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은 지난 6월 13일 '경기남부권역 외상센터 개소식'을 열었는데 개소식 테이프 커팅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 의료의 단면을 그대로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 윤화섭 경기도의회 의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은 중앙에 자리를 잡은 반면 외상센터를 이끌어갈 이국종 센터장은 왼쪽 끝자리로 밀려났다.
"지난해 메르스가 상륙했을 때 국가가 뚫렸지만 의사들이 막았다. 그 때 이 정부는 뭐 했나. 의사 출신 공무원들이 (메르스 방역 실패에 대한) 징계를 받을 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갔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회장이 지난 3일 광화문 촛불집회 주최 측 단상에 올라 작심한 듯 의료정책의 단면을 이렇게 꼬집었다.
고위 공무원은 의료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은커녕 오히려 영전하고, 현장을 지키는 전문가들을 무시하는 사회.
9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의결서를 가결하는 현장을 지켜본 의사들은 전문가를 무시하고,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의료정책기조도 함께 척결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의료계는 의료전문가를 무시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원격의료를 꼽고 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밀어붙였다.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환자의 안전, 의료전달체계에 미칠 영향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정부는 의료계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정책에 반대하는 것처럼 몰아가면서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시범사업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시범사업을 계속 확대하고, 의료법 개정부터 강행하면서 의정 갈등을 자초했다.
정부가 도서지역 등 의료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의료계와 우선 논의하면서 대안을 찾아 갔다면 연착륙할 수도 있었던 정책이었지만 청와대는 일방통행을 멈추지 않았다.
또 대통령이 일개 한의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 선물을 안겼다는 의혹은 이 정부가 얼마나 환자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의사인 최모 씨는 2013년 10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초청한 중소기업인 34명 중 한명으로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한의사는 혈액검사조차 할 수 없다"며 각종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은 "한의사가 채혈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정부가 방법을 찾아 해결해 주겠다"고 화답했다.
그 후 보건복지부는 한의사도 혈액검사를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고, 규제기요틴을 해소한다며 현대의료기기 허용 정책을 펴면서 초음파를 사용하는 한의원, 현대의료기기를 공개적으로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등장하고 있다.
비전문가에게 현대의료기기를 허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위험, 비용 부담 증가, 면허체계 붕괴 등의 지적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정책 기조와 함께 근거없는 의료에 대한 정부의 방임 내지 암묵적 허용이 맞물리면서 의료정책의 원칙마져 무너질 위기를 맞고 있다.
의료정책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고, 그런만큼 근거중심 의료를 정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료 중심에서 탈피해 의료전문가들의 정책 참여와 충분한 의견수렴,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보니 최순실과 같은 비선실세가 득세하고, 주요 의료정책들이 밀실에서 만들어지고, 무언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듯한 상황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관료 문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탄핵되더라도 제2, 제3의 최순실이 나올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의료정책에 만연한 최순실식 시스템을 하나하나 찾아내 퇴출시키고,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 있는 구조를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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