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한 차례 파행을 겪은 뒤 29일 의료현안협의체가 재가동됐지만, 의정 간 동상이몽은 점차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대화와 협치를 강조하던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까지 언급할 정도로 벼랑에 몰린 반면, 정부는 2020년과 달리 서두르지 않고 의대정원 확대를 위한 밑그림 작업에 한창이다.
이날 열린 제18차 의료현안협의체는 지난주 17차 회의와 달리 '의정협의 2막'으로 평가 받는다.
전국 의대 수요조사 발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의협 측이 논의를 거부하고, 의협 비상대책특별위원회가 출범해 총파업까지 언급된 이후 공식적인 첫 회의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이날 양측의 모두발언을 보면 의대정원 정책과 관련된 향후 의·정의 전략 방향이 잘 드러난다.
우선 이날 보건복지부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의 일성은 관심을 모았던 의사파업 등에 대한 유감 표시가 아니었다. 이보다 앞서 그는 '참석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직후 "정부는 17차에 걸친 의협과의 협의체 논의와 동시에 상급종합병원, 중소병원과 의학회, 의학한림원 등 의료예 원로분들, 의과대학 교수님들과 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운을 뗐다.
또 정 정책관은 모두발언 마지막 멘트로도 "복지부는 의료현안협의체와 별도로 의료분쟁제도개선협의체, 의사인력확충자문위원회, 전공의수련체계개편협의체 등 여러 협의체를 운영 중"이라며 "의협은 물론 환자와 소비자단체, 의학계 언론 등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발언에서 알 수 있는 의대정원 확대 정책 추진을 위한 정부 측 핵심 전략은 '의협 힘빼기'다.
정부는 3년 전과 달리 최근 의대정원 증원을 공식화하면서 논의의 틀을 다각화하고 있다. 의협과의 의료현안협의체 이외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등에서도 의대증원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의료계 안에서도 의협 외에 병원계, 의학교육계, 의과대학, 의료계 원로 등과 간담회 형태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매주 마련하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해 의대정원 논의의 틀이 의협 외 타 산하 직역단체로 다각화될 뿐만 아니라, 의사 외 수용자 단체로까지 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의협의 입지가 줄어드는 모양새가 됐다. 정경실 정책관도 이날 모두발언 가장 처음과 마지막을 이 내용에 할애할 만큼 '논의 다각화'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정 정책관은 팩트체크 부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배분했는데, 해당 발언을 종합하면 의료계 주장과 달리 의사 수를 늘릴 과학적·객관적 근거는 충분하다는 게 골자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학들이 2배 안팎의 의대정원 증원을 희망한다는 수요조사 결과도 의사 수 확대를 위한 근거 쌓기 용도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객관적인 지표를 봐도 의사가 더 필요하고 실제 전국의 각 의대들도 전부 의대증원을 희망하고 있다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정부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40개 대학들은 2025년 2천151명~2천847명, 2030년 2천738명∼3천953명 증원을 희망했다.
반대로 의협은 이날 수요조사 자체를 '허무맹랑한 숫자'라고 평가 절하했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지표이기 때문에 정원 확대를 위한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의협 측 협상단장인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모두발언에서 "충남대는 의대 정원이 110명인데 410명을 요구해 4배에 달하고 을지대는 정원 40명에 3배인 120명을 요구했다"며 "교육 인프라나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학 희망 인원만 더한 허무맹랑한 숫자가 난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의사협회가 모두발언에서 특히 중점을 둔 부분은 '파업 명분 쌓기'다. 의협이 지난 26일 집행부 산하 비상대책특별위원회를 공식화하고 강경투쟁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파업이 중요한 협상카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의협은 파업 명분으로 정부가 의정합의 조항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 의장은 "의대정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정부가 한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수 많은 의사들이 성토하고 있다"며 "정부가 의정합의를 파기하고 의료계와의 신뢰를 무참히 짓밟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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