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12.21 05:00최종 업데이트 17.1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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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외상센터를 위한 지원, 헛도는 바퀴가 되지 말기를

[칼럼] 여한솔 공보의

의료환경 개선이 아닌 '의료의 정상화'에 대한 요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대한민국 권역외상센터의 시작, 그러나...
 
지난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한 석해균 선장의 사건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외상' 환자를 재빠르게 치료하기 위한 의료체계의 부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외상으로 인한 사망자 중에서 재빠른 적정 진료를 받았을 경우에 생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은, 우리나라의 경우 감소추세에 있으나 의료선진국에 비해 약 20% 정도 더 높다. 수치를 들어 쉽게 설명하면, 2007년 외상사망자 28359명 중 32.6%인 9245명은 예방 가능한 사망으로 분류 됐다.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안타까운 일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많은 예산을 투입했고, 권역외상센터는 모두의 기대를 안고 2012년 전국각지에서 시작됐다.
 
2012년 이후 3년간 전국의 권역외상센터를 위해 약 2천억 원이 투입됐다. 시설과 장비, 인력이 모두 구비됐다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환자들이 24시간 365일 수술과 환자 처치를 위해 인력과 장비가 준비되어 있는 권역외상센터 문턱을 넘기도 전에 병원을 찾다 죽는 환자들이 여전히 발생했다. 살릴 수 있었던 외상 환자들이 죽는 참혹한 의료현장은 계속 됐다. 외상환자들이 바로 권역외상센터를 찾아오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헤매다가 살기위한 필수시간인 골든아워(플래티넘 미닛)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권역외상센터가 필요한 사람들, 권역외상센터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
 
2017년 올 상반기 권역외상센터를 찾은 환자 1576명 중 63%인 992명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이른바 블루칼라 직종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 중 사고가 발생하면 크게 다쳐 생명을 잃기 쉬운 일들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회 곳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들에게 권역외상센터는 반드시 필요한 의료시스템 중 하나이다.
 
또한, 권역외상센터는 20대 이하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의료기관이다. 연령별 사망 원인 중 운수사고는 20대 이하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고, 지난 30년간 1세부터 9세 사이 연령의 사망원인 1위는 권역외상센터에서 재빨리 치료받아야 할 사고인 운수사고였다.
 
한편, 집중적으로 외상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권역외상센터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명의 외상환자 수술을 위해서는 마취과 전문의, 마취과 보조간호사, 집도의, 어시스트 전문의 2인, 수술방간호사 등 최소 7명 이상이 수술 방에 투입된다. 그 뿐만 아니다. 수술 후 처치를 위한 중환자실 전담의사와 간호사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현재 권역외상센터의 한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만든 권역외상센터를 이용한 적이 있는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 입장에서 불리할 것 같으면 돈이 안 되니까 환자를 보지 않으려고 다른 병원으로 보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료인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모든 권역외상센터는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환자를 돌볼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동 시간대에 2건 이상의 수술이 30분 안에 가능하도록 상시 대기해야 하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정부의 권고안에 부합하려면 한 곳의 권역외상센터 당 20명의 의료진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운용중인 전국의 권역외상센터 중 필수인력 전담의를 채운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의료진의 확보는 안타까운 생명들을 잃은 사건들을 통해 얻은 뼈저리게 소중한 교훈으로, 권역외상센터 운영에 필수적이다. 언론의 관심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집중됐지만, 실제로 의료현장의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것은 순간순간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론만을 의식한 채 탁상행정을 일삼아 정부의 지원이 정말 필요한 현장 곳곳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살리는 '의료진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
 
권역외상센터가 항상 환자로 가득 찰 수는 없다.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30분 내에 바로 수술 방으로 옮겨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권역외상센터의 수술 방은 텅 빈 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외상수술과 장기입원 환자를 다루는 권역외상센터이기에 이곳의 적자는 대한민국의 현행 의료급여체계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박탈감과 체력적으로 감당키 어려운 노동 강도 때문에 힘들어서 그만두는 의료진이 속출했고, 센터를 지키는 남은 의료진이 감당해야 할 일의 강도는 배가 돼 또 그만두게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몸도 상하고 마음도 상하는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이 길을 젊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택하려 하지 않는다. 누가 이들을 쉽게 비난 할 수 있을까. 실제로 권역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한 것이 부지기수였고, 외상 전문의 3명 중 2명 꼴로 한 달에 적어도 7번, 많게는 13번까지 날밤을 새우며 당직일수를 채워왔다. 일이 너무 힘들어 몸이 상하고 심지어 유산과 사산이 반복됐던 간호사의 고충을 정부관료 그 누구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가족들 때문에 힘들어서 더 이상 못 버티겠어요"라고 말하는 동료를 끝내 잡지 못한, 남아있는 의료진의 탄식을 정부는 끝끝내 외면하고 있었다.
 
현장 의료진들이 요구하는 진짜 개선안
 
전년보다 삭감될 뻔 했던 권역외상센터 예산이 이번 북한 귀순병 사건을 계기로 갑작스레 의료진의 급여개선과 헬기 추가배치 등을 목적으로 200억 원이 추가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의료진의 탄식에 한참 어긋난 정치인들의 대답이다. 권역외상센터의 요구는 환자의 상태를 빠르게 판단하기 위한 검사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필수 시술이 과잉진료로 분류돼 삭감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 그리고 환자의 생명보다 경제성을 우선하는 현재의 의료보험 체제 안에서 겨우 버티며 적자를 면치 못하는 왜곡된 현상을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월급 조금 더 올려달라는 떼쓰기가 아니었다. '이제 도저히 못 버티겠으니 우리를 도와 달라''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를 졸속적인 봉급 이야기만으로 치부해버리면 안됐다(사실 급여수준이 개선됐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기도 했다).
 
"의료인이 일하는 환경의 개선이 아닌, '의료의 정상화'를 요구 하는 것이다."
 
헛도는 바퀴가 되지 말기를
 
글을 마무리 하며 이국종 교수가 쓴 글 중 일부를 발췌했다. 국민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이국종 교수는 아마 몇 년 전부터 이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먼 앞날을 내다본다고 하는 것은 그저 그렇게 하는 척 할 뿐이다. 관료나 정치인들은 1년이 멀다하고 현재 자리에서 떠나거나 보직이 변경되기 마련이고, 각종 학회나 개별 기관들도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서 움직인다.  모두가 다 자기자리에서 먹고살자고 할 뿐, 진정성은 없다. 그래서 보건의료정책은 여태껏 헛돌았고 앞으로도 계속 헛돌 가능성이 매우 높다."
 
헛도는 바퀴를 단 자동차는 아무리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국회에서 통과시킨 200억 원 증액 예산안 통과는 헛도는 바퀴와 같다. 이로 인해 권역외상센터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앞서 언급한 진중한 태도로 실제 의료현장을 바라보는 개선 없이는 이 권역외상센터를 둘러싼 악순환의 반복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어렵게 통과된 권역외상센터를 실질적으로 잘 운용할 수 있는 정책입안자들의 혜안을 기대해 보지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권역외상센터를 포함한 대한민국 의료계는 여전히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다. 도대체 해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칼럼 # 여한솔 # 권역외상센터 # 외상환자 # 의료진 # 이국종

윤영식 기자 (colum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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