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02 00:22최종 업데이트 24.01.0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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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대 교수도 韓 의대정원 확대 우려 "저출산 기조 속 위험한 선택"

[특별인터뷰] 하시모토 히데키 교수 "의대 증원해도 기피과 의사 안 늘어…日 정부는 병원∙의사 재배치 추진"

도쿄의대 하시모토 히데키 교수는 "단순히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고했다. 
[특별인터뷰] 하시모토 히데키 도쿄의대 교수∙일본의료경제학회 회장 
① 의대정원 확대가 지방∙필수의료 살리는 해결책?
② 과잉 병상에 의료비 망국론까지 나왔던 일본 지금은?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의대정원 확대는 위험한(risky) 선택이다.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한국 의사들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한다.”
 
도쿄의대 하시모토 히데키(橋本英樹) 공중보건학 교수(일본의료경제학회 회장)는 메디게이트뉴스와 만나 우리나라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계획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하시모토 교수는 란셋(Lancet) 등 저명 학술지를 통해 다수의 연구 결과를 발표해 온 보건의료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우리나라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의 주요 근거로 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등의 수치는 나라별로 상이한 의료제도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단순히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에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상황에 대해선 정부가 의대정원을 일괄적으로 더 늘리는 대신, 각 지역의 의료 수요에 맞춰 기능별로 병원과 의사를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2007년 7000명대이던 의대정원을 2023년도 기준 9000명대까지 지속적으로 늘려왔지만 향후에는 감축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OECD 수치 단순 비교는 부적절…日, 지자체가 근거 기반해 필요 의사 수 산정
 
Q.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지만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5명으로 OECD 평균 3.7명 대비 적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의대정원 감축까지 고려하는 이유는 뭔가.

우선 OECD의 데이터를 볼 때 단순히 수치만 비교해선 안 되고, 나라마다 의료 제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제도적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의사가 지나치게 많은 나라도 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미국(2.7명), 일본(2.65명), 한국(2.6명)을 단순 비교해 보면  비슷하고 결코 적지 않다. 오히려 일본, 한국은 병상수 당 의사 수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적은데, 이건 두 나라의 인구당 병상 수가 과도하게 많기 때문이지 이 수치가 곧 의사 수 자체가 적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고려하면 의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단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선 사망 원인과 의료 수요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의 영향으로 사망자 수는 증가하고 있는데, 주요 사망 원인이 바뀌고 있다. 과거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뇌졸중 사망률은 감소하는 반면 고령화의 영향으로 암, 폐렴, 노쇠 등이 늘고 있다. 물론 연령 조정을 하면 암 유병률, 사망률 등은 2000년경 정점을 찍고 감소하고 있지만, 암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들의 절대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고령자가 늘면서 과거에는 암에 걸리기 전에 뇌졸중 등으로 사망했을 사람들이 지금은 암에 걸려서 사망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지역과 전문 분야에 따라 편중된 의사 수 분포를 바로 잡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의사 수 증가는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번 의사 수를 늘리면 줄일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은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 예정이다.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의사를 늘릴 필요가 있는지 미래를 내다보고 판단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의사를 늘리기 보다는 고령화 등의 영향을 고려하면서 의사 분포를 바로 잡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심장이나 뇌질환을 진료하는 고도의 급성기 의료기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물론 지금도 암 환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그 이유는 고령화와 더불어 암에 걸린 후에도 생존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서다. 즉, 암 치료는 예전처럼 수술이나 강력한 화학요법 등의 고도의 치료뿐 아니라, 치료 후에 어떻게 만성기에 접어들며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까지 고려하는 방향으로 점차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형병원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수술 시스템 유지를 위해 의사를 늘리는 것보다 급성기 의료에서 재택의료, 방문진료 쪽으로 의사가 이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Q. 의사의 분포를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몇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크게는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 기능별 분포를 바꾸는 것, 그리고 의사 스스로 전문과목과 지역 분포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병원 자체의 성격을 바꾸려고 하는 것과 관련해 현재 일본 병원은 기능별로 크게 급성기와 요양기로 나뉜다. 더 세분화하면 고도의 수술과 중증환자 치료 등을 담당하는 고도 급성기 병원을 필두로 급성기, 아급성기∙회복기, 요양기 등으로 나뉜다. 급성기 병원은 수술 등 매출 단가가 높은 진료를 하기 때문에 민간병원과 공공병원 모두 급성기 진료에 집중하기 쉽다. 그 결과 급성기 병상 수가 비대해지고, 요양기 병상 수는 수요에 비해 적은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실제 환자 수요에 부합하는 형태로 시정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한 시책이 지역의료계획이다. 제8차 지역의료계획에는 각 도도부현별로 지역의 인구구조와 수요에 맞는 형태로 병원 기능을 재편하고, 그에 맞춰 의사를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반드시 의사를 줄인다고만은 볼 수 없다. 지역에 따라 실제로 의사가 부족한 경우에는 늘릴 수도 있다.

