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의 새로운 트렌드로 화자되는 '면역항암제'가 장기생존율 및 부작용 개선, 효과 지속면에서 새 패러다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론 신뢰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아 투여 환자 선별능력(patient selection)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도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다.
면역항암제는 이 약에 반응하는 약 30%의 환자에게만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인다.
바꿔 말하면 나머지 70%의 환자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면역항암제 임상시험 대상 환자의 대다수가 전이되어 있거나 기존의 수술·치료법으로 완치 불가능한 3기 후반~4기 환자라는 점을 볼 때, 이들이 효과도 못볼 약을 쓰면서 버틸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이다.
초반부터 면역항암제의 치료 혜택을 누릴 환자를 착착 골라내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면역항암제를 선도적으로 개발한 제약회사, BMS와 MSD의 메디컬 디렉터의 의견도 유사하다.
한국BMS제약 이승훈 전무는 "대상 환자군을 찾아낼 바이오마커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면역항암제가 100% 모든 환자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바이오마커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고, 관련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MSD 항암제사업부 정헌 이사 역시 "바이오마커의 목적은 치료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를 고르기 위한 것인데, 면역항암제에 반응하는 30%의 환자는 치료효과가 높기 때문에 30%를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30%를 60%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바이오마커를 쓰고 있으며,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도 바이오마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폐암 치료에서는 암세포에서 나오는 단백질인 PD-L1의 발현율(Tumor Proportion Scores)을 본다.
그러나 PD-L1 발현율이 믿을만한 바이오마커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같은 PD-1 억제제(면역항암제)를 개발한 제약사라도 의견이 다르고, 임상 데이터, FDA 허가사항도 다르다.
이를 테면 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비소세포폐암 환자 대상 KEYNOTE-001 연구 결과, PD-L1 발현율과 관계없는 전체반응률(ORR)이 19.4%에 불과했지만,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인 환자는 45.4%, 1~49%인 환자군은 16.5%, 1% 미만인 환자군은 10.7%로 발현율 50% 이상 환자에서의 높은 효과를 입증했다.
기존 치료에 실패한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화학항암제 도세탁셀과 비교 연구한 KEYNOTE-001 연구 결과에서도, PD-L1 발현율 50% 이상인 환자의 ORR이 45.2%로, 1~49% 환자군(16.5%)보다 2배 이상 높은 효과를 확인했다.
PD-L1 발현율이 바이오마커로서 의미가 있음을 입증, 미국 FDA는 지난해 10월 키트루다와 PD-L1 발현율 검사 IHC 22C3를 함께 허가했다.
반면 또다른 PD-1 억제제인 BMS의 '옵디보(니볼루맙)'는 바이오마커를 사용하지 않는다.
옵디보는 전이성 편평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도세탁셀과 비교한 CheckMate-017 임상 연구 결과, PD-L1 발현여부와 상관없이 사망률을 41% 감소시켰다.
전체 생존 기간 중간값은 9.2개월(도세탁셀 6개월)로, PD-L1 발현군의 9.3개월과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비편평 비소세포폐암 환자 대상 CheckMate-057 연구 결과에서도, 옵디보는 도세탁셀보다 사망 또는 병이 진행되는 위험을 27% 감소시킨다.
물론 PD-L1 발현율이 1% 이상인 환자에서는 감소율이 41~60%로 나타나, PD-L1 발현율에 따른 효과가 측정되긴 했지만, 미국과 일본은 PD-L1 발현과 관계없이 옵디보를 쓸 수 있도록 허가했다.
BMS 이승훈 전무는 "PD-L1를 바이오마커로 쓰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의학적 측면에서는 각 회사마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PD-L1을 측정하기 때문에 임상의의 입장에서 같은 계열의 약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바이오마커를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제한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PD-L1은 종양의 종류 및 종양 내 세포의 종류에 따라 발현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바이오마커로 여기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 전무는 "기술적인 문제는 흔히 돌연변이의 유무로 판단하는 다른 바이오마커와 달리 PD-L1은 양성/음성 개념이 아닌, 발현 정도의 차이가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PD-L1 발현이 0~100% 선상에 있는 것인데, 발현율의 기준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어느 정도에서 cut-off)조차 확립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각 제약사가 면역항암제를 개발하면서 초기 임상결과를 토대로 수치를 설정하긴 하지만 이는 임의적인 수치일뿐 기준이 되는 수치(cut point)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PD-L1 검사 과정의 제한 때문에 실제로 면역항암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들이 치료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MSD 정헌 이사 역시 "기존 치료제보다 어느정도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들도 걸러진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꼭 바이오마커를 써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옵디보'처럼 마커 없이도 치료성적이 기존 치료제보다 좋다면 굳이 써야 할 이유는 없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적어도 폐암에서는 PD-L1 발현율이 '괜찮은 바이오마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이사는 "현재 임상적으로 적용 가능한 마커는 PD-L1 발현율밖에 없다. 다른 마커는 개발이 덜 됐거나 자료가 불충분하거나 검사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서 "PD-L1 발현율 역시 100% 완벽한 마커는 아니지만, 완벽한 바이오마커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면역항암제 한계, 병용으로 극복
제약사들은 믿을만한 바이오마커를 찾는 것에 매진하는 한편, 그 한계를 기존 항암제와의 병용요법에서도 찾고 있다.
면역항암제 단독으로도 효과가 뛰어나지만, 모든 환자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표적치료제, 화학항암제, 그리고 또 다른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으로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다.
에파카도스태트(IDO1 제제), TVEC, VEGF 억제제, EGFR TKI 등의 기존 치료제와 면역항암제를 같이 쓰는 수 백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훈 전무는 "표적치료제는 초기 반응이 뛰어나다. 반면 면역항암제는 초기 반응이 늦지만 장기생존율은 높다. 둘을 적절히 병용하면 초기에 암세포의 크기를 줄이고 지속적으로 반응이 나타나게 해 많은 환자들의 장기생존율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헌 이사는 "병용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성 문제인데, 지금까지는 안전성 이슈가 크지 않다"면서 "2년 후면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한 데이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치료제를 대체하진 않을 것
항암치료 트렌드도 면역항암제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면역항암제를 기존 치료제와 병용하는 복잡한 패턴의 치료가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헌 이사는 "화학항암제, 표적, 면역항암제 환자군은 분명하게 나눠질 것이다. 표적 양성 환자에게는 표적 치료제가 가장 이상적이고, 면역항암제는 바이오마커가 뚜렷해지면 시스플라틴처럼 기본적으로 쓰는 항암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둘 다 효과가 없는 환자에게 화학항암제를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이사는 "하지만 병용에 들어가면 치료옵션이 많아지기 때문에 임상의와 보험급여 모두 복잡해질 것"이라며 "치료 패턴과 가이드라인은 복잡해지겠지만 장기생존율이 높은 환자의 비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승훈 전무는 "면역항암제가 항암치료의 근간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지만, 기존 치료제가 면역항암제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면역항암제를 근간으로 어떤 약물과 언제 병용할지, 어느 순서로 치료할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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