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 윤영식 기자]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Post Doc)을 진행 중이던 1985년 제약회사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들이 대학보다 좋다고 던진 몇몇 미끼 중 하나는 연구의 자율성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회사 측에서는 박사학위 소지자는 근무 시간의 70%는 회사에서 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30%는 본인이 관심 있는 창의적인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86년 2월부터 쉐링플라우(Schering-Plough)의 '알레르기와 염증(Allergy & Inflammation)' 부서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보장해 준 연구 자율성 때문에 '포스포리파아제D(Phospholipase D)’ 라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며 이를 타깃으로 삼아 어세이(assay, 분석법)를 만들어 스크린도 할 수 있었다.
1987년에 머크의 '메바코(Mevacor)’가 첫 스타틴(statin)으로 시장에 출시되자 쉐링플라우의 심혈관 부서도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치료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1990년 초, 큰 제약회사마다 경쟁적인 타깃은 아실트랜스퍼라제(Acyl-CoA: cholesterol O-acyltransferase, ACAT)였다. 콜레스테롤이 아실화(acylation)되는데 가장 주된 효소인 ACAT 저해제를 개발해 스타틴보다 더 좋은 고지혈증 약을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쉐링플라우도 당연히 고유의 리드(선도물질)가 있었는데 '아제티디논(2-azetidinone)'을 백본(backbone)으로 하는 구조였다. 그 과제의 제약화학 연구원이었던 두안 버넷 박사(Dr. Duanne Burnett)는 자기가 새로 만든 화합물 SCH-48461이 구조활성상관(SAR: 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에 따라 정말 좋은 결과를 가질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동물실험(in vitro) 결과 IC50 값이 26mM로 높은 값이 나왔다. 그는 기대치보다 높은 IC50값에 실망했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 주말마다 같이 골프를 치는 친구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콜레스테롤 섭취 햄스터(CFH: Cholesterol-fed hamster) 모델을 책임지고 있던 친구인 대이비스 박사(Dr. HR (Chip) Davis)는 부서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임의로 동물 실험을 감행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지금까지 CFH 모델에서 테스트한 '2-azetidinone' 시리즈의 어느 화합물보다 낮은 ED50 값(2.2mpk)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칩(Chip)과 두안(Duanne)이 보고하자 목표약품특성(TPP: Target Product Profile)에 따라 세포실험(in vitro) 값을 먼저 보고 동물실험(in vivo)을 진행하던 관행을 수정해 화합물을 만든 후에 직접 동물실험(in vivo)을 진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이 과제는 SAR을 동물모델에서 먼저 진행하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고지혈증 약으로 허가된 제티아(Zetia), 에제티미브(Ezetimbe)의 구조를 보면 대사(metabolism)를 막는 불소(F: Fluorine)가 벤젠 링 구조 각각에 하나씩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임상실험에서 10mg ezetimbe를 스타틴을 이미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투여했을 때 콜레스테롤이 18.5% 더 내려갔고, 이에 더해 트리글리세리드(TG: triglyceride), 아포지단백B(apolipoptotein B)와 C 반응성 단백질(c-reactive protein) 등이 환자에게 유의하게 내려갔다.
ACAT가 타깃이 아니라 장과 간에서 흡수를 저해하는 타깃으로 추정됐다. 스타틴과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것은 알았지만 고전적인 동물실험(in vivo) 방법으로 약을 만들었기에 2002년 시장에 출시할 때까지도 타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2007년에 에제티미브(ezetimbe)의 주된 타깃이 콜레스테롤 운반 단백질(cholesterol transport protein)인 NPC1L1(Nieman Pick C1 like 1) 단백질로 밝혀졌다.
이런 신약개발의 숨은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만일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례가 가능할까? 필자의 답은 '아니요'다. 한미약품이 신약개발에 계속 성공하면서 대부분의 대한민국 제약사 회장님들이 기초연구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연구자율성이 많이 무너져 버렸다. 연구의 깊은 경험이나 촉이 없는 이들이 초기 단계부터 결정권자가 되는 것도 문제다. 돈이 많이 드는 임상개발 부분에서는 그럴 수 있다.
책임을 지고 진행해야 할 연구소장이나 개발본부장이 회장에게 슬그머니 결정을 넘기는 사례가 너무 많이 보인다. 연구소장이나 개발본부장보다 아래 직책에 있던 칩(Chip)과 두안(Duanne)이 자신들의 경험과 촉으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만든 연구자율성이 각 제약사마다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융통성이 없으면 창조성도 없다(Without flexibility no crea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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