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우리나라의 과도한 '의료 접근성 개선'이 의료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과잉 의료' 기준이 되는 연 150회 이상 외래진료 환자가 19만명에 육박하고, 1년 동안 42개 병원을 돌며 2050번 '의료쇼핑'을 한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의료 이용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빠르게 악화시키면서 2028년에는 바닥을 보일거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속에 정부는 '의료쇼핑' 행태를 불러일으키는 배후에 무분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 있다고 보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개혁을 준비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연간 150회 이상 외래진료 환자 19만명 육박…연 500회 이상 환자도 529명 달해
8일 건강보험 당국의 외래 이용 현황 통계에 따르면 작년 외래 의료 이용 횟수가 365회를 넘는 사람은 2550명이나 됐다. 병원 문이 열지 않는 휴일을 고려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을 찾았다는 의미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매일같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급여비로 투입한 액수가 251억4500만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1년 건강보험 통계연보의 작년 전체 가입자 1인당 연간 급여비는 149만3000원으로, 의료 쇼핑을 한 이들의 1인당 연간 급여비 평균 986만1000원와 비교하면 약 6.6배 차이가 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5월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우리나라 의료 쇼핑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지난해 연간 150회 이상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는 총 18만9224명이었고, 지급된 건강보험 부담액은 총 1조9604억원에 달했다.
연간 500회 이상 병원을 찾은 환자도 지난해 529명이나 됐다. 이들에 대한 공단 부담금은 62억4400만원이나 된다. 그중 17명은 무려 1000회 이상 이용했는데, 한 40대 환자는 지난해 1년간 42개 병원을 돌아다니며 총 2050회의 외래진료를 받는 등 의료 쇼핑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쇼핑 원인으로 '과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지목…"건보 재정 악화 우려"
정부는 이 같은 과도한 의료 이용 행태의 원인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서 찾고 있다.
앞서 8월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 회의를 열고 '문재인 케어' 등으로 인한 과다 의료 이용을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복지부는 작년 뇌‧뇌혈관 MRI 재정 지출이 목표 2053억원 대비 2529억원으로 123%에 달하고, 하복부‧비뇨기 초음파 지출도 작년 685억원으로 집행률이 137% 늘었다고 공개했다. 특히 문재인 케어를 대표하는 초음파‧MRI 진료비는 건보 적용 첫해였던 2018년 1891억원에서 2021년 1조8476억원으로 3년 새 10배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과정에서 환자 부담이 낮아지면서, 환자들이 불필요한 과다 의료 이용의 늪에 빠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감사원도 '건강보험 재정 관리 실태' 감사결과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며, 건강보험 재정관리에 대한 외부 통제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오는 2070년 65살 이상 인구 비율이 46.4%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등 고령화·저출산 현상 심화로 국가 전체 의료비 지출은 증가하는 반면, 가계의 진료비 부담 경감 요구가 늘면서 급여항목 확대 등 보장성이 강화하는 추세"라며 "이에 따라 건강보험 지출 규모가 2010년 34조원에서 2020년 73.7조원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보험료율 인상 등 수입 증가는 한계가 있어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2018년 이후 2020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감사원은 '문재인 케어'의 비급여의 급여화 이후 심사 과정이 부실했다고도 지적했다. 감사원은 "제도적 미비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요양급여 심사단계 전반에서 부실한 지출 관리가 확인됐다"며 건강보험 요양급여 심사제도에 대한 개선 및 강화 필요성도 제기했다.
내년부터 적자 전환되는 건강보험…복지부도 '건보 재정 개혁'
이렇게 과다 의료 이용이 발생하면서 부담이 생긴 것은 건강보험 재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 신현웅 실장이 '보건의료정책 현황과 과제:지속가능성 확보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2.0%p 증가해 의료비가 경제성장률을 상회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00분의 80의 범위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령으로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는 건강보험 보험료율은 2025~2026년 즈음에 법적 상한선인 8%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신현웅 실장은 "건강보험 보험료율이 법적 상한선인 8%에 도달해 보험료율 인상률이 고정될 경우 보건의료 분야의 주요 재원인 건강보험 수입은 부과소득 자연 증가율인 2~3% 수준에 머무르는 등 보건의료 수입 증가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출 관리를 통해 보건의료 재정의 균형 및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복지부도 적정 수준의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지출구조 개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개혁' 기조에 따라 기재부 출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한 후로 줄곧 건강보험 재정 개혁을 강조해왔던 복지부는 문재인 케어를 타겟으로 한 재정 개혁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던 건강보험이 내년부터 1조 4000억원 적자로 전환되면서 향후 건보 적자가 지속되면 건보 적립금은 2028년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심한 고령화, 저출산 추세로 한국의 고령인구 비중이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보험료를 내야하는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는 문제도 큰 골치로 지적되고 있다.
복지부는 앞서나온 감사원의 지적에 불필요한 뇌 MRI 검사 이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두통, 어지럼에 대한 급여기준을 조정하는 등 사후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리고 조규홍 장관이 취임한 이후 복지부는 본격적으로 건강보험 재정 개혁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필수의료 강화와 맞물려 건강보험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을 발족했고, 여기서 마련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오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 공청회에서 공개하기로 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복지부는 이번 재정 개혁에 대해 "과다의료이용, 비급여·급여 이용량 증가와 실손보험과의 관계, 건강보험 자격도용, 외국인 피부양자 제도 부적정 이용 등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없는지 살펴보고 합리적이고 적정 수준의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지출구조 개혁방안을 마련하고, 국민에게 꼭 필요한 필수의료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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