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어떤 교수로부터 병원 발전에 암적인 존재가 어린이병원이란 얘기도 들었다. 어린이병원 적자 메꾸느라 병원이 발전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집행부 시절에 보직 교수를 찾아가 인력을 충원해달라고 호소했더니 ‘왜 그렇게 애쓰냐. 그냥 외래를 닫아라’고 하더라. 병원 입장에선 내가 진료를 하지 않을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26일 서울대 어린이병원 CJ홀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 심포지엄에 참석한 소아 분야 의사들은 저수가로 인해 병원으로부터 ‘적자 내는 의사’로 냉대 받아왔던 일들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이들은 다만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후학들이 길러질 수 있도록 정부가 소아 분야에 대한 과감하고 신속한 지원과 제도 마련을 해주길 호소했다. 이미 소아 환자를 담당할 의사들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65세 이하 소아외과 전문의 전국에 53명…소아 기도 개통 수술 가능 의사 2명 불과
실제 2023년 6월 기준 진료를 하고 있는 65세 이하 소아외과 전문의는 53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평균 연령이 48.3세로 50세에 육박하고, 2030년에는 정년으로 현장을 떠날 의사가 10명이나 된다. 절대적인 전문의 수가 적다 보니 개별 전문의들의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다. 학회 자체 설문 결과 절반가량이 1년 365일 내내 온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이비인후과의 경우도 간단한 응급조치나 기관절개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전국에 10명가량, 완전히 막힌 기도를 다시 개통해 주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2명 정도에 불과하다.
소아 분야를 지망하는 의사들이 줄어드는 건 과도하게 낮은 수가, 그로 인한 일자리 부족이다. 낮은 수가로 병원들은 소아 관련 과의 운영을 꺼리고, 이는 곧 신규 인력 채용 부진으로 이어진다.
수가 합리화와 권역별 소아전문센터 구축…병원 평가 반영∙법적 리스크 완화 등 필요
대한소아외과학회 김현영 고시위원장(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적정 진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합리적 보상체계와 함께 체계적 인력양성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권역화, 집중화를 통한 소아전문센터 구축과 응급∙중증환자 전원 네트워크 수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 이지연 보험이사(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는 “수련을 받더라도 취직할 곳이 없는 게 일차적으로 문제”라며 “상급종합병원의 필수 조건으로 소아과뿐 아니라 소아외과계가 들어가는 걸로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한소아이비인후과학회 권성근 대외협력국제이사(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는 “소아 환자의 기도를 개통해 주는 수술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관이 스위스 로잔 병원과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해당 수술의 수가는 로잔병원의 200분의 1 수준”이라며 수가 인상 필요성을 주장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장을 지난 김한석 교수(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소아외과계를 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한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병원장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핀셋 정책을 내놓을 여지가 있는 것”이라며 “병원장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익과 병원 평가와 관련해 정부가 확실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가 인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련 연구를 다수 진행했던 서울대 어린이병원 김민선 교수는 “소아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선 수가 인상으로 적자를 충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더라”며 “차라리 어린이병원 적자를 정부가 통으로 보상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 시범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방식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사들도 있지만 일본도 어린이병원의 적자를 정부와 지자체가 메꾸고, 미국도 기부금이 큰 비율을 차지한다”고 했다.
소아응급실 의사 출신인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의사의 자율성을 존중해줄 수 있는 제도 마련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소아 환자들은 성인 환자에 비해서도 복잡하고 환자별로 희소성이 있어 의사의 자율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자율성 확대와 법적 리스크 완화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아 분야 의사들은) 멸종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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