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06 11:38최종 업데이트 24.01.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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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칼럼] 김현승 미래의료포럼 총무간사·내과 전문의

이순신 장군의 명랑대첩 지휘 장면. 사진=위키피디아

[메디게이트뉴스] 칠전량 전투로 총지휘관 원균이 전사하고 조선 수군이 궤멸에 가까운 치명타를 입은 후 선조가 이순신을 총지휘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사실상 전투불능 상태로 선조와 중신들은 당파를 불문하고 이미 잔존한 조선수군에게 희망을 잃은 터라 이순신에게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과 통합할 것을 명령했다.

아비규환이었어도 전투를 준비하던 현장에는 한마디로 맥 빠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조정의 여론동요를 잠재운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어록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전쟁의 핵심을 꿰뚫는 이순신 장군의 통찰력과 뚝심은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133척대 12척의 열세를 뒤집은 명량대첩의 시작이었다. 부족한 숫자와 떨어진 사기를 극복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전쟁을 단번에 뒤집은 순간이었다. 이는 자의든 타의든 현장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이순신 장군의 능력과 대응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현장은 중요하다.

최근 야당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에 대한 내용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테러는 이유를 막론하고 배격돼야 하고 이는 범죄로 응당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는 곱씹어 볼 내용이 많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타공인 전국 최고의 외상치료 전문병원을 두고 공인이면서 지역의료 살리기와 이를 위한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를 외치던 인사가 지역 최고의 전문병원을 마다하고 서울로 떠나 지역의료를 외면한 사항이 비판을 받고 있다.

일반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 특히 소위 빅5병원로 몰리는 현실에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과 소속 정당의 인사들은 개인적인, 그리고 가족의 결정이라며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행태를 보인 것은 닥터쇼핑을 넘어 병원쇼핑으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

야당은 본인들의 대표에 대한 비판에 오락가락한 황당한 대변을 지속하고 있다. 여당의 중진 의원은 야당대표의 의전서열을 운운하며 이에 대한 비판을 진영논리로 특혜시비라고 치부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서울 수서역 버스정류장에서 모병원에 가기 위해 SRT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셔틀버스를 타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항은 왜 비판하지 않나"라는 내용을 버젓이 SNS에 올렸다.

의료계는 수십, 수백번 넘게 현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도 정치인들의 뒷북치는 발언을 보면 의료 현장과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다. 이런 정치인들이 의료관련 입법과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회주의 의료관리학 교수도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탁상공론으로 이들의 논리를 대변해 준다.

한마디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이들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읊조리며 전 국민과 의료계를 가르치려 들고 이끌어 가려는 꼴이다.

의료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여당 야당 심지어 정부 인사마저도 현 필수의료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려 하는지 모른다. 필수의료 대책이라고 나오는 항목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의료현장의 의사에겐 맥 빠지게 하는 대목 뿐이다.

의료현장은 '현재 진행형 아비규환'이다. 지방의 소아응급실에 근무하는 모 교수는 암담한 현실을 하소연한다. 일곱분이 근무하던 센터에 현재는 두분만 남았고 그나마 버티던 이들에게 돌아오는 건 일부 몰지각한 보호자의 반응 뿐이다. 보호자들은 "인력이 안되는 상황으로 문을 열고 닫을 거면 왜 응급실 문을 열어 놨나. 그러면서 수술도 안되는 곳이 무슨 응급실인가. 이는 사기꾼과 다름 없다"라는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너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 애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만 듣게 되자, 남은 두분도 이제 지쳐가고 있다. 이는 한 센터의 상황만은 아니다. 전국 대부분 필수의료과의 현실이다. 철저히 의료현장의 목소리는 차단되고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현실에선 이제 '겨우 12척'밖에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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