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3.22 12:33최종 업데이트 22.03.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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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쓰는 편지

-간만에 청진기 대신 펜을 드신 교수님께

[칼럼]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양성관 작가의 의학 칼럼 쉽게 쓰기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의 ‘의대 교수와 전문가들을 위한 칼럼 쉽게 쓰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의대 교수와 전문가들은 의학 논문 쓰기에는 익숙하지만 칼럼을 비롯한 일반적인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이 건강칼럼을 쉽게 쓰면 쓸수록 올바른 의학정보가 같은 전문과는 물론 다른 전문과 의사들, 그리고 일차 의료기관의 의사들, 나아가 환자들에게까지 두루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시작 자체가 어려운 의대 교수와 전문가분들이라면 관심과 참고 부탁드립니다. 

①간만에 청진기 대신 펜을 드신 교수님께
 
[메디게이트뉴스] 교수님께서 쓰신 칼럼을 볼 때마다, 전공의 때 논문 발표 시간이 떠오릅니다. 맨 앞에서 펠로우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이 논문 발표를 할 때, 1년차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던 저는 총알받이로 맨 앞에 앉아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고 배가 부르자 이번에는 모자란 잠이 자기 차례라면서 몰려오더군요.  나중에 교수님께 혼날 것을 알지만, 당장 살아야 했기에 제 머리를 교수님이 아니라 잠에게 바쳤습니다. 

오늘은 또 이렇게 칼럼에서 교수님의 논문 발표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얼굴에 주름은 늘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시는군요. 

전공의 때에는 전문의가 되면 시간도 더 생기니까 밀린 잠도 더 자고, 논문도 더 읽고 최신 의학 트렌드를 따라가기로 다짐했는데, 전문의가 되니 막상 더 바쁘네요. 외래 환자는 밀려 있고, 집에 가면 퐁퐁남이 되어 설거지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치워야 합니다. 논문이라도 읽으려고 책상에 앉으니 초등학생인 첫째 딸이 숙제한다고 컴퓨터 쓴다고 그러고, 어린이집 다니는 둘째 아들은 놀아달라고 때를 씁니다. 교수님 논문은 전공의 때 잠에 이어, 전문의가 되자 가족들에게 밀려 나갑니다. 

이제 아이들까지 다 재우고, 겨우 서재에 앉았습니다. 다시 교수님이 쓰신 칼럼을 읽자니, 다시 전공의 때로 돌아간 듯 합니다. 관련 질환 기전부터 최신 치료 경향까지 서론이 시작되었는데 벌써부터 눈이 감깁니다. 교수님 글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전공의 때 논문 발표 시간에 제가 발표할 때 말고는 졸기 바빴던 습관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카톡이 옵니다. 
“여보, 언제 끝나? 나 혼자 침대에 외롭게 내버려 둘거야?”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전 아내의 마음이 예뻐서 좋아한 게 아닙니다. 인턴과 전공의 시절, 의학만으로도 바쁜데 여자의 마음까지 천천히 알아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전 아내한테 첫눈에 반했습니다. 외모에 끌렸습니다. 아내가 예쁘지 않았다면, 아무리 마음이 천사라고 하더라도 관심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교수님,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마음 잘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칼럼은 마음은 예쁜데 얼굴은 못 생긴 이성과 같습니다. “저는 얼굴은 전혀 안 본다”고 말한 고소영은 장동건과 결혼했고, “저는 외모는 전혀 안 봐요”라고 말한 손예진마저 현빈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똑같습니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입에 쓴 약은 이제 아무도 먹지 않습니다. 제약회사가 약에 딸기향을 첨가하는 세상입니다. 

교수님 저희에게는 논문뿐 아니라, 재테크, 탈 아니 절세 방법 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교수님이 너무 잘 생기고, 예뻐서 첫 눈에 반하도록 칼럼도 그렇게 써 주십시오. 저희도 첫 눈에 반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길게 쓴 글을 편집자님께 보여드렸더니, 교수께서 이걸 보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한다는데 500원을 거신답니다. 설마요?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혹시나 교수님께서 약주를 한 잔 하셨거나, 골프를 치고 몸이 찌푸둥해서 집중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으니 거두절미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의학 칼럼을 부디, 제발 쉽고 재미있게 써 주십시오. 네? 의학이 어떻게 쉽고 재미있을 수가 있냐고요? 저희는 수업 시간에 휙휙 넘어가는 파워포인트를 외울 생각에 급성 뇌수막염을 앓는 것처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데, 교수님께서는 웃으면서 수업하셨잖아요?

그뿐 아닙니다. 교수님께서는 10시간 걸리는 수술할 때 저희는 언제 끝나나 겸자를 쥔 채 고개 들어 시계만 볼 때 수술 부위에서 눈 한 번 안 떼시고, 금이라도 캐는 듯 가끔 콧노래를 흥얼 거리셨잖아요?
 
저는 교수님이 의학을 정말로 사랑하고 즐기시는 거 압니다. 그러니 칼럼도 그렇게 써 주십시오. 그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합니다. 이보다 더 쉽고, 재미있을 순 없습니다. 

이제 저의 수술을 선 보일 시간입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스크럽 하러 들어오십시오. 가끔 수술 참관을 하다 졸려서 교수님을 뒤에서 덮치는 의대생이나 인턴이 있겠지만, 저의 수술은 그럴 일이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럼 시작합니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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