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17 07:07최종 업데이트 23.11.1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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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속 숨은 거짓말들

[칼럼] 젊은의사협의체 신정환 공동 대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2023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갑자기 논의되기 시작한 의대 정원 확대 이슈는 가을을 넘어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는 40개의 의과대학이 있고 정원은 연간 3057명으로 2006년 이후 17년 동안 동결돼 왔다. 최근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소아과 대란, 응급실 뺑뺑이, 지방의료 공백, 필수의료 부족사태는 일제히 그 화살을 의대정원을 향하게 했다.

정책 결정은 언제나 과학적 근거가 기본이 돼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국가 보건의 근간이 되는 정책에는 전 세계적 흐름, 통계적 타당성, 정책의 합리성 등이 디테일하게 검토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자료들은 오히려 국민들의 눈을 어지럽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지역의사 양성, 필수의료분야 의사 양성, 의과학자 양성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OECD 대비 인구 대비 평균 의사 수 부족과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를 이야기한다.

먼저 근거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OECD 대비 인구 대비 평균 의사 수는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적다. 하지만 대한민국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의사는 은퇴시기가 늦어 활동의사 증가율은 OECD의 평균보다 1.41배 높아 10년도 채 안 돼 OECD 평균 의사 수를 따라잡게 된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는 활동의사 1인당 업무량 증가와 의사 수 증가에 따라서 오히려 공급과잉을 우려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비교를 하면 대한민국의 의대 정원 확대의 거짓말을 이해하기 쉽다. 여행을 다녀보거나, 해외에 사는 지인을 통해서 해외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빠르고 편한지 알 수 있다. 선진국 중에서 2일 안에 의사를 볼 수 있는 나라는 57%에 불과하고, 대한민국은 99%가 당일에 의사를 볼 수 있다. 백내장 수술 대기시간, 슬관절 치환술 수술 대기시간은 OECD 평균 각각 92일, 189일이고, 대한민국은 당일에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유럽의 의료시스템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럽의 의사는 대부분 공무원과 같이 고용과 월급 및 근로시간이 보장돼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은 행위당 수가가 정해져 있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환자를 덜 보려고 하고,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한다. 반면 한국과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진료 횟수를 늘려 소득을 높이려고 한다. OECD 데이터를 보면 한국이 의사 수는 적지만 진료 횟수는 1위이고, 유럽의 나라들은 의사 수가 많은 대신 진료 횟수는 매우 낮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진료 횟수가 많기 때문에 의료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예방접종률, 암별 5년 생존률, CT·MRI 의료기기 설치 비율이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인구당 병상 수, 병원 수도 OECD 평균의 2.9배를 상회한다. 그 외에도 회피가능사망률 또한 OECD 평균보다 한참 낮다. 즉 대한민국 의료의 질적 수준이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수가 체계를 가지고 있고, 한국처럼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먼저 경험해 단계적인 의대 정원 확대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단계적 의대 정원 감축을 고민하고 있다. 의사 수 증가에 따른 의료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공급자가 의료 수요를 유발시키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2000년도 대비 2015년도에 전체 활동 의사수가 2배 증가했고 GDP 대비 경상의료비가 2배 정도 증가했다. 즉 의대 정원을 확대시키는 건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는 행위다.

지역의료격차는 전 세계 어디서나 존재한다. 2016년도 기준 OECD 평균 지역의료격차를 1.5정도로 볼 때 대한민국은 0.6이고 헝가리는 3.6, 핀란드는 1.6, 프랑스는 1.2다. 대한민국보다 더 많은 인구당 의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지역격차가 더 크게 나타난다. 이러한 지역격차를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해결하려는 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또한 정부는 2000년도 후반에 지방의 간호사 부족사태에 대비해 지방 간호대를 설립하고 간호대 정원을 확대했지만 현재 간호인력은 만성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이는 단순히 수를 늘려서 해결하겠다는 문제 해결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선례다.

필수의료 인력 양성 문제는 수가와 연결된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달리 필수의료 인력의 만성적 부족함에 시달리지 않는다. 흉부외과, 소아외과 등 대한민국에서 외면 받고 있는 과들의 특징은 앞서 말한 두 국가와 다르게 낮은 수가, 과도한 배상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두개 내 종양 적출술, 뇌혈관 내 수술(스텐트 이용) 수가는 일본은 1581만원, 828만원이지만 한국은 245만원, 142만원으로 각각 일본의 15.5%, 17.1%에 불과하다. 이렇게 지속된 외면은 일부 지원자들의 과도한 노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근본적인 수가의 조절과 배상 책임의 완화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의과학자양성은 과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는 의과학자 양성과 의사의 지역분배를 목표로 시작된 제도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기득권의 음서제도와 같이 오용되는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시 6년제 의대 시스템으로 돌아왔다. 현재 의과학자 양성을 위한다는 정부는 차년도 R&D 예산을 삭감하는 방향을 결정했다. 의과학자들이 양성된다 하더라도 이들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게 지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의대 정원 확대의 이유를 말하는 정부의 두 정책 방향이 서로 정반대로 가고 있는 모순되는 상황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앞으로 의료시스템을 변화시키고, 미래세대에게 짐을 지울 수 있는 문제다. 정책 결정 과정이 과학적 근거 기반이 아닌 정치적 나눠주기 식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전문가 단체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디테일한 정책 설계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함께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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