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사업에는 위험도 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소비자나 고객들로부터 예기치 않은 클레임이나 소송이 들어오는 경우에 큰 비용이 나가게 된다. 이런 비용을 대비하기 위해서 대개 물건이나 서비스에 그런 비용까지 포함해서 가격을 책정하는데,그것을 위험도 비용이라고 한다. 이렇게 위험도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위험도 비용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위험도가 높은 서비스는 그 누구도 제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수가에도 이러한 위험도 비용이 반영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수가에 위험도 비용이 이미 반영돼 있다는 것을 아는 의사들은 거의 없다.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상대가치는 의사의 기술료에 해당하는 의사업무량, 제반비용에 해당하는 진료비용 그리고 의료사고에 대한 비용인 위험도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이미 수가에 손해배상에 대비하는 비용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2017년 발표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출생아 1000명당 3.3명이 분만전후 목숨을 잃었으며, 신생아 1000명당 2.7명은 뇌성마비가 발생했다고 한다. 즉, 심각한 분만사고 발생율은 태아 1000명당 6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분만사고의 평균 손해배상액은 1억원이었다. 이 수치로 계산하면 분만 1000건의 총 배상액은 6억원이고 분만 1건당으로는 위험도 비용은 60만원이 된다. 그런데 상대가치 점수에 반영된 실제 위험도 비용은 건당 2만 6000원에 불과하다. 턱도 없이 낮은 금액이다.
그런데 위험도 비용이 이렇게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분만수가에 있다. 2023년 현재 의원급 정상분만(초산) 수가는 78만8680원이고 제왕절개만출술(초산)의 수가는 53만9510원이다. 경산의 경우는 초산보다 수가가 더 낮게 책정돼 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현재 분만 1건당 수가를 대략 70만원으로 잡고 계산을 해보면, 2023년 현재 분만 1000건의 총 수가는 7억원이 된다.
최근 법원에서는 하나의 분만사고에서 10억대의 금액을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참고로 2017년의 분만사고당 평균 손해배상액은 1억원이었다.
즉, 산부인과 의사가 아무리 열심히 분만을 받고 제왕절개만출술을 해서 수가를 다 받아도 분만사고 발생시의 손해배상액을 채우기도 버겁다는 말이다. 더구나 쥐꼬리 보다 못한 금액인 분만 1건당 위험도 비용 2만 6000원을 수가에 묻어두었다는 분만 수가 하에서 분만에 임하는 산부인과의사는 분만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혼자서 기본 1억원은 보통이고 이젠 10억원대까지의 손해배상액을 물어내야만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왜 이렇게 대한민국 의사들의 필수의료 탈출런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시는가?
다시 말하자면 현재 대한민국의 분만수가는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 열심히 받다가 예기치 않은 분만사고가 발생하면 그동안 벌었던 돈으로 손해배상액에 다 털어 넣으라고 설계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분명 시한폭탄 돌리기나 마찬가지이며 코리안 룰렛 게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코리안 룰렛 게임은 산부인과 뿐만 아니라 모든 필수의료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두려워 자연스럽게 필수의료에서 탈출하고 있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정작 이렇게 필수의료가 폭망하게끔 건강보험제도를 잘못 설계하고 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의사 탓만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낙수효과론까지 들고 나왔다. 비필수 의료시장이 차고 넘치면, 코리안 룰렛도 기꺼이 감수하면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들이 생길 거라는 논리다. 이 나라는 결코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공보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진료 중에 발생하는 위험은 모두 공보험을 운용하는 기관에서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고,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도 그렇게 운용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개별 수가에 다 나눠 담아 놓았다는 그 위험도 비용을 건강보험 공단이 모두 가져가고, 공단이 직접 손해배상 소송에 대응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손해배상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를 계속 고집하며 의사 개인이 알아서 직접 손해배상을 하라고 강요한다면 아무리 의사를 많이 늘려도 필수의료로 돌아가거나 필수의료를 전공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니가 해라. 낙수의료!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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