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11.27 16:11최종 업데이트 25.11.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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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말 드러난 2000명 증원, 불리한 추계 ‘묵살’하고 일괄 증원 고집

[의대정원 증원 감사] 복지부가 증원 운 띄우고 尹∙대통령실은 대규모 일괄 증원 고수…의료계 반발 우려에 사전 논의도 '패싱'

감사원 감사 결과,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대규모 일괄 증원을 고수하며 2000명 증원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대통령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2022년 8월 19일, 새 정부의 부처 업무 계획 보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의 원인을 물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당시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끝에 사망한 사건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수 절대 부족’ 등을 원인으로 꼽으며 의대증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고, 윤 전 대통령은 충분한 증원을 당부했다. 1년 8개월가량 이어진 의정 갈등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27일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의대정원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원이 전말을 공개한 의대증원 결정 과정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감사원 보고서에는 지난 정부가 강조했던 과학적인 증원 규모 결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가득했다. 복지부 장관은 처음 윤 전 대통령에게 제시한 의대정원 규모(500명)에 대해 의사수급 전망에 기초한 게 아닌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보는 차원이었다고 했고, 대통령실은 증원 규모를 줄여야 하는 추계 결과가 나오자 이를 묵살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복지부 500명 증원안 尹 '퇴짜'…"1000명 이상은 늘려야"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의대증원 필요성을 먼저 꺼내든 건 복지부였다. 2022년 8월, 업무 계획 보고에서 의대증원 추진 계획을 밝힌 복지부는 이듬해 6월 2일 처음으로 구체적인 의대증원 규모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2025~2030년 의대정원을 500명(6년간 3000명) 늘리는 방안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1000명 이상은 늘려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500명 증원안을 보고한 데 대해 조규홍 당시 복지부 장관은 “500명은 장래 의사 수급 전망에 기초한 게 아니었고, 의대증원에 관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보는 차원에서 이전 정부(문재인 정부)에서 연 400명 정도 증원을 추진했던 걸 참고해 제시한 숫자”라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복지부는 같은 해 10월 6일 2025~2027년 1000명, 2028년 1942명을 늘리는 방안(4년간 4942명)을 보고했지만 이 역시 윤 대통령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후 윤 정부가 의대증원 2000명의 근거로 삼았다는 3개의 보고서(보건사회연구원,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 한국개발연구원)가 소환됐다. 3개 보고서 모두 2035년 부족 의사 수를 1만명 가량으로 보고 있음을 확인한 복지부는 보완 연구에서 나온 현재 부족 의사 수 약 5000명까지 더해 2035년 총 부족 의사 수를 1만5000명으로 산정했다.

대통령실, 워라밸 중시 추세 등 반영해 재산출 요청…부족 의사 수 줄자 "의미 없다"
 
11월경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의사들의 워라밸 중시, 여성 의사 비율 증가 추세 등을 반영해 복지부에 기존 의사 인력 수급 추계를 새로 산출해 보라고 요청했다. 이를 통해 부족 의사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복지부는 KDI 연구위원에게 기존 연구에 코로나19 이후 저출산 추세, 젊은 의사의 근로시간 감소 추세, 중고령층의 1인당 의료이용량 감소 추세 등을 반영해 2035년 의사 부족 수 전망치를 재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당초 연구에서 2035년 1만650명 의사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던 것이 오히려 재산정에서 5841명으로 4809명 줄어들었다.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대통령실에 전달했지만 이 전 수석은 자신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부족 규모가 줄자 이를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인력 수급 추계는 어떤 가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증감이 크기 때문에 기존 3개 연구 외에 새로운 가정을 추가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23년 12월부터는 복지부와 대통령∙대통령실간 구체적인 증원 규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정책실장(전 국정기획수석)은 조규홍 당시 복지부 장관에게 “단계적 증원은 정원이 늘 때마다 의사단체의 반발이 생기니 첫해부터 2000명을 증원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0명이라는 숫자가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사진=감사원

대통령실 2000명 증원 선호…단계적 증원 밀던 복지부도 선회

조 전 장관은 12월 27일 대통령에게 2025~2026년 900명, 2027~2029년 2000명(5년간 78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1안으로, 이 전 정책실장의 의견을 반영한 2000명 일괄 증원안을 2안으로 보고했다. 일시에 대규모 증원을 추진할 경우 의료계의 거센 반발과 교육의 질 저하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1안도 당초엔 2025~2026년 900명, 2027~2028년 1600명, 2029년 2000명이던 것이 보고 내용을 미리 받아 본 장상윤 당시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단계적 증원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낸데 따라 변경된 것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제1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고, 제2안에 대해 의사 단체의 반발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2024년 1월 4일 조 전 장관은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비서실장(전 정책실장)과의 회의에서 제2안의 2000명 중 2025년에는 1700명만 증원하고 지역의대가 신설되는 시기에 맞춰 300명을 추가 증원하는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전 비서실장은 2000명 일괄 증원을 고집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조 전 장관은 이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로부터 증원  규모에 대한 명확한 지시가 없자, 일괄 2000명 증원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고 2월 6일 보정심 심의를 거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조규홍, 의협과 사전 논의하려다 취소…"논의 의지 없는 의협에 규모 제시 무의미 판단"
 
한편, 복지부는 당초 의대증원 규모 발표 전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사전 논의를 거칠 계획이었다. 실제 2023년 12월 27일 대통령 대면 보고자료에도 2024년 1월 중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료계의 의대증원 규모를 사전 논의한 후 최종 규모를 발표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조 전 장관의 결정으로 사전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은 감사원에 “사전 논의가 없었던 데 대해 비판은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당시에 증원 규모를 미리 밝히면 바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시작될 것을 우려했고, 논의 의지가 없는 의협에 증원 규모를 제시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의대증원 규모 결정 과정에 대해 2035년 부족 의사 수 추계가 부적정했다고 지적했다. 의료취약지 부족 의사 수를 현재 시점 의사 수로 해석하거나, 시점이 다른 현재∙미래 부족 의사 수를 단순 합산하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또 부족 의사 수는 의사 인적 구성, 근로 행태, 기술 발전 등 반영하는 가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복지부 장관에게 2025학년도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과정에서 부족 의사 수 추계에 대한 문제점 분석 결과를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
 
감사원은 의사 단체 의견 수렴이나 보정심 심의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미흡했다고도 꼬집었다.
 
2020년 9.4 의정합의를 통해 의대증원 등을 일방 추진하지 않기로 의협과 합의했음에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증원 규모에 대해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아 의료계 반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 의대증원 2000명 발표 직전 열린 보정심 회의도 위원들에게 심의에 필요한 정보와 시간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고, 사전에 기자단 대상 브리핑 일정을 잡아 놓아 결론을 정해 놓은 형식적 회의였다는 비판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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