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08.25 08:57최종 업데이트 20.08.2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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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고원중 교수 1주기 "여전히 그리운 내 마음 속의 진정한 선생님"

"환자를 위한 자유로운 연구환경을 아쉬워하신 교수님, 다시 태어나도 교수님과 결핵·비결핵 항상균 폐질환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특별기고] 신성재 연세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22일 열렸던 故고원중 교수 1주기 추모식 장면 

지난해 8월 21일, 너무 큰 슬픔을 갑작스레 맞이하게 됐습니다. 제 연구 인생의 스승이면서 선배로서 15년을 함께 공동 연구해온 고원중 교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악몽을 꾸고 있는 것처럼 믿지 못했습니다. [관련기사="수익 안된다고 인력 투자 못하면 혼자 어떻게 버팁니까” 삼성서울병원 故고원중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

고인이 된 고 교수와는 매주 50통이 넘는 이메일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열띤 토론과 결과를 토의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공유해주신 고 교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고 교수께서 주신 메일들을 보면서 그 슬픔을 진정시키며 지내고 있습니다.

22일 경기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열린 조촐한 고(故) 고원중 교수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고 교수의 가족과 친구들, 연구실 연구원들, 후배와 동료 의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1년 전보다 더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1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저의 마음 속에는 그리움과 아픔, 그리고 슬픔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가족들은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1년 전 너무나도 무겁고 슬픈 분위기보다 고 교수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 교수와 함께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씩 꺼내며 추억할 수 있는 자리가 됐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원중 교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의사이며 연구자의 길을 걸어오셨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고 교수께서 저에게 생전에 해주신 말씀 중 제 마음 속에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습니다. 고 교수는 저에게 항상 ‘Understand'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보다 낮게(Under) 서면 (Stand)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 없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라도,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고 교수는 “진정한 리더는 자신이 끌고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에게 이끌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줍니다. 선생님이 잘 돼야 제가 편안해집니다”하고 웃어보이셨습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를 겪으면서 고 교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런 시기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서 어떻게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고 노력하셨을 것입니다.

2015년도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과장으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사태를 겪으면서 고 교수께서 너무 힘들어하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고 교수는 신종 호흡기 감염병이 계속 출현할 수 있다며 연구소가 딸린 호흡기 전문병원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치료가 잘 안되는 난치 폐질환 환자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좋은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 교수께서 삼성서울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직을 결정하면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배려와 공간이 있는 곳을 최우선으로 선택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저희 연구실에 오셔서 학생과 연구원 한 명, 한 명의 데이터와 연구내용을 검토해주시고 지도해주셨습니다. 그것도 부족하다 느끼셨는지 돌아간 이후에도 금·토·일요일 3일 내내 모든 연구원들에게 각각 다른 주제에 맞는 논문과 아이디어를 전달하면서 '결핵과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NTM)을 연구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구실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3호선 지하철 안에서 자신이 10년 이상 모아온 임상검체와 연구 아이디어를 앞으로 어떻게 유지하고 어떻게 이용해서 환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지 끝까지 고민하던 고 교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모습은 앞으로의 화이팅보다 슬픔과 아쉬움이 더 크게 묻어나 있었지만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강하셨던 분이셨기에 교수님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 교수께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셨는지, 그 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서야 조금씩이나마 이해되고 있습니다. 

고 교수께서는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사로서 연구자로서 항상 솔선수범하셨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 교수들을 위해서 고군분투하셨는지, 고 교수께서 안계시고 방향을 잃어보니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고원중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제 마음 속의 영원한 선생님이십니다. 단지 먼저 태어난 선생(先生)님이 아닌, 최선(最善)과 선(善)함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선생(善生)님이십니다. 만약 제가 다시 태어날 기회가 있어서 또 다시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그리고 교수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또 다시 교수님과 함께 결핵과 비결핵 항산균 폐질환(NTM)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행복하십시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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