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3.24 10:06최종 업데이트 25.03.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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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에 의한 폭행으로 입소자 사망했지만…법원 “무조건 지정취소 처분은 부당”

지정취소 요건인 방임·학대, 기본적인 보호·치료 소홀할 경우 성립…지정취소 시 입소자 부담 큰 점 등 반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근 법원이 장기요양기관에서 요양보호사에 의한 폭행으로 입소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구청장이 내린 요양기관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요양기관에서 입소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흔치 않은 판결이지만 법원은 해당 사건이 가해자 개인의 단발적 폭행에 의한 것인 만큼, 기관의 영업정지를 넘어 지정취소 처분을 내리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최근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는 A씨가 구청장을 대상으로 낸 요양기관 지정취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운영하는 장기요양기관은 지난 2023년 2월 19일 치매 노인 환자인 입소자 B씨가 사망해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노인학대 관련 현장조사를 받아 같은 해 6월 8일 해당 요양원에서 신체적·방임학대가 있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이 같은 판정에 따라 해당 요양원의 관할 지자체인 C구청은 A씨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업무정지를 넘어 장기요양기관 지정취소처분을 내렸다.

A씨는 해당 기관의 원장으로 종사자들에게 노인학대 예방 교육을 수시로 실시하고, 노인 인권과 관련한 사이버 교육을 수료하도록 독려하는 등 폭행 방지를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해당 처분에 반발했다.

특히 문제가 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방임행위’는 수급자의 생존과 기본적인 수준의 보호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함을 지적하며, 해당 기관이 망인인 B씨에게 신체적·성적 학대에 준하는 정도의 기본적 보호와 치료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또 만약 처분 사유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요양원은 개원 이래로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은 전력이 없고, 사건 처분으로 인해 다른 입소 노인을 전원할 경우 이들의 건강이 악화될 수 있는 점을 들어 구청장의 장기요양기관 지정 취소는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망한 B씨는 해당 기관에 입소한 이래로 요양보호사 C씨와 입소자인 D씨로부터 2023년 2월 11일부터 2월 18일까지 7차례 폭행을 당했다.

기관은 이러한 폭행 사실을 늦게서야 인지했고, 결국 2023년 2월 18일 B씨는 요양보호사 C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혈압 상승, 구토, 어지러움 등의 증상을 보였고, 같은 날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급성 외상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경찰 측이 해당 사망 사건에 대해 수사하던 중 요양원의 CCTV 포렌식 결과 요양보호사 C씨의 폭행 사실이 확인됐고, 요양원 측은 그제야 해당 기관에서 신체적 학대 사실이 있었음을 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노인인권 및 노인학대예방 등 교육, 어르신 자치 회의, 제도 등 다양한 조치를 통해 노인학대와 폭행을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한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해당 조치가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서 장기요양기관의 지정취소의 처분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수급자에게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란 노인들의 건강과 복지를 저해할 수 있는 행위로서 신체적·성적 학대행위에 중하는 정도로 기본적인 보호와 치료를 소홀히 하는 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A씨는 사망한 B씨에 대해 복지팀장을 집중 관찰 인력으로 지정하는 등 고령의 치매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 드러났다.

특히 B씨를 폭행한 요양보호사 C씨는 해당 요양원에서 장기간 근무했고, 우수 종사자로 수상을 한 경험이 있다. 이에 당시의 폭행은 단발적 사건으로 볼 여지가 크고, 요양원도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사직 조치를 하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그 의무 위반 내용에 비해 과중해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은 경우에 해당되므로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사건 요양원은 상당한 시설과 인력을 갖춰 장기요양기관으로 지정돼, 입소 정원이 112명 입소 현원도 약 80명에 달한다. 따라서 요양원을 지정 취소할 경우 입소자들은 다른 요양기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등의 부담이 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추구하는 노후 건강증진 등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는 이 사건 처분 이전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위반행위로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다. 이 처분이 그대로 확정되면 향후 3년간 다시 장기요양기관으로 지정받을 수 없어 불이익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구청장의 장기요양기관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했다.

이 같은 판결을 이끌어 낸 원고 측 법무법인 김준래 법률사무소의 김준래 변호사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은 그동안 장기요양기관에 대해 방임·학대 판정을 너무 쉽게 내려왔다. 이번 판결은 방임·학대가 되려면 신체적 학대 행위 등에 준하는 정도로 기본적인 보호와 치료를 소홀히 해 입소자의 건강과 복지를 저해하는 행위여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노인보호전문기관의 방임·학대 판정 관행에 제동을 건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양원 지정취소를 재량행위라고 본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재량행위에 해당하면 사유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지정취소를 해서는 안 되고, 여러 참작 사유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의 경우에는 요양원 지정취소가 된다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할 다른 수급자들이 겪게 될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점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수행하면서 요양원 안에 계신 어르신들이 여전히 자기의 집처럼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이 사건의 경우 요양원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지정취소를 면하고 계속 다른 입소 수급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사건이다”라고 전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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