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10.13 10:59최종 업데이트 26.10.1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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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쏠린 의약품 원료 공급망…CFR "한국 등과 협력체계 구축해야"

유럽연합안보연구소 팀 륄리그 선임 애널리스트, 실사 상호 인정·공공조달 기준·장기 구매 약정 등 협력방안 제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미국과 유럽의 중국산 원료의약품(API) 의존이 안보 취약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공급망 재편 파트너로 한국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가 5일 발간한 'The China Drug Dependency: What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Can—and Can't—Do'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이 한국 등과 핵심 의약품 공급망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해당 보고서는 유럽연합안보연구소(EUISS)의 글로벌 중국 담당 선임 애널리스트 팀 륄리그(Tim Rühlig)가 작성했다.

륄리그는 미국과 유럽의 중국 의약품 공급망 의존이 API뿐 아니라 API 생산에 필요한 기초 화학물질 등 상류 공급망까지 깊숙이 이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공급망의 실제 흐름을 파악하고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대체 공급원을 확보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한국·일본·인도 등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필수 API부터 기초 원료까지 중국에 집중…"방어 체계 취약점" 지목

유럽에서는 이미 중국산 의약품 의존을 안보 문제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륄리그에 따르면 2025년 봄 유럽연합(EU) 11개국 보건부 장관들은 중국산 의약품에 대한 유럽의 의존을 방어 체계의 취약점으로 지목했다.

독일 규제 당국이 필수 공급 품목으로 분류한 56개 API 중 20개는 전 세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 집중돼 있다. 중국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대체 공급원을 즉시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PI 이전 단계까지 공급망을 추적하면 중국 의존은 더 커진다. 인도나 유럽에서 API를 생산하더라도 제조에 필요한 기초 화학물질을 중국에서 조달한다면 공급망 위험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당뇨병 치료제 메트포르민이 대표적이다. API 단계에서 중국발 공급 차질의 영향을 받는 비중은 전체 공급량의 약 3분의 1이지만, API 생산에 필요한 기초 원료까지 포함하면 5분의 4를 넘어선다. 항생제 아목시실린과 세프포독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미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상무부 조사에 따르면 물량 기준 미국에서 생산되는 특허 API 비중은 약 15%에 그쳤다. 2024년 미국이 수입한 항생제 API의 약 70%는 중국이 공급했다. 1990년대 초 유럽 생산업체들이 미국 항생제 API 수입시장의 4분의 3을 차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륄리그는 이러한 의존 구조가 수십 년간 이어진 유럽 보건시스템의 비용 절감 정책과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제네릭 가격과 마진이 낮아지면서 생산시설이 유럽 밖으로 이전했고, 중국은 산업정책을 통해 유럽에서 빠져나간 생산 역량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유럽에는 여전히 공급망 측면에서 중요한 생산기반이 남아 있다. 서구권에서 대규모로 페니실린을 일관 생산할 수 있는 마지막 시설은 오스트리아에 있으며, 미국에는 페니실린 API와 핵심 전구체를 자체 생산할 역량이 없다.

이에 륄리그는 미국과 유럽이 각각 자국 내 생산시설 확충에만 집중하기보다 서로의 생산 역량을 활용해 공급망 회복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상류 공급망 함께 파악해야…공급 차질 시 대체 기간도 점검"

중국 중심의 공급구조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만큼 단기간에 생산기반을 재편하기는 어렵다. 이에 륄리그는 미국과 유럽이 우선 정치적 부담이 적은 정보 공유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유럽의 보건 비상사태 대비·대응국(HERA)과 미국 관련 기관이 진행해온 작업을 토대로 핵심 의약품의 원료가 어디에서 생산되고 이동하는지 상류 공급망을 공동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내 생산 비중을 확인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고 봤다. 특정 원료의 생산이 중단됐을 때 대체 공급원을 확보하는 데 실제로 얼마나 걸리는지 공통된 방법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륄리그는 공급망 정보 공유가 관세나 조달 규정, 시장 접근 조건의 변경을 수반하지 않는 만큼 미국과 유럽이 별도의 정책적 양보 없이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항생제와 진통제, 마취제 등 국방 관련 의약품은 동원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요까지 고려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급망 회복력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제네릭 의약품과 API, 화학적 전구체에 대한 사실상의 무관세 조치를 영구화할 필요성도 제기했다. 륄리그는 2025년 미국-EU 프레임워크에 따라 적용되는 기존 조치를 유지·영구화하고 바이오시밀러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중국 의존을 낮추려는 목표와 충돌할 가능성도 지적했다. 미국은 올해 4월 특허의약품과 그 원료 수입품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유럽산 제품에는 15%의 상한을 적용했다. 제네릭은 현재 관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1년 이내 재검토될 예정이다.

륄리그는 유럽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가 생산비용을 높이고 수익성이 낮은 유럽 내 제네릭 생산시설의 폐쇄를 부추길 경우 중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등으로 협력 확대…"실사 상호 인정하고 장기 수요 보장해야"

륄리그는 핵심 원자재 분야에서 동맹·파트너국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협력 방식을 의약품에도 적용해 인도, 일본, 한국, 스위스, 영국 등이 참여하는 공급망 협력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협력체계에는 참여국에서 생산한 API와 전구체에 대한 우대 조치, 상대국이 실시한 의약품 제조시설 실사 결과의 상호 인정, 공공조달 과정에서 공통된 공급망 회복력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봤다.

중국 이외 지역에 새로운 생산시설을 구축하려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일정 물량을 장기간 구매하기로 약정해 기업과 투자자에게 수요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유럽산 API 가격은 중국산보다 최대 40% 높아 생산 역량 확대를 가로막는 핵심 요인은 기술이 아닌 가격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산보다 높은 생산비용을 감수하고 신규 시설에 투자하도록 하려면 장기간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 미국과 유럽 사이에는 이처럼 포괄적인 다자간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중국 의존을 줄이는 과정에서 유럽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자체적인 의약품 가격 책정과 조달, 규제 결정권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목적은 유럽의 정책적 선택지를 넓히는 데 있으며, 이를 다른 국가에 대한 새로운 의존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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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jwlee@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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