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추계(推計)’는 통계나 예측 작업에서 일부 자료를 바탕으로 전체를 미루어 계산한다는 뜻이다. 주로 인구, 경제, 재정 등의 분야에서 ‘미래의 값’을 추정하는데 사용되는 개념이다. 추정의 개념이기에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최대한의 합리성을 확보하려는 목적과 방향성을 지닌다. 다양한 모수의 추정치에 바탕을 둔 재가공 작업이기에 오차의 폭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능한 여러 가지 추계 모형과 변수를 함께 탐구한다.
의사 추계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나 지적 재산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의사 인력 추계를 둘러싼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결국 지난 윤석열 정권의 처참한 몰락을 가져왔다. 반민주적인 통수권자의 근거 없이 뻥튀기한 수치를 마치 의료계와 오랜 협의를 거친 끝에 도달한 것처럼 최악의 각색된 내용으로 포장했다. 결국 의료계는 물론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최근 감사원 보고서도 공개됐고, 그간의 과정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국정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고위 관료들이 이성적인 판단 없이 정권이나 독재자의 입맛에 맞추고자 물불 가리지 않고 비열하게 처신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했다.
회의록만 공개했을 뿐, 추계방식은 내정된 결론 도출을 위한 방법론 모색 의구심
지난 의정 사태로 우리 사회가 얻어낸 한 가지가 있다면 의사 인력 추계위원회의 회의 내용이 모두 기록으로 공개한다는 점이다. 투명성을 위해 한 발짝 내민 것이다. 그러나 추계위원회 발족 이후 현재까지의 기록을 보면 아직도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추계를 위한 연구 조직은 아닌 것 같고 추계 행정조직으로 보인다. 추계위원회의 흐름은 임상 현장과는 동떨어진 위원들이 참여해 제한된 시간 내 구색 맞추기, 결론 도출을 위한 방법론을 논의하는 자리로 변질된 듯하다. 일간지에서 이미 보도한 네덜란드를 비롯한 타국의 과학적인 선진 의사 수 추계방식과는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인공지능 강국이 돼야 한다고 여러 번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응용되기 시작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는 인공지능을 현실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에 추계위원회는 인공지능은 아직 근거 없는 자료로 폄훼하고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에 의한 의사 업무량 감소는 이제 충분한 근거를 확보한 임상 현장의 일로 진입했음에도 이들은 상상의 미래 증강현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추계는 원래 제한된 현재의 자료로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이다. 의사 추계의 효과는 아무리 빨라도 10년이며, 통상 15년의 긴 시간을 요한다. 지금 발달하는 인공지능의 속도로 15년 뒤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반드시 예측하고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추계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아직 충분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은 계속 무시하며 추계에 반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의도적이라면 왜 그러는지 그 속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 같다.
얼마 전 12월 16일자로 프랑스 의학전문지 'LE QUOTIDIEN DU MEDICIN'는 37만 5000건 이상의 의료 기록을 대상으로 분석한 유럽 연구를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AI가 탑재된 의료 보조 장치를 사용하면 의료진의 행정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드는 동시에 환자에 대한 치료의 질까지 향상되는 것으로 보고했다. 이번 연구는 이전 미국 연구에서 보고된 임상의사의 시간 절약, 인지 부하 및 스트레스 감소 효과가 AI 의료 기록 보조 도구를 사용해 유럽 의료 시스템에서도 달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AI 가 의료의 행정적 부담을 줄이는 유망한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미국에 비해 유럽의 의료 시스템의 데이터는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이번 연구는 유럽을 대상으로 미국과 동일한 연구를 확장해 시행한 것이다. 이번 연구 질문은 “AI 도입이 유럽의 의료환경에서 의사의 주관적인 기록 작성 시간을 줄이고 임상 경험을 개선할 수 있는가?” 였다.
해당 연구는 스웨덴에서 운영되는 대규모 통합 의료 서비스 제공업체인 'Capio Ramsay Santé'내의 1차, 2차 및 병원 진료의 여러 전문 분야에 적용, 수행됐다. AI 의료 기록 보조 도구를 사용하는 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관찰적 리얼월드 평가에서, 기록 작성에 필요한 소요 시간은 진료 기록당 6.69분에서 4.72분으로 약 29%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임상의사들은 행정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없이 본연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환자와의 소통에 대한 인식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이 있음을 보고됐다. 이러한 결과는 AI 의료 기록 보조 도구가 임상의사의 기록 부담과 인지 부하를 의미 있게 줄여, 잠재적으로 환자의 직접 진료에 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을 시사해 주었다. 임상의사의 문서 작성 부담을 줄이는 것은 현대 의료에서 매우 중요하면서도 우선순위로 꼽힌다.
수급 추계 또다시 정무적 판단이 지배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붕괴 크레바스 형성
인공지능의 발달은 당연히 의사 직무의 존속에 대한 질문까지도 던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 한동안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 의사 직무의 약 70%까지 감축시킬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이고 암울한 주장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이제는 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러한 주장은 다소 관심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추계위원회는 현재 단 1명의 위원만이 전문의로서 임상 현장에 몸담고 있다. 다른 나라의 의사 추계위원회와 달리 의료 현장을 경험하지 않는 위원이 절반 이상인 현재의 추계위원회는 임상 현장에 대한 무지인지 임의로 의사의 근무 시간을 제한하는 추계를 하려 한다. 아마도 미리 정해진 결과에 대한 근접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OECD 자료 해석에는 반드시 의료환경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의료 소비를 사회화하는 유럽은 의료환경이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는 전문의 위주 자영업이 OECD 국가의 일차진료를 대체하고 있는 매우 독특한 나라다. 공공의료의 여유로운 근무 환경을 즐기는 외국의 주치의 중심 의료와 자기 투자 생산 주체인 우리나라 의사의 근무 시간이 서로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맞아떨어질 리가 없다.
전 세계 언론에서 가장 흔하고 깊게 다루고 있는 어젠다가 ‘AI’인데, 임상 현장에 대한 감각이 없는 추계 위원은 이미 의료 AI가 현장에 투입돼 적용되고 있는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는다. 진정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시대는 의사 추계에 의료 AI를 이용한 생산성 향상을 고려해야 하는데도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이는 AI 세계 3대 강국 정책을 천명한 대통령의 국가 목표와도 상충돼 보인다.
추계위원회는 올해 12월을 끝으로 회의를 마치고 도출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추계위원회가 시대착오적인 섣부른 추계 결과를 내지 않기를, 비과학적이고 정치적 추계기구로 비난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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