권고 사항이다"면서 "제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분분할 수 있지만, 제도의 목적이 소송을 남발하거나 소송으로 가려는 경향성을 최소한으로 완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에 합의하고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인 보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공적 배상 체계가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대한의사협회는 배상공제조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 토대가 있고, 여기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조 전문위원은 "이번 토론회에서 많이 강조되고 그동안 우리가 등한시했다 반성해야 될 부분이 바로 소통이나 갈등 관리 차원에 대한 접근을 더 강화해야 된다는 것이다. 상실감이나 울분을 치유해줄 수 있는 제도가 같이 맞물려야 한다"고 했다.
조 전문위원은 이어 "사법 리스크의 범위와 강도에 대한 입장 차가 크다는 점에서 서로의 시각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 국민들의 정서 속에서도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좁은 범위부터 시작해 완화하는 접근을 선제적으로 할 수 잇는 영역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이 부분과 관련해 의료계와 환자, 정부가 같이 합의할 수 있는 논의 테이블이 빠르게 마련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신현두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환자 입장에서는 설명 의무나 정보의 비대칭성 부분에서 분쟁 해결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보니 환자 대변인 제도같은 것을 도입하려 한다"고 했다.
신 과장은 "의료진 입장에서는 형사 책임에 대한 우려가 크고, 필수 의료 기피 현상 등 단순히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별도로 의료사고 심의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최소한 수사기관에서 부당하게 수사를 받거나 수사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