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명관 칼럼니스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약사회가 6월 8일 업무협약(MOU)를 체결해 공동으로 실시하기로 한 '올바른 약물이용 지원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사업의 내용은 일부 시범지역에서 고혈압·당뇨병·심장질환·만성신부전 질환자 중 약품의 금기, 과다 중복투약 대상자를 선정해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와 건보공단직원이 함께 대상자 가정을 방문해 지속적인(4회) 투약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투약관리 내용은 약물의 올바른 사용관리, 유사약물 중복검증, 약물 부작용 모니터링 등이다. 시범지역으로는 서울 도봉구, 강북구, 중구, 중랑구와 인천부평, 인천남구, 경기도 안산, 경기도 고양 일산 등 8곳이 선정됐다.
시범사업 결과를 평가한 후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사업이 의사의 처방권을 간섭하며 의약분업정신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건강정보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주치의가 없고 의료기관 이용이 자유롭다. 그러다 보니 일부 환자들은 복용하는 약물 가짓수가 많고 중복 처방의 위험에 노출돼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복합 만성질환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환자가 복용하는 전체 약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상담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사의 업무 영역이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이것은 주치의 또는 일차의료의사의 주요한 업무에 해당한다.
환자의 복약 리스트를 정리하고 과다 혹은 중복 투약되는 약물을 줄이는 것은 단순한 약물 관리가 아니라 환자의 질병 치료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진료영역이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이 건강 검진 사후 관리나 약물 과다 복용자에 대한 관리 등 국민의 건강관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리는 의사의 영역이다. 건보공단이 의사를 돕기는 커녕 이렇게 의사 고유 업무를 약사와 진행하며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면 약사가 일차의료를 일부 담당하는 것 같은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의약 간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대안으로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에게 주치의 혹은 단골의사를 지정해 의료 이용을 권장하고, 주치의 혹은 단골의사가 환자가 복용하는 전체 약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올해 안으로 통합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이나 '만성질환 관리사업' 등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다.
특별히 위험 요소가 높은 환자군에 대해서는 이번 사업과 같은 시범사업을 하며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공단이 해당 정보를 환자와 단골의사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더 주의 깊게 환자의 약물을 관리하도록 하면 된다. 때로는 30분 이상 소요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수가를 책정할 필요도 있다.
공단은 갈짓자 걸음을 걷지 말고 '진료(약물 통합 관리는 진료의 영역이다)는 의사에게, 약(이것은 제약과 조제와 복약상담을 주로 말한다)은 약사에게'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새겨야 한다. ‘약’이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전부 약사가 하는 일이 아니란 뜻이다.
끝으로 의협에도 아쉬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의사들이 진료과별 진료 영역 확장에만 신경 쓰고, 주치의제도나 포괄적 일차의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결과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고 있다. 앞으로도 의사들의 일차의료에 대한 태도가 분명하지 않다면 약사, 한의사, 간호사들이 일차의료를 담당하겠다는 움직임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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