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반영 못 하는 '상대가치점수'가 필수의료 망쳤다…외과 의사 수술행위 시급 '3400원'
외과 의사 업무량 총점, 전체 의과 총점 2% 불과…병원, '수술' 대신 '검사' 치중하게 만들어 필수의료 위기 부채질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내년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수술로 생명을 살리는 외과 의사의 시급은 얼마쯤 될까? 우리나라 수가체계에서 외과 의사의 행위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약 3400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의사 업무량에 의사 업무의 난이도와 중증도, 위험도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함에 따라 외과 의사의 업무량 총점이 전체 의과 총점의 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외과계는 현재의 필수의료 위기가 병원에서 '찬반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외과의 저수가 문제를 오랫동안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현 상대가치점수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 못 버는 외과 의사는 ‘병원의 천덕꾸러기’…수술 시간, 정신적‧육체적 노력, 의료기술 상대가치에 반영해야
2일 대한외과학회 국제학술대회 및 제75회 추계학술대회 ACKSS2023에서 '필수의료의 중심, 외과가 바란다'를 주제로 진행된 정책 세션에서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외과계의 저수가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우리나라 의료행위별 수가는 상대가치점수와 매년 수가 협상을 통해 정해지는 환산지수, 의료기관 종별 가산율을 곱해 결정된다. 그중 상대가치점수(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는 진료비용, 의사 업무량, 위험도 등 세 가지 요소로 의료행위의 가치를 점수로 평가한 것을 말한다.
외과계는 의료수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 ‘상대가치점수’가 외과 의사들의 업무량, 위험도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연세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과 김익용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정책은 필수의료를 선택한 의사들이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정성껏 환자를 진료하면 더 손해를 보도록 만드는 구조를 방치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초과 근무 거부, 워라밸 강조 현상과 맞물리며 우리나라 의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용한 사직을 시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병원들은 외과 의사를 돈도 못 버는데 마지못해 데리고 있어야 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해왔고 인력이 부족할수록 부족한 인력에 대한 덤터기까지 씌워왔다. 배운대로, 신념대로 일을 행하면 처벌받는 괴리 앞에서 의사들은 현장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사고 형사처벌, 수술실 CCTV 의무화까지 진행되면서 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코드 블루'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필수의료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의사의 사명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교수의 주된 업무는 외래환자 진료, 연구, 의대 학생 교육인데 업무가 너무 많아 견딜 수 없어 필수의료 전공과목을 떠나고 있다. 그러니 의사 업무를 줄여줄 수 있는 대책과 의사 개인의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교수는 상대가치 논의 구조 개선과 합리적인 3차 상대가치 개편으로 근본적인 외과의 저수가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필수 의료의 고난도 수술일수록 스트레스와 업무 시간이 증가한다. 이러한 외과 의사의 수술시간, 정신적 노력 및 판단력, 육체적 노력 및 의료 기술, 스트레스가 상대가치에 반영돼야 하며, 수술 받은 환자의 집중치료, 수술 후 입원에 대한 평가와 관리 등 상대가치 개선으로 의료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고난도 수술 저평가, 의사 숙련도 향상으로 수술 시간 단축하면 오히려 수술료 감소
뒤이어 발표에 나선 연세의대 용인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김태형 교수는 상대가치점수에 포함된 '의사 업무량'에 대한 저평가로 외과의 저수가가 발생했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현재 수가체계에 반영되는 '의사 업무량'은 주 시술자의 시간, 노력에 대한 보상, 행위시간 및 강도를 반영해 산출된다. 하지만 수가체계 초기 도입 시 의사 인건비 및 업무량에 대한 객관적 근거 조사가 미비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업무량을 도입할 때 순수 의료행위에 대한 가치 평가, 행위에 대한 객관적, 서열화 작업이 미비했고, 업무강도, 위험도, 시술자의 숙련도 및 전문성을 배제함으로써 고난도 수술이 저평가됐다"며 "병원은 저빈도, 고강도 수술보다 다빈도 수술행위를 많이 하는 것이 유리해지는 시스템이 구축됐고, 이는 현재 외과계 위기의 근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대가치점수의 한 요소인 ‘진료비용’의 경우 임상인력 인건비 등이 직접비용으로 포함되는데 임상 인력의 업무강도와 전문성, 숙련도가 반영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현 수가 체계에서 고형암 수술을 예로 들어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고형암 수술 시 림프절 절제술 범위에 따른 구분이 없고, 개복술이나 복강경 수술 시 행위 구분에 따른 분류도 없다. 현 복강경 치료대는 10년 이상 동안 저평가돼 2023년 현재 23만9000원에 고정돼 있다. 결국 시술자인 의사의 행위는 단지 수술 시간 곱하기 분당 업무량으로만 가치가 판단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기구가 도입돼도 그로 인해 줄어든 수술 시간, 합병증 발생률 감소 등의 성과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 오히려 누적 수술 시간이 단축되면 해당 수술행위의 총업무량이 감소된 것으로 측정돼 상대가치점수 하락으로 수술료가 하락한다”며 “노력은 의사가 하고 공은 보험자인 공단과 정부가 가져가는 것과 같다"고 씁쓸해 했다.
실제로 외과의 행위수는 전체 의과행위수의 14.6%를 차지하만, 외과 의사의 업무량 총점은 전체 의과 총점 4조원의 2%인 1000억도 되지 않아 외과의의 시급은 약 3400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김 교수는 "수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상대가치점수에서 외과는 의사업무량이 매우 저평가돼 있다. 의사 업무량이 저평가돼 있으므로 낮은 수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의사업무량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즉 상대가치점수의 혁신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이라며 "외과 저수가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한민국 외과는 근미래에 '낙수과'가 아니라 '폐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평원 강중구 원장 "중증도 반영 안되는 상대가치점수 문제, '수가체계혁신부' 조직 신설"
뒤이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강중구 원장이 건강보험심사평가 정책과 추진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외과 출신인 강 원장 역시 우리나라 상대가치점수 점수를 산정하는 데 문제점이 많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
강 원장은 "상대가치점수 구성 요소 중 '의사 업무량'에 난이도가 포함되지 않고, 직접비용 안에 인건비와 장비비 등을 검증해 조정계수를 검증해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정해졌다. 또 의료 위험도도 의료사고 관련 비용연구를 기반으로 해야하는데 실제 소송이 난 것으로만 연구가 되면서 실제 위험도가 반영됐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2018년 건강보험요양급여항목 별 비율을 살펴보면 처치 및 수술 수익이 3조1170억원으로 그 비중은 전체의 7.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원장은 "우리나라 외과 상대가치 점수는 미국의 18%밖에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수술보다는 검사를 많이 해야 병원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수술은 유지비와 인력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적자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고난도 수술 및 시술 분야는 인건비, 유지비, 장비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특징이 있다. 24시간 가동해야 해 인력이 상시 대기해야 하고, 중증 시술 및 시술과 응급은 규모가 필요하다. 따라서 병원은 수익을 위해 검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며 "심평원은 상대가치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하고 11월 1일부로 '수가체계혁신부'라는 조직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강 원장은 "해당 수가체계혁신부는 현행 상대가치점수의 비정상적인 구조와 행위별수가의 불균형 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수가 불균형 검토 및 수가체계 재설계 등 수가체계 전반을 재검토 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행위유형별 불균형을 해소하고, 필수의료 적정보상, 동일한 행위에 대한 병의원 진료비 역전형상도 해소하고자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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