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5.05 09:44최종 업데이트 20.05.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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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원격진료가 시기상조이면서 불가한 이유

①대면진료 대체 불가 ②의료사고 발생시 법적 책임 ③코로나19 대응 효과 미흡 ④의료전달체계 붕괴 ⑤의료정보 유출

[칼럼] 정재현 바른의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COVID-19)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산업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변화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정부 및 산업계에서는 이를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대책의 중심에 원격진료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정부와 산업계는 의료계가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이유를 직역이기주의나 밥그릇 지키기 정도로 매도하고 있다.

실제로 의료계가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해결돼야 할 의학적, 제도적, 법적 문제가 많기 때문이고, 이러한 문제들이 결국 환자들에게 피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서 원격진료 도입이 시기상조이면서 불가한 이유를 다섯가지로 축약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①원격진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가?

의사들이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진 발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과 만성질환자들에서 합병증 발생 시 제 때 이를 파악하고 대처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가 진료실을 방문해 진찰을 받고, 다양한 검사를 진행해도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만성 질환자들의 합병증 발생 여부나 응급 상황여부 판단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사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단을 내리고, 정확한 치료시기를 감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진, 청진, 타진, 촉진 등과 자세한 병력 청취로 대표되는 ‘진찰’과 필요시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는 인프라는 진료에 있어 필수적이다.

그래서 현재 화상 면담 및 전화 상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격진료 모델과 자가 혈당 및 혈압 측정, 간이 활력징후 모니터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원격 모니터링 인프라 상황에서 원격진료로 대면진료를 대체하겠다고 하는 것은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만약 원격진료 기술과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대면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비대면 진료 활성화라는 명분 하에 원격 진료를 도입하면,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이는 반드시 인명 피해를 동반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②원격진료로 인한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은 대면진료와 같다?

의사들이 원격진료를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원격진료를 통해 발생한 의료사고도 대면진료와 동등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아직까지 원격진료가 일부 격오지 및 군의료 상황에서만 적용되고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이 떄문에 원격진료로 인해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 구체적인 법령은 없다. 

의사 입장에서는 대면진료처럼 환자를 면밀히 진찰하고, 검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진료에 대해서도 동일한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면 당연히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원격진료 활성화에 대한 계획을 여러 차례 발표하면서도 원격진료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에 대한 대책은 내놓고 있지 않다. 

정부가 의료사고로 인한 법적 분쟁 발생이 빈번해 질 것이 자명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이에 대한 대책 없이 일단 시행해보고 보완하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의사 및 의료기관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③과연 원격진료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대책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원격진료 논의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코로나19 상황으로 비대면 의료 행위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원격진료를 통해 의사와 환자 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면, 원내 감염을 통한 감염병의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 반영됐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코로나19는 메르스와는 다르게 원내 감염보다는 지역 사회 감염이 감염병 전파의 주 경로라는 점과 결국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증상 감염자의 비중도 높은 상황에서 현재까지 코로나19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처법은 광범위한 검사를 통한 확진자 진단과 적극적인 치료 및 격리다. 그런데 원격진료에 의존해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게 되면 코로나19 진단은 늦어지고, 이는 지역사회 감염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런 지적을 하면 원격진료는 급성기 질환자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적용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증상만으로 감별이 쉽지 않고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을 대면진료를 통해서 면밀히 관찰해서 감염 초기에 빨리 발견해 내야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원격진료가 코로나19 대처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예는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많이 있다. 넓은 국토 및 낮은 의료접근성으로 인해 원격진료가 어느 정도 활성화된 국가들도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원격진료의 효과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필요하고 연구에서 효용성이 입증되는지 봐야 한다. 

만약 이 연구에서 원격진료의 효용성이 검증된다고 하더라도 국내에 적용하려면 의료접근성의 차이, 수가 체계 및 의료 시스템의 차이, 국민들의 인식 차이 등 따져봐야 할 문제들이 많아서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④원격진료 확대가 가져올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있는가?

원격진료가 시행되면 대형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풍부한 자본과 인력이 있는 대형병원들은 원격진료를 활용해 많은 환자들을 유치하려고 할 생각일 것이며, 현재 대한병원협회 등 병원 단체들이 원격진료를 반대하지 않는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원격진료는 의원급에 한해 원격진료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1~2인의 의사가 운영하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원격진료를 위한 시설이나 인력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도 이를 운용할 여력이 없다. 단순 전화 상담을 통한 처방도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위험성 때문에 하기 힘들고 많은 환자들에게 확대 적용할 수도 없다. 

따라서 원격진료 시행의 주체는 보건소와 같은 공공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전화 상담을 통한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더니 전화 처방은 기관별 건수는 의원급 보다 주로 병원급에서 많았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서 보면, 원격진료의 시행은 환자들의 상급 의료기관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켜 1차 의료기관들의 경영 악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1차 의료기관들이 무너지면 의료전달체계는 붕괴된다. 코로나19 유행 중에서도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은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각 지역에 넓게 퍼져있는 1차 의료기관들이 굳건히 버텨서 상급의료기관으로 환자들의 쏠림 현상을 막았기 때문이다. 개원의는 국가 의료위기 상황에서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은 숨은 공로자와 다름 없다. 

만약 원격진료 시행을 통해 1차 의료가 붕괴하면 코로나19의 재유행이나 또 다른 감염병의 창궐 시기에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까. 대부분 전문의들에 의해서 유지되는 실력 있고 튼튼한 1차 의료기관들을 더 살리기는커녕 약화시키고 없애버리면 우리는 유럽에서 벌어진 참혹한 결과를 똑같이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이 빈번한 현실에서 원격진료는 의료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가?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IT기술의 발전과 빅데이터 산업의 확대 등으로 정보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부작용으로 소중히 지켜져야 할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광범위하게 유출되고, 유출된 정보들이 범죄나 특정 개인 및 단체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료정보의 경우에도 이러한 유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산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환자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예민한 정보인 의료정보가 유출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그 방식은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환자 의료정보가 유출돼 범죄에 이용될 때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의료시장이 교란될 수도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그런데 원격진료의 시행은 이러한 환자 의료정보를 더욱 데이터화시키고, 아무리 보안을 철저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정보 유출의 위험을 낮추기는 어렵다. 

특히나 정보 보안에 있어 가장 철저하다고 할 수 있는 정부기관들과 금융기관들도 수시로 해킹에 의한 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보 보안 수준을 감안하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정부가 원격진료를 확대 시행할 생각이 있으면 환자 정보 보안에 대한 대책도 함께 내놔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보인다.

이외에도 원격진료의 문제는 많다. 하지만 정부 및 산업계, 병협과 같은 일부 의료계 단체들도 원격진료 추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원격진료 관련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원력진료 관련 산업을 육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중대본은 4일 원격진료의 한 형태인 전화 처방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이로 인해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국민들을 생각했을 때, 정부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자꾸 가려고 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의료가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대책과 장기적인 대책을 구분해 추진하는 넓은 안목이 필요하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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