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기 몇 시간을 앞두고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한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진료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그 후 2주 동안 의료계와 정치권에서는 숨 가쁜 시간들이 흘러갔다.
돌이켜 보면 작년 한해는 유난히도 충격적인 의료인에 대한 폭력 사건이 많았다. 전북 익산 2차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센터장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고 쓰러진 피해자를 발로 짓밟은 사건도 있었고(이 의사는 코뼈가 부러지고 경추염좌, 뇌진탕과 타박상이 생겼다), 구미 차병원 응급실에서 철제 트레이로 의사의 머리를 뒤에서 가격해 동맥이 파열된 일도 있었다.
대한응급의학회의 응급실 폭력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급의료인의 97%가 폭언을 경험했고 63%는 실제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에서 이들은 월 1~2회 이상 폭언을 경험하고 있고 현재 근무지에서 평균적으로 월 1회의 폭행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이들 중 55%는 근무 중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해 의료인에 대한 폭언·폭행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응급실이나 정신건강의학과 뿐만 아니라 일반 외래 진료실에서의 폭력도 빈번한 편인데, 2015년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의학과 외래 진료실에서 폭력을 경험한 의사도 89.4%에 이르고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도 19.6%였다고 한다.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2018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보건의료인 11.9%가 폭행 피해 경험자로 분석된다고 한다. 2017년 말 기준 전체 보건의료인은 67만146명으로, 이 중 11.9%인 7만9747명이 폭행 피해경험자로 추정된다.
의료인에 대한 폭력의 피해
첫째로 해당 의료인이 입는 피해가 있다. 폭력을 당한 의료인은 무력감에 빠지며 분노, 공포, 죄책감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일상생활이나 진료행태에 변화가 생긴 경우도 절반 정도 있었다고 한다. 심각한 경우 큰 신체적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로 다른 환자가 입는 피해가 있다. 폭력을 당한 의료인은 폭력에 노출된 후 한동안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이는 응급실이나 외래진료실이나 마찬가지다. 폭력을 행사하는 동안 응급실 등의 진료기능은 마비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진료를 받지 못하는 다른 환자에게 돌아간다.
셋째, 사회적 비용 증가와 의료의 공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피해가 있다. 해마다 보험금 청구나 장애진단 등에 의사의 진단서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진단서를 써 달라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마약류나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을 요구하며 위협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피해는 흔히 간과되기 쉬운 부분이지만 대형 병원이나 응급실보다 특히 개인 의원 등에서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여직원 한 두명만 있는 여의사 진료실에서 눈을 부라리며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의료인에 대한 폭력 방지 대책
진료실이나 응급실은 절박한 환자가 오기 때문에 폭력에 대해 특별히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하고 강력하게 억제하지 않으면 의료인에 대한 폭력이 발생하기 쉽다.
판검사에 대한 폭력을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엄단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방지 대책도 오래 전부터 많이 논의돼 왔다.
예를 들면 의료인의 대처 교육, 피해 당사자 보호, 진료 방해 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고소 고발 그리고 엄정한 법집행 등이다.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몇 가지를 더 강조하고 싶다.
한두가지 강력 대책을 세운다고 해서 갑자기 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꾸준한 사회 교육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드라마 등에서 의사의 멱살을 잡는 장면을 단골 메뉴로 내보낸다거나 심지어 얼마 전엔 흉기를 들고 의사를 위협하는 장면까지 내보낸 드라마가 있었는데 이런 것을 금지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전국민에게 홍보하는 것인가 무엇인가. 판사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 멱살을 잡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간 멱살을 잡기도 전에 끌려나갈 것이다. 병원에서 폭력을 저지르면 안 되고 만약 그랬다간 예외없이 법의 처벌을 받게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
둘째로 만취자를 응급실에 데려 오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응급실 폭력의 상당 부분은 만취자나 그 일행에 의해 저질러진다. 우리나라 병원은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에 비해 인력이 부족해 의료인이 과로하는 편인데 이들이 환자 진료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매일 밤마다 취객과 실랑이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경찰이 처음부터 취객은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도록 하고 생명의 지장이 없는 취객은 병원이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며 병원의 지시를 거부하고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경우엔 즉시 경찰서로 격리 조치해야 한다. 한마디로 취객에 관대한 문화를 바꿔야 한다.
골절 환자나 열상 환자는 응급환자가 아니다. 의료진이 취객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그런 치료를 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취객의 인권 못지않게 의료진과 다른 환자들의 인권도 중요하다.
셋째로 의료인과 선량한 환자를 보호하는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에 있는 법률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 당사자가 보복의 위협 때문에 소극적이라면 병원과 의사회가 피해 당사자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고소 고발해 끝까지 책임을 묻고 경찰과 사법당국이 인식을 바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안이하게 취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작은 폭언과 폭행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큰 사건이 되는 법이다.
넷째, 이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것일 수도 있는데, 의료진이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진료시간을 확보하고 환자와의 대화 능력을 기르면 오해와 폭력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다.
그러자면 의료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의료인들의 근로시간을 줄여주고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해 줘야 한다. 이것은 투자와 의료 체계 개선이 필요한 일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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