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축구에서 고의적으로 자살골을 넣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이번 아시안컵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202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보건복지부의 2월6일 '정책 패키지'와 2월7일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다. 그런 대한민국 의료를 정부가 이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 강행이 오히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의료말살정책’이라는 경고가 의료계 전반에서 들린다. 의사들이 곧 파업을 개시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정부는 의료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과연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일까.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알아야한다.
첫번째는 필수의료정책패키지가 무엇인지다. 필수의료정책패키지의 핵심은 ‘혼합진료금지’다. 정부의 허가 없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진료와 그렇지 않은 비급여진료를 동시에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비싼 실손 보험료를 지불하고도 환자는 수면내시경을 못 받고, 진통을 겪는 산모가 무통주사도 맞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환자의 불편만 가중시키고 보험사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 분명한데, 당최 대한민국 의료 살리기와는 무관해 보인다. 복잡한 일이 일어났을 때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돈이 어디로 가는지만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진실은 ‘필수의료 패키지’가 발표한 당일 폭등한 보험회사 주식이 알고 있다.
과도한 2000명 의대정원 확대가 두번째 문제다. 지금도 책상과 교과서가 부족해 제대로 배울 수 없는 30명 교실에 20명을 추가해 50명을 밀어 넣는 수준이다. 젊은 의대생들부터 연륜 있는 교수들까지, 무분별한 정원확대는 의료 전체의 질 저하로 직결됨을 이구동성으로 경고한다. 나도 의대생 시절 좁은 강의실에 다닥다닥 붙어 공부하고, 해부용 시신 한 구에 수십 명이 달라붙어 공부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현재도 이럴진데 의대정원 2000명 확대 후에는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 자명하다.
이 같은 교육의 질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교수의 수는 충분하며, 전문가들과 검증한 결과 교육의 질 저하는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박민수 차관에게 묻고 싶다. 의사 수련과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인 의대와 병원이 정원 2000명 증원은 무리라고 성명서까지 발표하는 상황에서 교육의 질 저하는 없다고 확신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말이다. 당사자 모두가 무리라고 이야기하는데, 문제 없다고 검증해준 전문가가 도대체 누구인가.
덧붙여 박 차관은 “1981~1986년 ‘졸업정원제’를 시행하면서 30% 정원을 더 뽑았고 교육을 충분히 잘 받았다”고 주장했다. 30% 정도는 문제 없었다는 주장인데, 막상 당시 학생이었던 의사들은 교육현장이 혼돈 그 자체였다고 기억한다. 1968년생으로 졸업정원제 당시 미성년자였던 보건복지부 차관이 1980년대 의대교육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무분별한 정원 확대는 의료 질 저하 뿐 아니라, 급격한 의료비 상승을 초래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정부는 의료비 상승 또한 부정했다. 지난 7일 박민수 차관은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비 증가 주장의 논거가 되는 것이 '유인수요론'인데 이것은 1970년대 이론이고 이미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 실증을 해봤더니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고 주장했다.
이는 외국 사례와 비교해볼 때 사실이 아니다. 한국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료선진국 선두권을 다투는 일본의 경우, 2008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했으나 정부 재정 지출만 증가하고 지역 의료 개선은 미미해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굳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아도 그리고 유인수요론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면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한 명의 의사가 순이익 3000만원을 만들기 위해 임대료, 기기 값, 인건비, 대출 이자를 고려해 3억원의 매출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고정지출은 2억 7000만원이다. A 의사의 순이익은 2억 7000만원 이상의 매출부터 발생한다. 의사 증원을 해서 의사 A와 B가 경쟁하면 각각 순이익 1500만원을 얻는다고 가정한다. 두 명이 각각 1500만원을 가져가기 위해 필요한 고정 지출은 2억 7000만원이 아니라, 2배인 5억 4000만원이 필요하다. 5억 4000만원 + 1500x2만원의 매출이 나와야 기존 이익인 3000만원이 발생한다. 총 의료비는 5억 7000만원이 소요된다.
의료비는 기존 3억원에서 2억 7000만원이 증가했다. 순이익을 100만원으로 가정해도, 증가한 모든 의사가 동일한 의료기관에서 근무하지 않는 이상 전체 의료비는 증가한다. 단순한 산수만 해도 의료비 상승이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거짓임을 알 수 있다. 대책 없는 의사 수 확대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가속시킬 뿐이다.
2000명이라는 터무니 없는 정원확대는 의료 외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공계에서는 인재 유출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균형 있는 인재 배치가 필수적이다.
혹자는 "의대 쏠림이 심각한 것은 의사의 기대수익과 직업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며, 단기적으로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대수익을 균형 잡히게 해 쏠림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것은 부작용이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고 미래를 너무 쉽게 낙관한 것이다. 단기간이라 함은 2, 3년 이내를 말하는데 의대증원으로 인한 부작용은 최소 6년 이상, 최대 10년 이상 갈 수 밖에 없다.
국가산업으로 주목받던 원자력 산업은 문재인 정권 탈원전 정책 5년만에 처참하게 무너졌다. 신입생이 의사가 되기까지 최소 6년이 소요된다. 국가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과학기술에 있어 6년 이상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국민이 걱정해야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의료공백에만 있지 않다. 의대쏠림으로 인한 ‘기술공백’ 또한 국가 미래에 위협적이다. 이공계 부흥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이공계에도 지원하게 만들어야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공계도 말살시킬 생각인 듯하다. 최근 R&D예산을 대폭삭감하고, 의대쏠림으로 인재수급도 끊으려 한다. 정부는 사대부와 선비들이 출세하는 사농공상 조선시대로의 회귀를 바라는가.
엉터리 의료정책 발표 이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강대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연일 정부는 전공의들이 국민 건강을 볼모로 단체행동을 진행하려 한다며 악마화하고 있다.
누구보다 환자 곁에 머물며 환자를 살리려 노력하는 이들이 젊은 전공의들이다. 설 연휴에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병동과 응급실에서 당직근무를 서고 있다. 왜 환자 곁에 머물고 싶은 젊은 전공의들을 길거리로 내모는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생각하기에 병원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볼모로 협박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정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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