단순히 병원이 ‘의사가 부족하다’ ‘의사를 늘려라’라고 해서 늘리는 게 아니라 그 지역의 수요에 따라 의료시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 병원이 운영되기 위해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등의 근거를 쌓아가는 방식이다.
 
Q. 각 지자체의 결정에 대해 중앙정부는 간섭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지자체에 맡기는 형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각 도도부현은 구체적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 수를 조정한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Q. 의사 수 증감원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의 의견도 반영되나.
 
그게 실제로 어려운 부분이다. 제도적으론 매우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각 지역의 의사들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있기 때문에 그대로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일부 지역에서는 병원들이 ‘그동안 급성기 병원으로 돈을 벌어왔는데 그걸 그만두고 요양으로 바꾸라고 해도 불가능하다’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지역의사 부족에 지역인재 정원으로 대응…기피 분야 살리려면 급여근무환경 개선 필수
 
Q. 일본은 지방의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의대를 운영 중인데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들었다.
 
자치의대 자체가 지역의 의사 부족을 해소하는 효과는 없다. 원래 자치의대의 목표가 의사가 없는 벽지 무의촌에 의사를 파견하는 데 있었다. 지금도 그런 지역이 있지만 도로가 정비되고 각종 교통수단과 온라인 진료 등이 나오면서 예전만큼 큰 문제가 되진 않고 있다. 반드시 벽지 의료를 담당할 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자치의대는 지역 의료 전반을 담당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지역에 어떤 의료 수요가 있는지를 고려해 그에 맞는 의료 시스템을 조직한다. 실제로 자치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은 도도부현 의료부서의 책임자가 되거나 현립∙도립병원에서 해당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일본이 갖고 있는 문제는 시골에 의사 1~2명을 보낼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니가타 지역은 인구 대비 의사가 부족한 지역이다. 이 문제는 니가타의 자치의대에서 니가타 출신 2명을 졸업시켜서 내보내는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실제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졸업하면 다시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니가타 의대는 지역인재 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Q. 한국 정부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적고, 지방∙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부족하단 이유로 의대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
 
전체 의사 수를 늘리면 비인기 진료과 의사도 늘어난다고 기대하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기피과 의사들의 생활 환경, 근무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높은 급여, 양질의 수련 환경 등을 보장해야 한다.
 
젊은 의사들이 특정 진료과를 기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의 경우 산부인과는 예전보다 어려운 환자가 늘고 있다. 인공수정의 영향으로 쌍둥이가 늘고 예전에는 살릴 수 없었던 저체중아들도 살릴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전체 환자 수는 줄었지만 환자 한 명, 한 명에 들어가는 노력은 크게 늘어난 셈이다. 치료가 어려운 사례가 대형병원 산부인과에 집중되다 보니 의사들은 쉴 틈이 없다.

일본은 산부인과 여의사 비율도 다른 진료과에 비해 크게 높아지고 있는데, 이들은 결혼과 육아 문제 등으로 병원을 떠나기도 한다. 육아 지원 등의 대책을 통해 개선하지 않으면 젊은 의사들은 그 분야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형사처벌에 대한 우려도 주된 기피 이유일 수 있다. 산부인과는 특히 출산 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일도 힘들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소송의 위험까지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산부인과에 대해선 무과실 보상제도를 마련해 의사의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우선적으로 보상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보상금은 2000만~3000만엔(한화 약 1억 8000만원~2억 7000만원) 정도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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