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0일부터 신해철법(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강제)개시법)이 시행되면 의료분쟁 조정신청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료과실 여부를 전문적으로 감정해 줄 명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의학회 이경석(순천향의대) 장애평가위원장은 최근 의학회 뉴스레터 11월호에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에 대비하자’는 글을 기고했다.
지난 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30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은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가 있는 환자 측이 의료분쟁 조정 신청을 하면 분쟁조정 절차가 자동 개시된다.
의료분쟁 조정절차는 의료기관 또는 의사가 동의해야 개시되지만 신해철법은 앞에서 언급한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대통령령이 정한 장애등급 1등에 해당하면 의사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동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경석 위원장은 “법이 시행되면 자동개시로 인해 당연히 조정건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정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의료사고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는데, 이 업무를 감정부에서 한다.
감정부는 100~300명으로 구성된 의료사고감정단에서 의료인 2인을 선출하고, 법조인 2인, 소비자 대표 1인 등 5인으로 구성한다.
이에 따라 의료감정은 결국 의료사고를 조사하는 의료인 2인의 의학적 전문지식과 견해가 조정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이경석 위원장은 “실제로 의료감정에 관여하거나 경험이 있는 교수들 중 의료감정에 대한 교육이나 연수를 받은 사람을 찾기는 아주 어렵다”면서 “교과과정에도 없고, 교과서나 책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이런 걸 강의해주는 곳도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환기시켰다.
그는 이런 이유로 인해 자동개시를 감당할 만큼 좋은 의료감정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의료감정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대 교수들인데, 의료감정의 민낯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면서 “우선 진료업무와 연구에 매달리기에도 바쁜 임상교수들이 동료 의사의 의료사고를 감정하는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소위 잘나가는 명의들은 의료감정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며 “실제로 의료감정을 하는 사람들은 진료나 연구 부담이 그나마 적은 ‘한가한(?)’ 교수거나 차마 거절하지 못해 떠맡아 감정하는 게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임상진료만으로도 바쁜 교수들이 상식만으로 의료감정을 해 온 실정인데, 이 상태로는 급증할 가능성이 큰 의료분쟁의 조정과 중재요청을 제대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우려다.
그는 “의료감정은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인데, 조사를 하는 사람은 물론 조사를 받는 사람도 동료 의사들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면서 “의료감정은 사례에 따라서는 동료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의학이 발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의료의 본질적 위험이나 현실에 치중하면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받기 쉽지만, 지나치게 엄격하면 법망을 피하기 위한 방어진료가 유행할 위험이 있다”며 “학회나 연수교육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면서 의료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의료감정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경석 위원장은 “의료사고를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감정할 수 있는 사람, 고도의 전문지식과 함께 의료현실에 대한 풍부한 경험은 물론 의료분쟁이나 법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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