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5.02 11:13최종 업데이트 24.05.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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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근거 미흡 지적에 정부 우물쭈물…법원 "5월 10일까지 과학적 근거 제출하라"

서울고법 "정부의 모든 행정작용, 사법 통제 대상" 질타…각 대학 현지 실사 자료, 배정위원회 회의록 등 제출 명령

원고 측 이병철 변호사 "정부 제출 자료 대중에 공개할 것…법원, 집행정지 인용 시 정부 의대 증원 '물거품'"

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서울고등법원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사법부가 행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에 제동을 건 가운데 가장 핵심은 정부가 결정한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여부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미 언론에도 공개한 KDI‧서울의대‧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며 현장실사 조사자료, 배정위원회 회의록, 각 대학지원방안 및 예산 계획 등을 오는 10일까지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특히 법원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의 정당성에 대한 결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일체의 절차를 중단하라고 밝히면서 당장 4월 30일까지 제출된 각 의과대학의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 정원 증원은 보류상태가 됐다.

서울고법 "정부의 모든 행정작용 사법 통제 대상 돼야…원고적격 넓게 인정해야"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4월 30일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과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날 재판부는 복지부와 교육부의 입학정원 증원 결정은 처분성이 없어 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정부를 상대로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한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과 수험생 등에게 '원고적격'이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먼저 "정부의 모든 행정작용은 사법 통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 사법부의 심사를 받지 않는 정부의 행정행위가 있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며 "정부가 극단적으로 10만명씩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결정해도 법원은 소송을 각하해야 하는가?"라고 질타했다.

또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 등은 행정처분의 원고 적격이 없다며, 행정처분은 직접 상대방인 대학총장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이번 증원 결정은 대학 총장에게는 수익적 행정처분이라서 대학 총장이 소송을 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수익적 행정행위에 대해서는 소송을 제기할 이유도 의사도 없는 대학 총장들만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고, 의대생 등 모든 사람들의 소송은 각하해야 한다면, 결국 이렇게 중요한 정부 의료결정은 사법심사를 받지 못한다는 결과가 되는 것 아닌가?"라며 "사법부의 사법심사를 받지 않는 정부의 행정 결정은 있을 수 없다. 정부의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따라서 법원은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라 하더라도 원고적격을 넓게 인정해야 한다며, 이해관계자인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 나아가 수험생까지도 원고적격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1심 재판부와 달리 본안소송을 각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 의대 결정 과정 '모순' 지적…3개 보고서 외 과학적 근거, 현지실사 과정 등 공개 촉구

이어 재판부는 정부가 국립대 총장들이 건의하고 정부가 수용했다고 밝힌 의대정원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2025학년도 신입생 입학정원 결정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대생 입학정원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정한다'고 돼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대학 총장이 학칙과 대입전형 시행계획에 반영해 수험생에게 입시요강을 공표한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이번 정부는 총 2000명으로 의대 정원을 정했고, 대학별로 숫자를 정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구체적으로 정한 숫자를 대학 총장이 수용해야만 하는 기속행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국립대 총장 6명이 거부하고, 50~100% 사이에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정부가 이를 수용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이는 고등교육법 규정에 위반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나아가 "만약 고등교육법이 정부가 숫자를 정해주면 각 대학 총장이 그 숫자 이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는 재량권을 부여하는 취지라면, 처음부터 정부가 그렇게 발표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왜 2000명에서 한 명도 뺄 수 없고, 대학 총장은 한 명도 빼지 말고 학칙과 시행계획에 반영해 대교협에 올리라고 요구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정부의 조치들이 너무 모순된 것 같다"고도 꼬집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정부가 결정한 2000명이라는 의대정원 증원 숫자가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즉시 과학적 근거자료를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정부는 그간 거듭해서 제시했던 KDI, 서울의대,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보고서 3개는 저자들이 이미 자신들 보고서의 내용이 왜곡됐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니 그것을 과학적 근거라고 할 수는 없다"며 "다른 과학적 근거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교육부와 복지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을 위해 직접 발주한 연구보고서와 의과대학 인적, 물적 시설 조건을 갖췄는지를 조사한 자료, 현지 실사 자료, 회의자료, 향후 각 대학에 대한 지원 대책 및 예산 확보 내역도 제출하라고 촉구했다.

더불어 원고 측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2000명 증원분을 각 의과대학으로 배분한 배정위원회의 숫자 결정에 대한 과학적 근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배정위원회 명단과 회의록도 공개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과거 로스쿨을 승인할 당시 정부는 전국 41개 대학을 모두 현지 방문해 철저히 심사했다"며 "이와 비교할 때 의과대학 역시 당연히 이런 철저한 조사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정부를 향해 "5월 10일까지 요청한 자료를 모두 제출하라"며 "재판부의 인용 여부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까지 대교협의 승인 절차, 각 대학의 공표 절차 등 일체의 절차를 진행하면 안 된다"고 명령했다.

이병철 변호사 "정부 자료 국민 앞에 모두 공개할 예정"…정부, 자료 미제출 시 원고 손 들어줄 듯

해당 사건의 원고 측 변호사인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정부가 위 자료를 제출하면, 방송사에 출연해 국민들 앞에 위의 자료들을 모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만약 정부가 재판부가 정한 기한인 10일까지 과학적 근거자료 등을 제출하지 못하거나 그 근거가 부족할 경우, 재판부는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복리가 소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대생 등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측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고법이 이번 집행정지 소송에서 원고 측의 주장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 정부의 2000명 증원처분과 각 40개 대학에 대한 증원분 배분 처분은 즉시 효력이 정지된다"며 "본안소송인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선고할 때까지 정부의 2000명 증원은 중단되며, 본안소송은 최소 2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결국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이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의 위와 같은 인용 결정은 하급심인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7번의 각하결정을 모두 취소시켜 버리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충북대 등 3개 대학 의대생들이 각 대학 총장·한국대학교육협의회·국가를 상대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중지하라며 낸 가처분 소송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사건은 이송하고, 대학 총장 및 대교협에 대한 사건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므로 기각하고, 교육의 질 여부는 본인소송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현재 서울지법에서 진행중인 유사한 내용의 5개 국립의대생들의 가처분소송, 20개 사립의대생들의 가처분 소송을 포함해 의대생들의 가천분 소송 모두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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