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9.19 06:56최종 업데이트 23.09.19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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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시오" 과다 의료이용에 병드는 의료체계

불필요한 의료이용에 의료비 폭증하고 진짜 중증환자들 피해…전문가들 "의료이용 관리 필요" 한 목소리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는 '의료생태계를 망치는 과다 의료이용'을 주제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모님이 TV에 나오는 수도권 대형병원 소속 명의에게 진료 한 번 받아볼 수 있게 해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줄을 서시오’ 문화다.”(차의과대학 지영건 교수)
 
‘줄을 서시오’는 과거 전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허준’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다. 명의로 소문난 허준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구름떼같은 환자들이 몰려들자 약방 관리자 역할을 맡은 탤런트 임현식씨가 그렇게 외쳤다.
 
18일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과 건미포럼(건강한 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환경을 위한 정책 포럼)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지금 현재 의료현장의 풍경이 드라마 속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들의 의료이용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보니, 과다 의료이용과 수도권 대형병원 명의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돼고 있고 결과적으로 의료비 증가와 의료체계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외래이용∙입원일수∙병상수 등 OECD 최상위권…1~3차병원 무한경쟁
 
실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방문건수는 15.7회, 10만명당 입원일수는 29만3000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000명당 병상수 역시 12.8개로 OECD 국가 중 1위다. GDP대비 의료비 지출은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선 낮은 9.9%(2022년)지만 지난 수년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지영건 교수는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도입 당시 폭발적인 수요 증가를 고려해, 진료권을 설정했지만 이후 폐지됐다”며 “2004년 KTX가 개통돼 국가가 반나절 생활권에 들어오면서 수도권 병원 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됐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은 주치의가 정해져있고, 주치의의 의뢰를 통해서만 상급병원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어텐징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마음대로 의사와 병원을 선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동네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보니, 1~3차병원은 같은 환자들을 놓고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고가 장비도 들여야 하고 병상도 늘린다. 이는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재정부담을 느끼는 정부는 낮은 수가를 유지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적정부담-적정수가-적정보장 체제 필요…의료이용 관리하고 요양기관 계약제로 전환

순천향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이은혜 교수는 과다 의료이용의 가장 심각한 폐해로 상급종합병원에 경증환자들이 몰려 정작 중증환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과다의료이용의 책임은 보험자(국민건강보험공단·보건복지부)에게 있다며 저수가-저보험료-저보장 체제를 바꿔야 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저수가 속에서 이용자들은 무분별하게 의료이용을 하고 있고, 의료기관은 부족한 부분을 비급여로 메꾸며 영리화되고 있는데 정작 이를 관리해야 할 보험자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 교수는 적정부담, 적정수가, 적정보장, 의료이용 관리, 환자의료체계 및 진료권 설정 재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하에서 하에서 혼합진료가 허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요양기관 계약제로의 전환과 건강보험 의사의 비급여 진료 금지를 제안했다.
 
그는 “환자의료체계를 재도입하고 주치의제도를 시행하자”며 “주치의 제도 서비스를 하는 공급자에게는 행위별 수가 외에 인두제 개념의 건강관리수가를  지급하자”고 했다.
 
이어 “국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졌기 때문에 고급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늘었다”며 “건강보험 내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할 게 아니라 (요양기관 계약제로) 공급자를 분리해 나갈 사람은 나가도록 해야 남아있는 사람에게 좋은 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는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지불제도∙의료이용량 따른 보험료 책정∙해외사례 참고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다양한 지불 제도 운영, 의료 이용량에 따른 보험료 책정 등 다양한 제안이 나왔다.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김양균 교수는 “진료비 지불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 행위별, 포괄수가, 총액계약, 인두제, 혼합형 등 몇 가지 지불제도를 가지고 공급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국민건강 보험내에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가 존재하고 이를 국민들이 선택하게 하는 방식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담헌의 장성환 대표 변호사는 “보험 가입자의 선택권 제한보다는 인센티브와 책임 강화를  적절히 운용해 가입자가 합리적이고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유도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며 “의료이용액이 연령대별로 평균보다 낮은 가입자에게는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대식 전 부산시의사회 회장은 “지금처럼 자유이용이 가능하고 전문의가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체계로는 과다이용이 불가피하다”며 “건강보험 부과율에 큰 차이 없이 강제 가입 후 상위소득 10%는 영리병원 이용을 선택토록 하는 독일, 민간 위탁 보험자들 간 경쟁을 통해 적절한 의료이용과 공급이 이뤄지는 네덜란드 등 여타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의료의 질을 잘 유지하고 지금처럼 편리한 시스템을 제공할 의료체계의 파레토 최적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 "실현가능한 대안 필요…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 관련 내용 담길 것"
 
보건복지부는 토론회 참석자들의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며 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관련 내용들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손호준 과장은 “당장은 문제 없어보이지만 건강보험재정이 지속 가능한 구조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며 “올 초 재정관련 단기대책으로 과다의료이용자에 대한 본인부담 90% 이상 상향, 외국인 관련 제도 개선 등을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 건강보험 2차 종합계획을 준비 중인데 보험자, 공급자, 이용자 측면에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며 “특히 과다이용에 대해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기전들을 담으려 하고 있다. 결국 의료전달체계와 연결되는데 1~3차 병원들의 역할을 정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과장은 다만 “(토론회에서 나온 제안들과) 방향성은 비슷한 데 공개됐을 때 기대하고 있는 수준 정도로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결국 실현 가능해야 의미가 있다. 현실적인 제안들을 건미포럼을 통해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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