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1.12.15 08:20최종 업데이트 21.12.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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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가의 심각한 문제…의료이용량·비급여·PA 불법 의료행위 증가에 환자 안전 위협까지

[칼럼]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바른의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④의료 행위에 대한 가치인 수가, 대한민국은 얼마나 저(底)수가 인가?
 

대한민국의 의료 수가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수준이며, 원가도 보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일반 국민들에게도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관변학자들과 단체들에서는 대한민국 의료 수가가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의료 수가가 낮지 않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높은 의사들의 수입과 병원급 의료기관들의 성장, 적지 않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등을 이유로 들면서 수가가 낮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정한 수가는 적정한 업무량과 적정한 의료 이용량을 전제로 각종 장비 구입 및 운영비, 약제비, 시설 건축 및 운영비, 직원 임금, 세금 비용, 투자비용, 이자비용, 감가상각비, 각종 부대시설 수익 등 여러 가지 지출 및 수입 측면을 고려해 안정적인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한 수준으로 책정되는 의료 행위에 대한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인들의 업무량과 국민들의 의료 이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에서 적정 수가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보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런 부분을 보정하지 않더라도 낮은 수가라는 자료들이 많지만, 이를 보정하면 어이없는 수준으로 낮은 수가가 산출된다.
 
2016년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의 자료를 토대로 현재 대한민국 의료 수가 수준을 파악하고, 적정 수가 산정을 위해 '건강보험 일산병원 원가계산시스템 적정성 검토 및 활용도 제고를 위한 방안‘(연세대 산학협력단)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해당 연구에서는 건강보험 일산병원 자료를 토대로 각 진료영역별 원가보전율과 의료기관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을 도출해 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진료영역별 원가보전율은 전체적으로 78.4%에 불과했고, 진찰료, 입원료, 주사료, 마취료, 처치 및 수술료 등 의사 및 의료인들의 의료 행위와 관련된 수가는 50~80% 수준으로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을 보면, 상급종합병원 84.2%, 종합병원 75.2%, 병원 66.6%, 의원 62.2%로 나타나 의원급 보다는 병원급의 원가보전율이 높고, 병원도 규모가 클수록 원가보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연세대 산학협력단, 의료정책연구소 

적정 업무량과 적정 의료 이용량을 보정하지도 않은 연구이자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 직영병원인 일산병원의 자료를 근거로 발표한 연구에서 의료행위의 원가보전율이 평균 78.4%이고,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이 의원급의 경우 62.2%라는 것은 현 의료 수가가 원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매우 낮은 수준임을 확인해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의료기관들은 민간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최초 설비 투자비 및 부채 이자, 임대료 등의 비용도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민간 의료기관들은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일산병원과 심평원 자료를 기초로 추계하여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의료기관 종별 추정 원가보전율은 채 70%에도 미치지 못하고, 의원급은 60%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객관적인 연구 자료들을 제대로 본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대한민국의 의료 수가가 낮지 않다는 거짓 주장은 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의 건강지표에서 최상위를 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이 수가 수준에서만큼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자료는 미국의 수가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국가별 의료 수가를 상대적으로 비교해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위 자료에서 OECD 국가 평균은 72였고, 대한민국은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48이었다. 대한민국보다 수가가 낮은 국가들은 대부분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의료체제를 유지하던 국가들이었다. 즉, 대한민국의 의료 수가는 공산주의 의료체제로 인해 낙후된 의료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지만,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 지표와 의료 지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⑤ 저(底)수가는 어떤 문제를 만들어 내는가?
 

-높은 의료 이용량 및 진료량과 각종 검사건수의 증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 있어 지적되는 많은 문제들의 핵심 원인은 바로 저(底)수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저수가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떠한 문제를 만들어내는지를 파악해야 적정 수가의 필요성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수가가 만들어내는 첫 번째 문제점은 바로 높은 의료 이용량 및 진료량과 각종 검사 건수의 증가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정착된 이후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기관 이용에 대한 부담이 낮아졌고, 급격한 고령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소득 수준 향상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의료 이용량은 앞서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에 대한 OECD 통계에서도 드러났듯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이용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따라와야 하는 엄청난 진료량을 수행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은 구축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역할을 저(底)수가가 했다는 데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낮은 수가임에도 적정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박리다매식의 진료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앞서 원가보전율 지표에서도 드러났듯이 상대적으로 원가보전율이 높은 검사 처방 비중을 늘릴 수 밖에 없었다. 저수가를 극복하기 위해서 의료기관들은 많은 의료 이용량을 진료량 증가를 통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또한 검사 처방 건 수를 늘려가게 되면서 지금의 기형적인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형적인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이미 국민들의 경상 의료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의료기관들의 진료량 증가도 한계가 있으면서 규모에 따라 편중도 심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유지하면 이 부하를 감당하기에 가장 힘들어하는 곳부터 붕괴가 시작될 것이다. 그 지점이 바로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원급 의료기관들과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힘든 저소득층이다.
 
