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5.09.29 01:21최종 업데이트 25.09.2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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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말공(고추 말리는 공항)과 ‘지역의사제’…프랑스 사례로 살펴본 다학제 건강센터(MSP)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메디게이트뉴스] 공공의료의 맹주였던 프랑스는 약 600만~800만명의 주민이 속칭 의료사막에 거주한다. 이처럼 적지 않은 인구층에서 의료사막 현상을 보이는 프랑스의 경우 전 국토가 단일 진료권인 우리나라보다 의료격차에 대한 그 체감온도는 매우 다를 것으로 느껴진다. 이렇다 할 의-정 사태의 뒷마무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 출범한 정부는 지역의사제를 비롯해 공공의대와 국립의대 신설을 추진하면서 다시 의료계와 의견 대립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지역의사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환자가 지역의 의사와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한다’라는 가정이 성립돼야 한다. 이러한 기본 전제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라면 제도 도입에 앞서 먼저 우려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전국이 ‘단일 지역권’처럼 돼버린 우리나라에서 비록 취약지로 분류됐다 하더라도 현재 지역 주민들이 받는 수진율을 보면 선진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취약지 중 가장 낮은 수진율은 2023년 기준 15.9회로써 우리나라 국가적 특성을 고려하면 이미 다른 나라가 경험한 실패한 정책을 굳이 따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의료사막 해결책으로 프랑스 지역의사제 아닌 다학제 건강센터 추진  
 
프랑스의 지역 의료기관 제도 다학제 건강센터(Maison de Santé Pluridisciplinaire, MSP). 사진= 프랑스 지역보건청 

프랑스에서 의료사막에 거주하는 주민이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일차 의료진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환자 스스로 지역 제한 없이 최상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의 자유로운 선택과 이에 따른 이동이 가능한 문화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프랑스에서 의료사막의 수진율은 연간 3~4회 정도 겨우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사막화는 프랑스 정치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고 이에 따른 다양한 정책들이 실행되고 있으나, 도시와 시골 간의 의료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나라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프랑스는 의료사막화를 타개하기 위해 지역의사제가 아닌, 지역 의료기관 제도인 다학제 건강센터(Maison de Santé Pluridisciplinaire, MSP)를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역에서 필요한 최소 단위 의료기관의 형태를 제시한 정책이다. 2023년 12월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약 2501개의 MSP가 운영 중인데, 오는 2027년까지 전국적으로 약 5000기관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학제 건강센터는 의사(일반 의사), 준 의료진(간호사, 물리치료사 등)과 때로는 치과 의사와 심리학자 등 여러 의료 전문가가 한 지붕 아래 또는 동일한 공유 시설에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구조인데, 일종의 프리랜서 개념의 자유로운 의료인(즉, 독립된 전문가) 자격으로서 각자의 활동을 조정하고 실행하는데 동의하며, 지역 보건 기관(Agence régional de santé, ARS)의 검증을 받은 보건 프로젝트를 통해 설립된다.

또 MSP는 의료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고립된 단독 진료보다는 협력적인 진료(치료)를 추구한다. MSP는 일반적으로 공적 지원 자격을 얻기 위해 지역보건기구인 ARS와 다년간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MSP는 다양한 의료 전문가 간의 거버넌스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전문직 간 다 직역이 설립하는 민간 외래의무법인(Société Interprofessionnelle de Soins Ambulatoires, SISA)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SISA 법인 설립에는 최소 2명의 의사와 1명의 보건의료인, 직역 3인이면 우선 법인 설립이 가능하고, 법인 인가 이후 정부, 지자체, 의료보험 등에서 각종 보조금과 혜택이 제공된다.

의료사막화를 해결하고자 MSP는 서비스를 지역적으로 클러스터링함으로써 농촌과 자원이 부족한 지역 환자의 이동 거리와 대기 시간을 단축하고 팀 기반 환경을 조성해 전문가의 고립(농촌 진료에서 부정적 요인)을 축소하는 효과를 낸다. 또 센터 운영을 위한 인프라, 장비 등의 간접비용을 공유해 경제적 타당성도 높인다. 진료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예방, 만성 질환 추적 관리, 사회복지 서비스와의 연계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비대면 진료, 센터 내 교차 의뢰, 그리고 다른 의료 네트워크 및 서비스와의 통합을 도모한다. 결론적으로 의료 전문가들을 공통된 구조로 통합함으로써 이직률을 줄이고, 진료 접근성의 ‘백지상태’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각종 공공 지원이 뒤따른다. 

프랑스, 진료 접근 백지상태 막기 위해 촘촘한 협력 체계와 지원 정책 보조

프랑스에서 MSP의 각 팀은 지원금과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자체 보건 프로젝트를 제출하고 지역보건기구(ARS)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MSP 설립을 위해 보건 현대화 및 투자 기금, MSP 개발 가속화를 위한 국가 계획의 전담 기금으로 자금을 지원한다. 지난 2024년에는 1500만 유로가 배정된 바 있다(2024년~2027년 총 4500만 유로 지원 방침). 지원금은 우선 부동산 투자(조성/리노베이션/확장)를 위한 것이다. MSP는 별도의 회사설립으로 부동산 구매와 소유가 공동 형태로 가능하다. 지역과 지방정부는 MSP 설립을 위한 투자 보조금도 지원할 수 있다.

지원 대상에는 토지 취득, 건축 공사, 장비(의료, 가구, IT) 등이 포함된다. 한 지방의 예를 들어 취득 및 공사비의 최대 30%(최대 25만 유로), 장비 소요 비용의 최대 50%(최대 10만 유로), 특정 사례에서는 원격 진료 장비에 대해 70%(최대 5만 유로)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역 지원(Aides Territoires) 포털에 접속하면 지방정부가 보조금 지원 혜택을 나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보건국은 MSP 계획(엔지니어링) 단계에서 타당성 조사를 지원할 수 있고, 창업 지원도 할 수 있다. 여기에 의료 및 준 의료 장비 구매, 공동 가구, 조정을 위한 행정 지원, 법적 구조 등이 포함된다. 프랑스 건강 보험은 MSP의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특정 선급금 지불도 허용한다. 

우리나라는 지역의사제로 5년간의 인력을 지역에 묶어 둔다는 강압적 정책은 있지만, 어디에 의사를 어떻게 배치할지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어 보인다. 선진국처럼 지역의 의료문제에 대한 지역의 능동적인 민관협력 체계를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지역의사제의 위헌 소지 쟁점인 의무복무 대신 지역 맞춤형 의료기관 설립의 지원과 보조, 그리고 각종 유인책을 매우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설계해 일종의 종합 세트로 내놔야 한다. 프랑스와 같이 의료 취약지에 대한 특수의무법인의 설립과 법인이 갖는 세제 혜택이나 공적 자금의 지원도 우선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각종 혜택과 정책에도 의료격차의 문제는 국제적으로 보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난제임이 냉엄한 현실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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