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만큼 종합병원 전문과 인기의 흥망성쇠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도 없다.
한때 잘나가던 메이저 과의 교수들이 최전방에서 수련 환경 개선을 주장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이들 전문과의 학술대회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 역시, '수련 환경 개선'이다.
비인기과로 전락한 메이저 과는 '전공의 과정 3+2년',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세부분과 전문의 강화'처럼 영국이나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하며, 이것을 어떻게 국내 환경에 변형해 적용할지 고민한다.
내과(IM)보다 먼저 '망해' 수련 환경 개선에 일찍 관심을 가졌던 외과도 마찬가지다.
근무 시간 88시간 준수를 골자로 하는 '전공의특별법'의 시작은, '일은 일대로 많고, 인기도 없는' 외과엔 새로운 도전이 될 전망이다.
지난 7일 열렸던 외과학회 춘계학회의 '정책 및 교육 심포지엄'에서 오간 비인기과의 고민과 개정 방향을 정리해봤다.
전문의 이원화 : '3+2'
전공의 수련 과정을 '3+2'로 개편하는데 적극적인 과는 내과(IM)와 외과(GS)다.
'3+2' 과정은 일반 전문의와 세부분과 전문의로 수련을 이원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일차진료에 특화한 일반전문의(세부분과를 하지 않은 전문의)는 3년 만에 배출하고, 세부 분과를 원하는 전문의에 한해 2년간의 수련을 더 받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에 맞춰, 외과학회는 수련 프로그램의 목표 레벨을 각각 5단계까지 둬, 연차 별 학습 목표를 나눌 예정이다.
다섯 단계는 '3+2' 체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3단계까지는 일반 전문의의 목표고, 5단계는 세부분과 전문의 최종 목표가 된다.
이날 학회에서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방향'을 보고한 윤동섭 총무이사는 "현재 전문의 양성은 일차의료가 원하는 내용보다 수련이 길고, 전문의 시험 준비 때 공백이 발생해 변화가 필요하다"며 "전공의 과정을 일차의료에 필요한 전반적인 과정으로 제한하고, 이후에 2~3년 세부전문과정을 마치는 선택수련으로 변화하는 게 합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내과 역시 작년 한 심포지엄에서, 제대로 된 일차진료 전문의 배출과 그 목적에 맞는 수련과정의 합리화를 '3+2' 체제 도입의 명분으로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들 학회의 설명과는 달리, 일각에선 '3+2' 체제가 전공의 지원을 늘리기 위해 급조된 유인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 두 전문과 모두 전공의에게 외면받고 나서야, 본격적인 관련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련과정이 길다는 고백이나, 일차진료에 적합한 전문의 배출 필요성을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제기하는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2' : 세부분과 전문의 제도 확립
내과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현재 외과에도 대한의학회가 인증한 다섯 개의 세부분과가 있다.
1.간담췌외과
2.대장항문외과
3.소아외과
4.위장관외과
5.외과 유방질환 분과
3+2 체제가 도입되면, 현재의 전임의 과정은 '선택 수련 과정'이 된다.
이에 따라, 외과 학회는 전임의 교육 과정과 평가 기준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윤 이사는 영국 사례를 들며, "(영국에서는) 전임의가 직장암을 수술하면 수퍼바이저는 수술 내내 관찰만 하며, 수술 후엔 노트로 피드백을 전해 전임의를 평가한다"라고 소개했다.
외과학회는 기존에 인증받은 다섯 개의 분과들을 발판 삼아, 전임의 제도의 교육과 그 기준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학회는 세부분과 전문의 정원에 대한 탄력적인 운영도 암시했다.
윤동섭 총무이사는 "영국은 패컬티(학회)에 소속된 세부분과 전문의 수에 따라, 전임의 과정을 밟는 선택 수련 TO를 조절한다"면서 "이런 세부분과 전임의는 타과보다 만족도나 경쟁력이 좋다"고 덧붙였다.
내과와 다른 환경 :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호스피탈리스트'는 아직 국내에서 명확한 역할이 정의되지 않아 영어 단어 그대로 쓰이지만, 통상적으로 '입원전담 전문의'로 불린다.
최근 전공의 지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전공의특별법'까지 맞이하는 내과가 주도적으로 시범사업을 시행중이고, 외과가 따라가는 형국이다.
그동안 PA(Physician Assistant)의 비합법적인 역할 종용을 묵인하던 외과 입장에선, 호스피탈리스트를 도입해야 할 명분이 내과보다 하나 더 있는 셈이다.
문제는 외과 호스피탈리스트의 역할과 처우다.
이 제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장진영 교수(서울대병원 외과 의무장)는 작년 한 심포지엄에서, "외과 호스피탈리스트는 입원 환자만 전담해 수술 기회가 적은 데다가, 급여도 전공의보다도 적어 지원자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전한 바 있다.
이날 '호스피탈리스트 추진 경과'를 보고한 조영업 외과학회 기획이사 역시 '급여문제'와 '장래'를 언급하며, "호스피탈리스트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역할을 재설정하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조 이사는 외과 계열 호스피탈리스트의 범용성(여러 과의 입원 환자를 관리하는 것)에 관해, "도입 논의가 이뤄지는 일부 외과 계열 전문과의 경우, 자기 과에만 특화된 전문 호스피탈리스트를 원하는 걸로 알려졌다"라고 밝혀, 역할 확장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자리가 아니고, 경쟁력을 만들어야…
각 학회가 새로운 수련 제도 도입에 대해 '그럴싸한' 명분을 제시했지만,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결국, 내·외부로 어려운 환경에 부딪힌 학회의 생존 전략이 아니냐는 의견이다.
이들 학회는 전공의 지원이 감소한 데다 수련 시간을 제한하는 '전공의특별법'까지 겹쳐, 적은 인력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회가 제시한 호스피탈리스트나 '3+2' 제도는 병원의 욕망만 보여, 구직하는 의사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외과 호스피탈리스트
1) '사학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약직이다.
2) 외래 환자보다 업무 강도가 더 센 입원환자를 관리한다.
3) 야간당직도 한다.
4) 외과 호스피탈리스트인데, 제대로 수술할 기회가 없다.
병원들은 '억대 연봉'에도 호스피탈리스트 채용이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인력 시장에서 구인이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구인 자리가 하는 일에 비해 처우가 부족하거나, 부족한 처우를 감당하고라도 버틸 만한 매력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의 이원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전문의'와 '세부전문의' 각각 확실한 고유 역할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전공의는 결국 5년짜리 수련에 몰릴 것이다.
학회 측에서 강조한 일반전문의 역시 개원가 생존 비법이 없다면, '그저 빨리 수련 끝나는 전문의 자격증'이 필요한 의사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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