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부당한 의료소송 어디로 가는가 ① 서슬 퍼런 사법부 판결에 무너지는 '필수의료'…10억대 배상 판결에 의사 실형까지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지난해에는 유독 의료계를 옥죄는 의료소송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의료계, 특히 필수의료에 속하는 의사들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책임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민사 소송에서 피해자 온정주의적 판결이 잇따르며 10억대의 거액 배상 판결이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민사에서 승소한 증거를 갖고 형사 소송을 제기해 재판부가 의료인에게 징역을 선고하는 실형 판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의료소송 판결 경향에 업무 강도는 높고 보상은 낮은 필수의료과 의사들은 의료소송이라는 또 다른 위험성까지 더해졌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젊은 의사들도 필수의료과의 '하이 리스크'를 피하려는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2024년도 전반기 레지던트 모집 결과는 벼랑 끝에 몰린 필수의료과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불가항력적 분만사고에 거액 민사소송 제기…재판부도 10억, 12억 판결 선고
지난해 의료소송으로 가장 많이 오르내린 과는 역시 다양한 필수의료과 중에서도 예측이 어려워 위험성이 높은 산부인과였다.
먼저 3월에는 수원고등법원이 분만 과정에서 영구 장애를 입게 된 산모 가족이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리고 병원에 10억 6180만원과 지연이자 배상하라고 선고해 논란이 됐다.
해당 산모는 2016년 2월경 A병원을 입원해 질식분만을 시도하다 응급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출산했다.
수술 직후에는 A씨에게 특별한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의료진이 수술 부위를 봉합하던 중 질 내출혈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부분자궁적출술을 시행했으나 이 과정에서 A씨의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상승하는 등 위험한 상태에 처했고, 병원은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한편 A씨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했다.
전원된 A씨는 코마상태로 복부 CT 촬영 결과 복부에서 다발성 출혈병소가 관찰돼 의료진은 자궁동맥색전술을 시행했고, A씨는 저산소성 뇌 손상 의증, 산과적 (폐)색전증 의증을 진단받아 뇌 기능 손상 등의 후유장애를 입었다.
1심 병원은 산모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지만 이어진 항소심에서 2심 법원은 병원 의료진이 A씨에게 발생한 대량 출혈을 늦게 확인한 과실이 있다며 병원에 10억6180만원과 지난 2016년 2월부터 발생한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7월에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의 부모가 산부인과 의사 B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부모 측의 손을 들어 총 12억여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임신부는 유도분만 예정일 하루 전인 2016년 11월 20일 진통을 느껴 저녁 10시 30분경 평소 진료받던 산부인과에 내원했다. 산부인과의원 간호사는 밤 12시경 임신부에게 태동검사(NST)를 실시했으나 새벽 1시쯤 NST 검사 그래프상 태아의 심박수가 분당 80~90회로 떨어지자 의사는 새벽 1시 25분경 응급 제왕절개술을 시행했다.
재판부는 사건의 임신부는 출산예정일 하루 전 입원해 태동이 약하다고 증상을 말했음에도 의사가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뒤늦게 응급 제왕절개술을 실시했다며 B씨에게 상태 관찰을 소홀히 한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B씨가 해당 임신부의 특별한 이상을 예상하기 어려웠고, 태아를 소생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을 고려해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70%로 제한했다.
이처럼 산부인과 분만 시 발생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이 다수 제기된 가운데 재판부가 1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의 배상 판결을 잇따라 내리면서 산부인과계는 반발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은 아무리 검사 장비가 발달해도 정확한 태아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본질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고, 분만의 낮은 수가와 낮은 출산율 등으로 분만의료현장의 열악함 속에 분만을 시행하는 의사들에게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의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소아 심장수술 중 '대동맥 캐뉼라' 탈락, 8억 배상…혈관의증 전달 안 한 병원, 17억 배상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 배상을 선고한 판결은 산부인과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올해 9월, 서울고등법원은 심장기형으로 태어난 소아환자에게 심장수술을 진행한 C병원 의료진에게 9억여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선고를 내렸다.
사건의 환자는 C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환자로 당시 팔로사징후(tetralogy of Fallot) 및 부분적 폐정맥 이상, 시미타 증후군 등 선천성 심장기형 진단을 받아 C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지속적인 추적검사를 받아왔다.
