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환불 등 무리한 요구에 난처한 의료진들…"저수가 속 박리다매 조장하는 시스템과 의료이용 문화 바뀌어야"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방의료원에서 일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최근 응급실을 찾은 환자 B씨로부터 “남은 수액을 테이크아웃 해달라”는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B씨는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던 중 수액을 모두 맞는 데 6시간 이상 걸린다는 의료진의 말에 남은 수액을 테이크아웃 해줄 것을 요구했다. A 전문의가 테이크아웃은 안 된다고 답하자 이 환자는 수액이 남은 부분만큼 환불해달라고 했다.
A 전문의는 불필요한 실갱이를 피하고자 정 그렇다면 바늘은 빼고 수액만이라도 가져가라고 했다. 바늘은 어떻게 구해야하는 B씨의 질문에는 “그건 알아서 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정맥주사는 불법”이라고 알려줬지만 되돌아온 건 욕설이었다.
5분간 이어진 실갱이 끝에 B씨는 A 전문의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수액을 그대로 둔 채 응급실을 떠났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응급실에서 환자의 황당한 요구로 의료진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A 전문의는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두 달에 한 번쯤은 있는 일”이라며 “실제로는 이보다 더 믿기 힘든 일들도 많다”고 씁쓸함을 표했다.
실제 이 같은 환자들의 황당 요구는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소아과 간호사로 소개한 글쓴이가 남은 수액에 대해선 환불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았다고 하소연 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글에 따르면 열이 나는 2세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은 아이 보호자 C씨는 수액을 놓는 과정에서부터 간호사가 실력이 없다며 소리를 질렀고, 수액을 다 맞은 후에는 남아있는 수액 200ml분을 계산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간호사는 보호자가 흥분해있는데다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500ml 값 1300원을 받지 않고 보냈다며 “한 번씩 이런 엄마들이 오시는데 속이 터질 거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료계는 이 같은 일들이 발생하는 기저에는 환자들이 의료를 ‘시혜’로만 바라보고 있는 문화와 저수가 박리다매롤 조장하는 현 의료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의사협회 임원을 지낸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의료가 붕괴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과거와 달라진 의료 문화”라며 “우리나라에서 의료는 무료나 값 싸게 받아야하는 시혜라는 측면만 너무 강조되고 있고, 국민들은 의사가 건강보험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수액이 1300원에 불과하듯이, 우리나라는 전국민 건강보험을 도입하면서 (수가를 낮게 책정해) 병원 문턱을 낮추는 데만 너무 집중했다”며 “저수가 속에 필수의료, 특히 보험진료를 보는 과들은 박리다매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향후에는 정말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만 병원을 찾도록 하고, 이 환자들에 대해 충분히 진료하고 합당한 수가를 받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또 국민들의 의료문화가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댓글보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