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2025년 12월 2일, 대한민국 국회는 의료계의 숱한 경고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역의사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의료현장을 지키는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날을 ‘대한민국 의료의 헌법적 가치가 무너진 날’로 기억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의도는 언뜻 보면 선하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고 소멸해가는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는 명분에 반대할 의사는 없다.
하지만 ‘목적의 정당성’이 ‘수단의 야만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번에 통과된 지역의사제는 의사라는 직업인에게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주지와 근무지를 강제하고, 이를 어길 시 면허를 박탈하는 가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명백한 위헌이다. 이번 법률은 '지역 의료 활성화'라는 미명 하에 의사 개인을 국가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헌법이 보장한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는 전체주의적 입법이다. 특히 '10년 의무복무'와 '면허 취소' 조항은 입법 재량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 위헌 법률임이 명백하므로, 헌법 소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구분
정부 측 합헌 논리 (Logic)
주요 출처/근거 (Source)
기본권 제한의 정당성
"지역 의료 붕괴라는 **공익(Public Interest)**이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우월하다." (헌법 제37조 제2항)
· 국회 입법조사처 현안 보고서
· 보건사회연구원(KIHASA) 연구보고서
선택의 자발성
"강제가 아니라, 입학 단계에서 학생이 **'동의(Contract)'**하고 혜택(장학금 등)을 받은 것이므로 기본권 침해가 아니다."
· '계약에 의한 권리 제한' 법리
· 공중보건장학의 특례법 유사 사례
유사 입법례
"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등) 졸업생도 10년 의무복무를 한다. 교대(과거)나 경찰대도 유사한 의무가 있다."
· 군인사법 제7조(의무복무기간)
· 경찰대학 설치법
수단의 적합성
"의무복무를 강제하지 않으면 지역 의료 인력 확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 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 의료인력 수급 추계
위헌 심판 대상 조항의 위헌성을 살펴보면 첫째로, 기본권 침해다.
1.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헌법 제15조)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는 직업 결정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방법으로 직업을 수행할 '직업 수행의 자유'를 포함한다. 이 법률의 '10년'은 개인의 생애주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간 동안 근무지와 근무 형태를 국가가 강제로 지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직업 수행의 제한을 넘어, 사실상 '직업 결정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2.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헌법 제14조)
근무지가 특정 지역(의무복무지역)으로 고정됨에 따라, 청구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해당 지역 내지 인근에 거주해야 한다.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과 결합하여 헌법상 보장된 주거지 선택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3. 평등권 침해 (헌법 제11조)
동일한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동일한 의학적 지식과 술기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의사와 달리 거주지와 근무지의 제한을 받는다. 또한 유사하게 의무복무를 하는 군인(사관학교 출신)과 달리,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에 준하는 의무만을 부과받고 신분 보장은 받지 못하는데, 이는 합리적 이유 없는 자의적인 차별이다.
둘째로, 과잉금지 원칙(비례의 원칙) 위반 내용이다.
이 법률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른 비례의 원칙(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현저히 위반하고 있다.
1. 수단의 적합성 결여
지역 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나, '강제 복무'라는 수단은 적합하지 않다. 자발적 동기가 결여된 의료인을 10년간 묶어두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지 못하며, 의무복무 기간만 채우고 이탈하는 '메뚜기 진료'를 양산하여 장기적으로 지역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 명백하다.
2. 침해의 최소성 원칙 위반 (가장 심각한 위헌 사유)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 가장 덜 침해하는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
우선 유인책이 부재하다. 지역 수가 가산, 정주 여건 개선, 은퇴 의사 활용 등 기본권을 덜 침해하는 대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시행해보지도 않은 채 '강제 복무'라는 최후의 수단을 곧바로 선택했다.
제재의 가혹성(면허 취소)도 존재한다. 의무 불이행 시 '지원금 반환'이나 '징벌적 위약금' 등 금전적 제재로도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법률은 '의사 면허 취소'라는 직업적 생명을 완전히 박탈하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을 동원했다. 이는 달걀을 깨기 위해 바위를 던지는 격으로 침해의 최소성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다.
3. 법익의 균형성 상실
이 법률로 달성하려는 '지역 의료 인력 확보'라는 공익은 불확실한 반면, 침해되는 사익(개인의 인생 10년 구속, 면허 박탈의 위험)은 구체적이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하다. 따라서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정부 측 합헌 논리에 대한 반박은 다음과 같다.
1. 사관학교 등 타 직역과의 비교
정부는 사관학교 졸업생의 의무복무(10년)를 근거로 형평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군인은 임관과 동시에 국가의 전적인 보호(급여, 연금, 신분 보장)를 받는 '특수경력직 공무원'이다.
반면, 지역의사는 국가지원금 일부를 제외하면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민간인(사인)'이다. 민간인에게 공무원의 잣대를 들이대며 의무만을 강요하는 것은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또한 군인은 의무복무 미이행 시 '전역(직업 변경)' 조치될 뿐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으나, 지역의사는 '자격(면허) 박탈'을 당한다는 점에서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가혹하다.
2. '계약에 의한 자발적 동의' 주장
정부는 입학 당시 학생이 동의했으므로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사가 되고자 하는 19세 수험생에게 있어, 의대 정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의사 전형은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강요된 선택'이다.
민법상으로도 궁박한 상태에서의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무효이다. 하물며 10대 후반의 미성숙한 판단으로 맺은 약정이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기본권 포기 불능의 법리'에도 위배된다.
백번 양보해서 법리적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정책적 실효성에서 이 제도는 실패할 운명이다.
첫째, ‘강요된 의무’는 ‘자발적 헌신’을 이길 수 없다.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의사는 누구인가? 그 지역에 애정을 가지고 정착하여 환자와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의사다. 그러나 법에 의해 억지로 붙잡혀 있는 의사가 과연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을까? 10년만 채우면 떠날 생각으로 가득 찬 ‘조건부 의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기고 싶은 환자는 없을 것이다. 이는 지역 주민들을 ‘2류 의료’의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과 다름없다.
둘째, 의사 면허 체계의 이원화는 의료계 내부의 갈등과 서열화를 조장할 것이다. ‘일반 의사’와 ‘지역 의사’로 나뉜 계급 구조 속에서 지역 의사 면허는 일종의 ‘낙인’이 될 위험이 크다. 이는 결국 지역 의료의 질적 저하로 이어져, 환자들이 더욱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역설을 낳을 것이다.
셋째, 처벌 위주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는다. 법안은 의무복무 미이행 시 면허를 취소하고 재교부까지 금지하고 있다.
불가피한 개인 사정이나 병원 폐업 등 외부 요인에 대한 구제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이는 의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직업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진정한 지역 의료 살리기는 ‘강제’가 아닌 ‘유인’에서 시작돼야 한다. 의사들이 지역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환자가 없고, 인프라가 부족하며, 진료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법적 보호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사를 쇠사슬로 묶어두려 할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스스로 지역에 남아 진료하고 싶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파격적인 지역 수가 가산, 정주 여건 개선, 그리고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법안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한다. 이는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다.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지키기 위함이며, 족쇄 찬 의사가 아닌 자긍심 가진 의사에게 진료받을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함이다.
처박한 땅에 강제로 심은 나무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다. 지역의사제가 한국 의료의 희망이 되기는커녕, 의료 붕괴를 가속화하는 독초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채찍’을 거두고,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