환자는 2014년 1차 완전교정술을 받았으나, 2015년 심장 MRI 검사 결과 좌측 간정맥 및 우측 간정맥 연결 및 확장, 우측 폐 저형성증 의증 상태 등이 확인돼 2차 수술이 결정됐다.
문제는 이 수술 과정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인공심폐기를 떼어내다가 환자와 연결된 대동맥 캐뉼라가 갑자기 제거돼 혈압이 저하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의료진은 즉시 캐뉼라 탈락을 인지해 다시 대동맥 캐뉼라 삽관을 시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고, 이때 걸린 시간은 단 5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환자는 이로 인해 수술 후 3일 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대뇌MRI 검사 결과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 후유증의 소견을 받아 후유장애를 입게 됐다.
재판부는 수술 도중 '대동맥 캐뉼라'가 탈락한 것을 의료진의 수술상 과실로 인정하고 전체 손해배상 청구액의 60%인 8억 9900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같은 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환자측이 D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환자는 2018년 1월 두통 증세로 D병원을 응급실에 내원해 흉부 방사선 촬영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당시 환자의 흉부 방사선 촬영 영상을 판독하며 좌측 폐문부의 종괴 혹은 뚜렷해 보이는 혈관 의증(의심되는 진단)을 확인했으나 이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지 않았고 추가 검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문제 없이 병원을 퇴원한 환자는 11개월 후 다른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흉부에 종괴를 발견해 흉부 CT를 받았고, 그 결과 폐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환자는 "D병원 의료진이 일찍이 혈관 의증을 알렸다면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고, 해당 암이 뇌와 우측 부신으로 전이될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의료진의 과실 책임을 물어 병원과 보험사를 상대로 8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당장 폐암을 의심해야 하는 병변이 아니라 추후 경과 관찰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는 소견"이었다고 반발했으나, 재판부는 환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D병원에 책임의 30%인 1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보존적 치료 우선한 외과의사·흉부CT 검사 안한 응급의학과 의사…금고 6개월 집유 2년
필수의료에 속하는 외과와 응급의학과도 의료소송을 피해갈 순 없었다. 특히 이들 진료과는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소송에까지 휘말리면서 거액의 손해배상에 더해 실형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지난 8월에는 대법원이 외과의사 E씨에게 수술 지연에 따른 주의의무 위반으로 환자에게 장천공, 복막염, 패혈증, 소장의 괴사 등이 발생했다며 원심의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형을 확정 판결했다.
E씨는 2017년 11월 당시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에게 장폐색임을 의심했으나, 환자의 통증이 호전되고 있고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인해 개복수술을 받은 과거력이 있음을 감안해 우선 보존적 치료가 적절하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보존적 치료를 하던 중 환자가 혈변증상을 보이는 등 장괴사가 급격히 진행돼 응급수술로 소장을 절제했고, 환자는 괴사된 소장에 발생한 천공으로 인해 패혈증과 복막염 등이 발생해 2차 수술을 하게 됐다.
원심인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E씨의 보존적 치료에 대한 판단이 과실이라고 봤다. 환자의 복통 양상, 발열, 소장 괴사로 인한 별변 등의 증상으로 보아 즉각적 수술이 적절한 조치였다고 보임에도 의사가 이를 시행하지 않아 환자에게 악결과가 나타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12월에도 유사한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의사 F씨에게 업무상과실치상, 의료법 위반 혐의 유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4년 9월경으로 F씨는 안면부 감각 이상과 식은땀, 흉부 통증을 호소했다. 의사는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에게 심전도와 심근효소 등 검사를 실시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 못했고, 해당 환자를 경증인 '급성위염'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퇴원 후 환자는 대동맥박리가 발생해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으로 뇌병변장애를 얻게 됐고, 환자와 가족들은 의사 F씨에게 민사 소송에 이어 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F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2심)을 인정했는데, F씨가 환자에게 발생한 흉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 진단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이 업무상 '과실'이었다고 판단했다.
일련의 사건으로 외과계는 물론 응급의학계도 현실에 맞지 않는 재판부의 실형 선고에 경악했다.
외과의사회는 전문가인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부정 당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자의 상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되물었다. 응급의학과의사회 역시 의사는 '신'이 아님에도 모든 질병을 완벽하게 진단하고 처치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와 사법부에 항변하며 필수의료 붕괴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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