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과 동시에 의약품 관련 정책을 손질하면서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정책 변화가 국내 약가 정책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단일 국가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며, 전체 글로벌 제약 매출의 약 40%를 차지한다. 한국은 세계 13위에 올랐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글로벌 성장 도모를 위해서는 미국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의약품 정책 변화가 잇따라 예고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대미 수출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달 30일 미국 제약바이오시장 진출 웨비나를 개최해 미국 시장의 구조적 특성과 트럼프 2기 정책 변화,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고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미국 트럼프 2기 정부 정책 변화, 국내 약가 정책에 영향 미칠 것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현우 상무는 '트롬프 2.0 정부의 통상정책 변화'를 발표하며 ▲의약품 관세 부과 예고 ▲처방의약품 대상 최혜국 약가 제도(MFN) 도입 ▲미국 내 의약품 제조·심사 간소화 ▲외국 제조 시설에 대한 불시 점검 실사 확대·강화 ▲해외 실사에 대한 수수료 인상 가능성 등을 주목했다.
이 상무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고 외국 의존도를 줄이는 리쇼어링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4월 중순에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의약품과 API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의약품 품목별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한 최혜국 약가(MFN) 제도 시행 시 국내 약가 정책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상무는 "미국이 OECD 평균 약가를 기준으로 하는 MFN 제도를 도입하면, 미국 내 약가가 선진국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의 약가 정책에도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관세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매일 새로운 상황이 발생해 혼란과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바이오시밀러나 CDMO 등 국내 기업의 대미 수출 일정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재고 비축, 미국 내 CMO 활용 등으로 실제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이 상무는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 언급된 약가 결정 방식과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시 불투명성 이슈 제기 가능성 등에 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상무는 "CDMO, 바이오시밀러 등 일부 수출 품목은 관세 부과 시 직접적인 타격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한국의 대미 수출은 미국 전체 의약품 수입의 1~1.5%에 불과하다"며 "무역장벽보고서는 한국의 약가 산정 제도나 혁신형 제약기업 지정 제도의 투명성 문제 등을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의 한미 FDA 재협상 과정에서도 보건의료 분야가 핵심 의제로 포함된 전례가 있어 앞으로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 기업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민간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 내 네트워크를 강화해 대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시장 접근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MFN 시행 가능성 낮지만, 파급력은 클 것"
아카디아 안세진 대표는 MFN 시행은 법적으로 문제가 많아 시행 가능성이 낮다고 예상했다.
그는 "행정명령은 연방 행정기관을 구속하는 법적 효력을 가지나, 절차적 하자가 인정될 경우 가처분 신청이나 소송으로 집행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트럼프 1기 정부는 MFN 정책을 입법예고 하지 않은 채 발표했다. 이에 다수 소송이 제기됐고, 절차적 하자로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며 "트럼프 2기 행정명령과 미국 보건복지부 발표 역시 의견수렴 절차 없이 진행 추진되고 있어 1기와 동일한 법적 문제가 재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어 "메디케어 프로그램은 연방정부가 제약사와 직접 가격협상을 금지함을 법령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해 메디케어가 제약사와 직접 약가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입법했다. 따라서 MFN은 관련 주요 정부 부처 권한이 입법되지 않는 이상 상용화되기 어렵다. 또 의회가 법안 취지에 동의해 입법을 실행한다 해도 의견수렴 절차 기간을 고려하면 빠른 시일내 발효되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 급여와 유통 시스템 내에서 발생할 부작용 역시 MFN 시행을 어렵게 한다고 밝혔다. MFN이 시행될 경우 보험료 인상, 환자 부담 확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 대표는 "미국은 표시약가(WAC)에 리베이트나 차지백(Chargeback) 등을 적용해 순 약가가 결정된다"며 "표시약가는 실제 순약가 대비 매우 높게 형성된다. 문제는 이 표시약가가 의약품 순약가를 산정할뿐 아니라 급여·환급과 유통의 비용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다. 이 때문에 MFN에 의해 표시약가가 일괄적으로 인하될 경우 연계된 모든 의약품 관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PBM이 사용하는 리베이트 시스템은 순약가를 결정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보험 상품 운영 비용을 상쇄하거나 보험료 인하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오히려 보험료 인상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병행 수입과 직접 구매 제품에 대해 급여가 되지 않을 경우 고가의약품에 대한 환자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안 대표는 MFN 정책 시행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하면서도, 추진될 경우 우리나라 제약사와 의약품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신약 라이선스 자산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안 대표는 "미국 가격이 주요국(EU, 캐나다) 수준으로 떨어지면 제약사의 예상 매출이 줄어들어 신약 라이선스 자산 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라이선스 아웃 기업은 기존 기대치보다 적은 라이선스 수익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고, 인센티브 제공 없이는 높은 약가, 고비용, 하이리스크 파이프라인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그는 "MFN은 싱글 소스(Single Source) 제품을 타겟하기 때문에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 제품은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MFN은 인당 GDP가 60% 이상인 국가를 참조국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일단 배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구매력 평가(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 인당 GDP로 선정한다면 우리나라도 약가 참조국이 될 수 있다. 참조국이 되지 않더라도 가격 참조국가의 가격 인상으로 우리나라 약가도 영향권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출시 지연이나 약가 인상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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