자료=OECD 통계 자료, 보건복지부 

 
-비급여 의료 행위의 증가
 

저수가가 만들어내는 두 번째 문제점은 바로 비급여 의료 행위의 증가이다. 앞선 자료에서도 보았듯이 대한민국 의료 수가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에 포함되는 진료, 즉 급여 진료 행위의 경우에는 하면 할수록 손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수가 구조로 인해 의료기관들은 가능하다면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 비급여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 비급여 의료행위를 마치 불법 의료행위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어 미리 밝히지만, 비급여 의료행위도 신의료기술 평가 등의 과정을 통해서 효과와 안전성을 정부가 검증하고 승인한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비급여를 권하는 의료기관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의료행위나 검사, 약제들 중에서 효과와 안전성은 있지만 가격이 높거나 도입 기간이 짧은 경우에는 곧바로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지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비급여 의료행위 중에서는 시장 상황에서 따라서 사장되거나 퇴출되는 것들도 있고, 장기적으로 관찰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 비급여 의료행위는 급여로 지정하기 전에 일정기간 관찰기간을 가진다. 그런데 비급여 의료행위는 급여 항목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나 건강보험 공단에서 가격을 정하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게 돼있다. 이에 의료기관에서는 당연히 급여 의료행위에서 발생한 손해를 비급여 의료행위를 통해서 메우려 할 것이기 때문에 비급여 의료행위는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실제로 비급여 비용은 매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건강보험 급여 비용이 더 빨리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전체 의료비 지출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0년 12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비급여 16조6000억원으로 총진료비 103조3000억원의 16.1%를 기록했고,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에도 매년 1조원 이상의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비급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앞서 언급한 ‘건강보험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이다. 이 대책의 핵심 내용들은 의료 소비자에게는 비급여 의료행위가 마치 나쁜 의료행위인 것처럼 홍보하면서 비급여 의료행위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의료 공급자에게는 비급여 의료행위를 하게 되면 행정 업무를 더욱 늘어나게 해 비급여 처방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비급여 진료 평가를 통해 실질적으로 건강보험에 포함되지도 않은 비급여 의료행위에 대한 심사를 할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비급여 항목을 인위적으로 줄이기 위해 비급여 표준코드를 만들고 주기적 재평가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고, 실손보험과의 연계를 통해 보험가입자들의 비급여 의료행위 이용을 억제하려고도 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비급여를 관리하겠다고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원인에 대한 진단도 잘못되었고 실효성 없이 규제만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책들이 비급여 의료행위가 증가하고 있는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비급여 의료행위 자체를 억제할 방법만을 담고 있다. 비급여 의료행위가 늘어나는 근본 이유는 저수가로 인해 급여 행위로는 원가도 보전하기 힘들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에서 근본 문제인 저수가는 정상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비급여만 억제하면 의료기관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근본 원인에 대한 해결 없이 현상만을 고치려 들면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진료보조인력(PA) 등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 증가
 

의료행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되면 의료 행위량이 늘어날수록 의료기관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일반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 인해서 손해를 입고 있고, 앞으로 손해가 더 커질 것이 예상된다면 해당 행위는 중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 대한민국 의료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분명히 급여에 해당하는 의료행위를 하게 되면 의료기관은 손해를 보는 것이 분명함에도 아무리 의료 행위량이 늘어나도 의료기관들은 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행위량에서 전체를 압도하는 수준인 상급종합병원과 대형종합병원들의 경우에도 의료행위 중단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당연히 비상식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현장에서는 지금 현재도 비상식적인 방법을 넘어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의료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고, 그 핵심에 바로 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 PA)이 있다. 의료기관들은 당연히 의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를 불법적으로 PA들에게 하도록 하여, 의사 채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건비 부담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손해를 만회하고 있으며 이는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으로 갈수록 더욱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PA들의 광범위한 불법 의료행위 실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알려졌다. 병원간호사회가 발표한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2019년 12월말 기준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PA 간호사는 총 4814명이었고, PA 간호사의 56.4%인 2713명이 상급종합병원, 43.3%인 2087명은 종합병원, 나머지 14명(0.3%)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021년 5월 발표한 ‘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현장 간호사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PA의 93.4%가 의사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고 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PA 대부분이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법 의료행위를 처벌해야 할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는 이 문제를 어쩔 수 없는 관행 정도로 치부하며 방관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PA 불법 의료행위를 처벌하고 PA 문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인 저(底)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정부에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부담스러운 수가 정상화 보다는 현재 불법으로 되어 있는 PA 제도를 합법화시키려 하고 있고, 이에 병원계와 많은 간호사 단체들이 동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의료법상 의료인들의 업무 범위가 분명히 규정돼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를 바꿔 불법을 합법화 시켜주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후에는 이와 유사한 상황 발생시 우후죽순처럼 보건의료인 업무 범위 수정 요청이 일어날 것이다.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보건의료인간 업무 범위를 한 직역이라도 무리하게 바꾸면 변화 요구는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PA 불법 의료행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 원인인 저(底)수가를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보건의료인 건강 문제 및 환자 안전 문제
 

