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드문' 약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의사에게 5억7000만원 배상? 번지수가 틀렸다
[칼럼]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전 대한의사협회장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10월 31일 법원은 2018년 독감치료제인 페라미플루를 정맥 투여 받았던 16세 환자가 다음날 아파트 7층에서 뛰어내려 하반신 마비가 발생한 사고에 대해 "부작용으로 의식장애, 이상행동 등 정신·신경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은 병원과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 5억7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환자 측은 사고의 원인이 정신이상,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페라미플루'의 부작용이라고 주장하며 병원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여 설명 의무를 소홀히 한 병원에 무거운 배상 책임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페라미플루 부작용으로 정신신경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런 부작용은 특히 소아청소년들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환자에게 이러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 투약 후 2일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과도한 배상액을 선고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의사들이 약을 처방하면서 약전에 나와있는 약의 부작용 모두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사들은 부작용이 흔히 나타나는 약제의 경우에는 부작용을 자세히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약을 처방하면서 극히 드문 부작용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 약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구두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질병으로 인해 경황이 없는 환자와 보호자가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모든 약의 치명적인 부작용까지 설명해야 한다면, 이 약 때문에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항상 해야 한다. 상당수의 약은 매우 드물게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필요하게 과도한 설명을 하면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치료가 지연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불안감이 커진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치료가 지연돼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심어주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게 만들지 못했다고 그 책임을 또 의사에게 물을 것인가?
또한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페라미플루라는 약제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만들 수 있는 약이라면 이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주체가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페라미플루라는 약제는 의사가 개인적으로 제조해 투여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임상시험을 거쳐서 국가기관인 식약처가 효능과 안전성을 보증하고 사용을 승인해준 의약품이다. 그런데, 왜 그 부작용으로 생긴 사고를 의사가 배상해야 하는가?
소아 및 청소년에서 이 약제를 사용했을 때 치명적일 수 있다면 소아 및 청소년에는 이 약제의 사용을 금지했어야 맞다. 소아 및 청소년에 사용이 금지된 약제를 의사가 환자에게 투여해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의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약제는 소아 및 청소년에도 사용이 허가된 약품이다. 따라서 약제 부작용으로 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가장 큰 책임은 이 약제를 소아 및 청소년에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있다.
단일공보험 체계를 유지하는 국가에서 공보험에 해당하는 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억울한 사정이 생겼고 그에 대해 누군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면, 의료인의 명백한 고의 과실이 없는 한 배상 책임은 공보험에서 져야 한다. 의사는 질병과의 전투에서 최일선을 지키는 전투병이다.
본인의 선택과 자유의지도 아니고 국가가 단일공보험 체제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징발해서 최일선 전투에 투입됐고 총칼 들고 질병을 퇴치하려고 애쓰다가 사고가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이 사고에 대해서는 공보험이 배상해야 하는 것이 합당한데, 왜 최일선의 전투병에게 알아서 책임지라고 하는가? 판사가 판결 잘못해서 억울한 옥살이가 생기면 잘못 판결한 판사가 피해자에 손해배상을 하지 않고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건강보험이라는 단일공보험을 이용해 강제로 일을 시켜놓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배상 책임도 의사인 나한테 지라고 하면 나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자유도 박탈당한 사람이 아닌가? 부당한 배상 책임을 절대로 면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나에게 건강보험을 거부할 권리를 달라.
나는 이제 기본권인 자유조차 박탈시키는 이런 건강보험은 거부해야 한다고 본다. 어차피 이렇게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을 내쫓고 있는 행정, 입법, 사법의 국가 권력의 행태가 유지되면 더 이상 대한민국 의료에 미래는 없다. 일을 시키고 싶다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인데, 현장의 목소리는 들을 생각도 없이 의대정원 1000명, 10000명 증원만 외치는 국가 권력을 어떻게 믿겠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보험 체계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은 의사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과 정부가 가져가야 한다. 환자의 억울한 사정을 누군가 배상해줘야 한다면 그건 바로 모든 국민들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가입시키고, 모든 의료기관을 건강보험에 강제로 지정한 건강보험공단과 정부라는 말이다.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공보험 체계의 모든 소송의 당사자여야 마땅하고, 이런 정상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우리 의사들은 알빠노로 간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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