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는 더 이상 값싼 진료를 하는 노동자가 아닌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의사로 인식돼야 한다. 올바른 전공의 교육을 통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전문의사를 양성하고 환자 안전과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의료계와 정부 모두가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계는 전공의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정부는 전공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메디게이트뉴스는 5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의사 양성비용 국가지원 모색 토론회' 후속 기획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전공의 교육과 이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짚어봤다.
지난 2월 1일, 고(故) 신형록 전공의가 36시간 연속 근무 중에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과로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부검결과에서도 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다. 동료 전공의에 따르면 소아 환자의 당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해 중환자실로 가게 되면서 유독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했다.
2012년 전공의 과로사 이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이 제정, 시행됐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전공의는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법의 한계는 최대 근무시간만 제한하고 있고, 담당 환자 수 등 전공의의 실질적 업무량을 줄이는 방안은 부재하다는 것이다. ‘상한’ 근무시간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대부분 병원에서 전공의들은 법에 명시한 최대 시간을 꽉 채워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이 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초과한 근무시간을 허위로 보고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과도한 업무량, 적절한 휴식 미제공, 불충분한 수면 등은 전공의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대부분의 수련병원에서 위급상황을 일차적으로 담당하는 의사가 전공의임을 고려하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동아일보가 공동 시행한 ‘2018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의 응답 결과에 따르면, 주치의인 전공의가 정규 근무 시 담당하는 평균 입원환자 수는 1명당 16.52명, 당직 근무 시에는 1명당 평균 72명이었다. 한 명의 전공의가 책임져야 할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높은 당직 근무 중에 오히려 담당 환자 수가 4배 이상 많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주치의 1인이 안전을 담보하면서 책임질 수 있는 환자 수는 최대 15명 선이라는 연구 결과(Michtalik et al., Impact of Attending Physician Workload on Patient Care: A Survey of Hospitalists, JAMA, 2013)가 제시된 바 있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제는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임의와 교수가 같이 당직을 서기 시작했다. 전공의에게만 환자안전의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갖췄고 책임도 더 큰 ‘전문의’와 부담을 나누게 되는 것이며, 당연한 변화이다. 다만, 문제는 현재로서는 기존에 있는 전문의 인력만으로는 오히려 과부하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전문의를 충원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임이 수련병원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정부가 더 책임감 있게 수련병원과 해결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보장성 강화 좋다.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통해 3차 병원으로 늘어나는 환자를 제한하던지,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정착과 활성화를 통해 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나아가 정부가 앞장서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고 정식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전문의 인력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는 육성지원과목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금까지 단기 지원책의 도입과 폐지만을 반복해 왔는데 앞으로는 좀 더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장기적인 제도의 보완에 나서야 할 것이며, 해당 전문과목을 수련하는 전공의가 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뭘 배우는지 혹은 배워야 할지 제시해주지도 않는 상황에서 병원마다 교수님마다 가르치는 부분이 상이합니다. 제가 어떤 전문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현장에 있는 전공의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부 전문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과, 특히 육성지원과목의 경우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보건복지부 고시로 되어있는 전공의의 연차별 수련 교과과정은 환자 취급범위, 술기 횟수 등에 대한 정량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연차별 전문성이나 진료 난이도 등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수련의 내용이 전공의의 연차별 수련 교과과정을 통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수련 교과과정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물론 표준화되고 역량을 갖춘 수련 교과과정을 개발해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과목 학회가 주도하는 정량적, 정성적 평가 기준의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산하에 자문단을 설치해 학회별 자문위원과 전공의 자문위원을 위촉하고 평가기준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제반 비용에 대한 재원을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학회는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련환경평가와 학회별 평가를 일원화해 불필요한 자원 소모, 비효율의 문제 등을 줄이고 교육수련의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전문의 제도 및 전공의 수련의 목표는 전공의법의 제정 취지와 같이 환자안전을 제고하고 우수한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다. 전공의법은 제3조에 '국가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에 따른 시책 추진에 노력해야 하며 이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와 전문과목별 수련프로그램 개발에 드는 비용을 국가가 우선 지원함으로써 환자안전을 지키고 역량을 갖춘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의료인들의 과중한 노동과 희생으로 우리나라 의료가 세계적으로 우위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로 속에 대다수 의료인이 건강에 위험신호를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이다. 환자가 건강하고 의사가 건강해야 국가도 건강할 수 있다. 곪아가는 상처는 점점 늘어나는데, 근본적인 치료인 농의 배출이나 제거 없이 손쉽고 그럴싸해 보이는 밴드만 붙여놓고 언제까지 괜찮다고 생색내기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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