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보건의료데이터 생성 주체에 가공, 전송, 정보 보호 의무 부과하면서 보상은 없어"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현 윤석열 정부가 '제2의 반도체'라고 부르며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디지털 헬스케어법안'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해당 법안은 의료데이터 활용에 방점이 찍혀 있었는데, 실제 의료데이터를 생산하는 의료기관은 정작 권리보다는 정보 제공 및 가공 과정에서의 부담과 유출에 대한 위험과 책임만 존재해 그에 대한 보상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성공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0일 여의도 글래드호텔 볼룸홀에서 '디지털헬스케어법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했다.
당정,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 위해 필요한 법안 '공감'…기업 및 개인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에 방점
토론회 시작에 앞서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은 인사말을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과 발전이 기대되는 미래유망 사업분야"라며 "우리나라는 방대한 의료데이터를 보유하고 뛰어난 ICT 역량 갖추고 있어 산업 혁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건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제약, AI, 의료기기 신시장 창출하고 국민건강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의료데이터는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가치 사이의 긴장 관계가 있다.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과제다. 디지털 헬스케어법은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을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박 차관은 "현재 세계는 기술패권 전쟁 중이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와 관련 제도 정비,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적 지원책이 함께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국권 빼앗기는 상태가 될 것이다"라며 "우리나라가 이 기술 패권의 주도적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신속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현재 17대 국회에 발의된 '디지털 헬스케어법'은 4건으로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신현영 의원,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에 이어 여당 복지위 간사인 강기윤 의원이 '디지털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해 계류 중에 있다.
이날 논의 대상이 된 강기윤 의원안은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정의와 함께 보건복지부장관이 디지털 헬스케어 진흥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해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국무총리 산하의 디지털 헬스케어정책심의위원회를 두로록 했다.
그 외에도 보건의료데이터의 가명처리 관련 내용을 법률로 명확화해 빅데이터 연구를 활성화하고, 국민이 자신의 의료데이터를 공유·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송 요구권과 관리 체계 등도 마련했다.
보건의료데이터 질 관리 부족, 의사의 노력과 인식 제고 필요…"적절한 보상안 선결돼야"
이날 토론회에서 보건의료 데이터를 생산하고 보유하고 있는 의료계는 해당 법안이 데이터 생성 및 처리, 가공 과정에서 참여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권리와 그에 대한 지원에 대한 내용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대한의사협회 김충기 정책이사는 "디지털 혁신을 통한 보건의료 환경 발전에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협도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있어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국민의 보건의료 환경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 전제하에서 국가 경제‧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우리나라가 굉장히 많은 보건의료데이터를 생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양질의 의료데이터가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정확하지 않다"며 "EMR이 잘 갖춰져 있고, 건강보험공단에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어 데이터가 축적돼 있기는 하나 실제로 데이터 간의 연계성과 체계성은 높지 않아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할 때 효용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김 이사는 민간 기업들이 보건의료데이터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도 이를 생산하는 의료기관이 양질의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원초적인 의료데이터를 가공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보상과 지원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데이터를 취합해 분석해 보면 일반 보건의료 데이터만으로는 수준 높은 연구성과를 이뤄내기 어렵다. 데이터를 입력하고 가공하는데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며 "보건의료데이터의 질적 확장을 위해서는 임상 현장의 의사의 노력과 인식 제고가 필요한 만큼 그에 부합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의료데이터 생산자의 역할과 권리를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고, 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 때 일선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적극적으로 질 높은 의료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다"며 "현 시점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이 논의 돼야, 의료인과 의료기관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병원협회 김상일 미래헬스케어위원장 역시 "데이터를 생산하는 의사와 의료기관이 분명히 그 주체로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권리를 인정해 주고 일정 부분을 보상할 때, 결국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하고 국민 건강도 증대될 수 있다"고 동의했다.
김 위원장은 "의료데이터 주체를 개인에 국한해 다루고, 의료기관은 데이터 보유 기관으로 의무와 책임만을 규정하는 것이 이 법의 문제라고 본다. 이 법에서 의료기관은 정보 유출 우려 및 책임, 사회적 논란 등 부담과 책임은 크고 의료기관의 권리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법의 제3자 전송 요구권은 지나치게 일률적이고 획일적이다. 의료기관의 전송 가능 범위를 규정하고, 전송 거부 사유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전송 과정에서 발생할 분쟁에 대한 책임 소재, 분쟁 조정 제도도 도입돼야 한다"며 "또 법안은 전송 비용만 명시돼 있을 뿐 데이터 생성, 추출, 관리 등에 소요되는 비용, 인력, 시설, 장비에 대한 추가적 보상책도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위원장은 보건의약 5개 단체가 합의한 5대 원칙을 제시했다. 5대 원칙은 ▲보건의료데이터 생산자에게 지적 재산권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각 의약단체에 보건의료정보 데이터를 수집하는 역할을 부여하고 해당 시스템 구축 운영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을 추진한다 ▲보건의료 데이터는 생산자와 제공자(환자) 모두의 동의 없이 의료기관 외부로 제ᅟᅥᆫ송돼서는 안된다. 단, 데이터 3법상 가명 정보는 그렇지 않다. ▲보건의료 데이터 생산자에게 보건의료데이터 유동으로 발생하는 부가가치에 대한 공정한 분배가 보장돼야 한다 ▲보건의료데이터의 가치 평가는 공명정대하게 이뤄져야 한다 등이다.
소비자 "민간 정보 유출 방지 방안 필요"…산업계 "활용기관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제 풀어야"
한편 소비자 대표로 참석한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소비자 대상 의료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의료데이터 활용 시 기대 사항에 대한 질문에 '통합의료서비스 실현'이 최다 응답으로 꼽혔고, 의료데이터 활용 우려사항으로는 '민감한 정보의 유출'이 1순위로 꼽혔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은 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해 정부가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성을 제시하며, 개인정보 유출, 오남용에 대한 데이터 활용자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따라서 정 사무총장은 "의료데이터 활용 시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의료데이터에 대해 소비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책 수립 시 데이터 리터러시 능력이 낮은 계층을 고려해야 하고, 소비자에 대한 데이터 관련 교육을 물론 디지털헬스, 개인정보, 앱 활용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데이터 오남용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제3자 데이터 전송 흐름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데이터 흐름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야한다. 민감한 의료데이터 유출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므로 이중 복사 방지 등 보안을 강화하고, 데이터 정정 및 삭제에 대한 소비자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산업계 대표로 참석한 카카오헬스케어 신수용 연구소장은 산업체로서 애로사항을 전했다.
그는 "민간 기업들은 이미 가명처리한 보건의료데이터도 활용 시 심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특정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에게 동의를 받아 데이터를 수집해 가명처리했는데, 그 정보를 다시 연구를 위해 쓸 때 IRB 승인을 받아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기업체가 고객으로부터 동의를 받아 가명처리해 신규 제품 개발을 위해 쓰는데 다시 IRB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이렇게 할 수 있는 회사는 대기업 몇몇 밖에 없다. 스타트업에 엄청난 규제 장벽이다"라고 꼬집었다.
신 연구소장은 "현재는 의료기관이 제3자 민간 기관에 보건의료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이 의료법 상에서 불가능하다. 법안에 응급상황 시 전송요구권이 보장되고 있는데 이 조항으로 해결되는 것인지 명확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또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기관은 보건복지부 자관으로부터 허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것은 또다른 규제가 될 수 있다. 최소한 등록제까지는 어떻게 보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허가 승인은 그 허가권을 정부 부처가 가지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규제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 등록제로 수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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