산업화 시대를 거치고 21세기로 오면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인식은 점차 부정적으로 바뀌어 왔다. 이에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로 바뀌어 왔고, 최근에는 주 40시간 근무 및 초과근무 시간을 포함해도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로 정착됐다. 특히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근로자 사망의 경우 최근에는 대부분의 사례가 산업재해로 인정이 되면서 장시간 노동이 근로자의 건강에 매우 위험하다는 과학적,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그런데 이러한 법정 근로시간을 제대로 적용 받지 못하는 예외 직종에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의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며 일을 하고 있고, 이에 대한 합당한 수당이나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의 근로시간 및 합당한 보상 여부 등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봉직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2019년에 봉직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2020년에 발표했다. 해당 발표 내용을 보면 봉직 의사들은 주 40시간을 상회하는 정규 근무를 하고 있었고, 야간 당직이나 온콜 당직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휴가 일수도 법정 휴가 일수에 한참 미치지 못했고 그마저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픈 곳이 있어나 질병 치료가 필요해도 병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전문의를 취득하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한다고 알려져 있는 봉직 의사들의 근무 여건도 이 정도로 열악하다면 전공의특별법 통과 이후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하나 여전히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전공의들의 상황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야간 당직 중 숨진 전공의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의사들에 대한 기사가 드물지 않게 보도되고 있는 현실을 봤을 때 과중한 업무는 보건의료인들 중에서도 특히 의사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나 보건의료인의 건강은 환자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장시간 연속 근무로 인해 수면 부족에 시달린 전공의의 오인 투약으로 인한 의료사고 사례 등을 보면, 의사의 건강과 컨디션이 얼마나 환자의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의사들로 하여금 환자 진료에 있어 최선의 건강 상태와 컨디션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적정 근로시간과 휴식 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은 환자 안전의 측면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1984년 미국에서는 고열과 오한 등의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리비 지온(Libby Zion)이 병용처방 금기약물을 처방 받아 사망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의료사고의 원인은 18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던 인턴이 졸음으로 인해 약 처방을 잘못한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고, 결국 주 근무시간 제한과 연속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일명 ‘리비 지온법’이 제정됐다. 대한민국에서도 전공의들의 주 근무시간과 연속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일명 ‘전공의특별법’이 2015년에 통과됐지만, 근무시간 기준 자체도 외국 선진국에 비해서는 긴 편인데다가 실제 병원 현장에서는 이 기준이 무시되는 일도 허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 의사들은 외국 선진국 의사들에 비해 훨씬 많은 노동을 해야 하고, 또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의사 및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외국에 비해 더 많은 노동을 하는 이유의 핵심에는 저(底)부담과 저(底)수가가 있다. 저(底)부담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의료 이용량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많은 업무량이 필요하고, 저(底)수가로 인해 많은 인력을 고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건의료 종사자 한 명당 많은 업무량을 감당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이 유지되지 않는다. 특히 의사들은 의료 행위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경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업무량을 감내해 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적정 부담과 적정 수가를 통해서 의료 이용량을 줄이고, 업무량이 늘어남에 비례해 충분한 인력을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수가 인상이 동반돼야 현재의 의사 및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과중한 업무량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해외 학회 발표에 나선 국내 외과 교수들이 일주일에 시행하는 수술 수를 반 이상 줄여서 발표하고 외국 내시경 의사들이 처음에는 국내 의사들의 내시경 건수를 보고 “Unbelievable!”을 외쳤다가, 그 다음에는 내시경 수가를 보고 “Crazy!”를 외치는 지금의 대한민국 의료 상황을 우리는 부끄러워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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